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서울출입국, 석방 미끼로 '프락치' 강요 의혹

"불법체류자 20명 알려주면 풀어주겠다"…인권위 조사 착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이 단속에 걸린 이주노동자에게 석방을 미끼로 동료들을 밀고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21일 열린 기자회견

▲ 21일 열린 기자회견



21일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아래 외노협)가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베트남 출신 누응틴(가명) 씨의 증언에 따르면, 11일 오후6시경 경기도 군포에서 서울출입국사무소로 끌려간 그는 같은날 밤 10시 자신을 '미스터 리'라고 소개한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불법체류자 20명만 알려주면 풀어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다음날 오전10시 누웅틴 씨는 "도망가면 때려죽인다"는 협박과 함께 다시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고, 강제추방에 대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한 그는 출입국직원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같은날 '미스터 리'를 포함한 단속반 7명과 함께 차를 타고 군포시 일대로 나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는 곳을 알려줬고 이날 단속반은 16명을 단속했다. 이후 누응틴 씨를 태운 차는 다시 여러 곳을 돌아다녔고 단속반은 그가 가르쳐주는 공장과 장소를 확인하고 기록했다. 이날 오후5시경 '미스터 리'는 안양시 호계동 인근에서 그를 풀어주면서 "너는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줬다는 것. 이날 단속된 사람들 중 8명이 이미 강제출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인해 그동안 일하던 군포를 떠난 누웅틴 씨는 "(친구들이 밀고한 사실을 알고 있어) 이제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며 "죽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친구들에게 큰 죄를 지었으니 지금이라도 나 때문에 잡혀간 친구들이 한두명이라도 풀려나면 죄가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해 증언한 누응틴 씨. 주최측 요청에 따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 기자회견에 참석해 증언한 누응틴 씨. 주최측 요청에 따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외노협은 "서로가 서로를 밀고하게 함으로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인간성을 좀먹게 하는 프락치 공작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앗아간다는 점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반인권적인 범죄"라며 "공무를 집행해야 하는 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비도덕적인 밀고 강요행위이며, 사회적 약자의 불리한 신분을 이용하여 부당한 거래를 강요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외노협은 법무부 장관 면담과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엄중 문책, 책임자의 사죄를 요구했다.

외노협은 △권리구제가 필요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신분조회와 강제추방 즉각 철회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밀고를 강요하는 인권유린행위 즉각 중단 △인간사냥 중단과 합리적인 외국인력정책 수립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한편 국가인권위도 이 사건에 대해 서울출입국사무소와 화성외국인보호소를 상대로 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법무부 체류심사과 관계자는 "내부조사 결과 누웅틴 씨를 단속했다 풀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석방을 미끼로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며 "석방 후 부인과 함께 출두하면 자진출국 프로그램으로 범칙금 면제 등 혜택을 주겠다고 하니 고맙다며 스스로 정보를 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면 불법체류 기간 등 위법상황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라며 "이 과정에서 나온 정보를 단속에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