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직공무원노조, 단식농성에 이어 삭발
"머리카락이 아까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10년 넘게 참아온 설움의 세월을 끊어내고, 당당한 노동자로서 투쟁하겠다는 각오와 연대를 보내준 동지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이후 12년 동안 '경찰청고용직공무원'으로 일해 온 김미숙 씨. 뼛속까지 시리게 춥던 22일, 파르라니 깎은 머리위로 '생존권 사수'라고 써 있는 머리띠를 묶으며 김 씨가 한 말이다. 삭발까지 하며 그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일선 경찰서에서 사무보조, 경리 등의 업무를 하는 것이 고용직공무원 노동자의 역할이지만 김 씨는 "경찰들이 먹는 밥과 빨래까지 해야 했으며, 개인 심부름도 해줘야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는 김 씨에게만 일어났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대부분의 고용직공무원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이다. 한 고용직공무원 노동자는 "출근시간보다 1시간 먼저 나가서 청소는 물론 경찰들의 구두까지 닦아야 했다. 심지어 자취하는 경찰의 집 청소 및 연탄불을 아침저녁으로 갈아야 했다"고 전했다. 이들이 받는 임금도 턱없이 낮다. 10년을 넘게 일해도 기본급이 60만원을 넘지 못해 12년을 근속한 김 씨가 받는 임금은 고작 특별수당까지 합쳐 100만원을 조금 넘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경찰청은 고용직공무원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은 커녕 2003년 12월 직제개편을 통해 고용직공무원 노동자의 정원을 89명으로 줄여, 1169명이던 고용직공무원 노동자 중 496명을 지난해 말 1차로 '직권면직'시켜 내쫓았다. 이어 남은 인원에 대해서도 12월31일 직권면직을 예고한 상태다.
이에 고용직공무원 노동자들은 지난 7월 노조를 결성해 직권면직 철회와 기능직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투쟁을 지금까지 벌여오고 있다.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최혜순 위원장은 "경찰청은 '기능상실'과 '예산감소', 그리고 '직제폐지'를 내세우며 직권면직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89년 이미 고용직공무원의 직제가 폐지되었으나 2002까지 신규채용을 해왔으며, 내년예산도 올해보다 3천715억원(6.8%)이 증액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고용직공무원을 직권면직하고 난 뒤 그 자리에 1000여명에 이르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해 똑같을 일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바 있다. "실제 고용직에서 쫓겨나 일용직으로 다시 채용된 동료들도 많이 있다"고 최 위원장은 덧붙였다.
또한 이들은 경찰청의 면직조치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남성이 주를 이루는 국가직고용직공무원들의 경우 89년 5월 경과조치에 의해 고용직 복무 3년 이상인 자는 기능직으로 전환되었지만, 99%가 여성인 경찰고용직만 기능직 전환에서 제외되었다"고 지적했다.
5개월이 넘도록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김 씨는 "경찰들이 노조활동을 하는 동료의 집까지 찾아가 '당신 자식이 이상한 데 빠져있어 구속될 수도 있다', '마누라 단속 좀 잘해라'는 등 가족에게까지 온갖 협박을 하며 자진사퇴를 강요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경찰청의 직권면직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10일 최기문 경찰청장 관사 앞에서 농성을 벌인 이후로는 모든 집회를 비롯한 단체행동도 불허되기 시작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경찰의 온갖 협박을 피해 지난 17일부터는 민주노동당사에 모여 거점투쟁을 벌이고 있다. 21일에는 최 위원장을 포함해 4명의 노조원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최 위원장은 "연대를 해 주는 많은 동지들에게 승리로 보답하고 싶다"면서 "힘들겠지만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웃어 보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졸업 발표회를 한다며 '24일 엄마 올거지'라고 물어보는데 아무런 답도 해줄 수 없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김 씨가 그리고, 노조원들이 하루 빨리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