14일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인 양홍관 씨는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선노동당 사건은 안기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한 인간이 '공포'에 의해 어떻게 지배받게 되는지 폭로했다.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92년 9월 12일 10여명의 사람들이 3대의 차를 타고 와서 영장도 없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은 채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가 강압적으로 차에 태웠다"며 양 씨는 당시의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양 씨는 어딘지도 모르는 건물 지하실 방으로 끌려 내려갔고, 그때부터 견디기 힘든 고문의 연속이었다. "옷을 벗으라고 해서 거부하자 7, 8명이 달려들어 때리며 강제로 옷을 전부 벗겼다"며 그때 느꼈던 공포와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수사관들이) 여기에 온 이유를 알고 있지 않느냐"며 자백할 것을 강요했고 양 씨가 "누군데 이러느냐"고 묻자, 바로 주먹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양 씨에게 "너는 남한조선노동당에 가입한 간첩으로 중부지역당 강원도당 책임비서임을 자백하라"며 들어보지도 못한 말들을 들이대며 협박을 했다. 결국 비녀뽑기, 긴자루를 무릎에 끼워 넣고 밟기, 창틀에 묶어 놓고 치기 등 3교대로 행해진 숱한 고문에도 양 씨가 진술하기를 거부해 수사가 진척되지 않자, 당시 안기부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이었던 정형근 의원이 조사를 한 것. 양 씨는 "어느날 점잖게 생긴 사람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막대기를 가지고 성기를 10대 정도 쳤다. 그때 느낀 분노와 모멸감, 그리고 '여기서 못 살아나가겠구나'라는 절박한 심정이 그 사람(정 의원)의 얼굴을 기억하게 했다"며 정 의원이 성기고문을 했음을 확실히 밝혔다. 결국 계속되는 고문과 회유에 지칠대로 지친 양 씨는 수사관들이 원하는대로 '허위 자백'을 하게 됐고, 그 결과 '민족해방애국전선', '조국통일애국전선','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등을 엮은 '남한 최대 간첩단'의 일원이 된 것이다.
양 씨가 고문당할 때부터 그 인물이 정 의원인 줄 알았던 것은 아니다. 나중에 수사관들에게 "'귀두치기'를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우리 사장이야'라고 했다"고 전했다. 98년 준법서약서를 쓰고 사면된 뒤, 당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정 의원을 TV에서 보고 그인 줄 알아보게 됐다. 양 씨는 "정 의원이 내가 하부조직원이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12년형을 받을만큼 핵심인물이었던 나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에 대해서도 "청회색 바지를 입고, 상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인상은 부드러웠지만 특유의 비웃는 듯한 표정과 경상도 말투를 쓰고 키는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173cm 정도였다"고 묘사할 정도로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한다는 것에 대해 양 씨는 "조사과정에서 (정 의원이) 성기고문 장본인으로 드러날 것"이라며 "그대를 위해, 그리고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고소고발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어 "만약 고발한다면 결국 당신은 당신의 덫에 걸릴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국보법의 공포 재현 막아야
양 씨는 이철우 의원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전대협 활동으로 87년부터 알고 지냈다"며 "92년도에는 조애전의 조직활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하며, "조애전은 민해전과는 분명히 다른 조직으로 이 의원은 민해전에 가입한 사실이 없으며 그 실체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나라당의 색깔 공세에 대해서도 양 씨는 "이 사건을 보면서 그때의 두려움과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 기자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런 공포는 여전히 실체다"라고 털어놓았다. 또한 "한나라당은 이 의원 사건을 악용해 국가보안법을 온존시키려 하는 것"이라며 "냉전수구세력들은 위기를 느낄 때마다 공안과 색깔론을 내세워 정권을 유지하려 했고, 이번 사건도 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양 씨는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혼자 다니지 말아라', '가족들이 다른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셨다. 중학생 아들은 기사를 보고 '정형근을(한참 말을 잇지 못하며) 죽여야 한다'라고 했다. 아이에게도 살기를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며 이번 일이 가족에게도 힘든 과정임을 토로했다.
'공포'를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가 그 첫 관문이 되어야 함을 양 씨 사건을 통해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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