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평택범대위)는 경찰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날선 방패와 곤봉을 참가자들의 머리와 눈, 턱을 가리지 않고 가격하고 물대포와 소화기를 무차별 난사했"고 "어린이, 여성, 노인들을 가리지 않고 돌과 흙을 던지고 경찰 폭력에 쓰러진 참가자들을 방패와 곤봉, 군화발로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규탄했다.
전쟁을 방불케 한 경찰폭력
이날 평택범대위가 공개한 제보사례에 따르면, 전국공무원노조의 한 조합원은 "내리 방향에서 인간띠잇기 행사에 참여했다가…전경들이 곤봉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해 항의하다 정수리에 곤봉을 맞았다"며 "오른쪽 팔과 정강이에도 타박상을 입었고 전경에게 구타당해 왼쪽 가슴에 멍이 들어 통원치료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황새울 방향으로 행진하던 중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해 나를 포함한 10여명이 논두렁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사복형사 10여명이 다가와 내 목덜미와 허리를 잡고 경찰 뒤로 끌어들였다"며 "경찰들은 '지난번 선동한 놈이다'라는 말과 함께 나를 집단폭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왜 연행하느냐고 하니까 기자들이 안보이게 하면서 패라는 말과 함께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며 "어떤 경찰관은 전경들에게 '지나가면서 한 대씩 패라'고 말했고 전경들이 이동할 때마다 끌고 다니면서 복부와 다리를 걷어찼다"고 밝혔다. 미군기지 철조망 근처로 다가갔던 한 대학생은 전경들이 다 쓰고 던진 휴대용 소화기에 맞아 이마를 다쳤다고 주장했다.
평택범대위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폭력에 부상당한 시민 가운데 인근병원에서 치료받은 사람만 76명(13일 현재)에 이르며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김종서 교수(배제대 법학)는 "통상 시위대가 폭력을 가한다 하더라도 '공권력'으로서 경찰력이 사용할 수 있는 폭력의 한계는 정당한 공무집행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며 "경찰력은 방어적 차원으로 한정되어야 하고 불법집회였다면 해산에 필요한 강제력만 사용해야 하는데도 한계를 넘어 전쟁하듯이 진압하는 것은 공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의 '폭력진압' 선동
이날 경찰의 폭력진압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9일 오진선 평택경찰서장과 송명호 평택시장은 시청 상황실에서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군사시설 손괴, 경찰에 대한 폭력 행사 등 과격시위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내리 방향에서 경찰병력을 지휘하던 서울지방경찰청 이종우 기동단장이 노골적으로 폭력진압을 선동해 물의를 빚었다. 이 기동단장은 지휘방송을 통해 "작대기로 쳐! 방패로 쳐!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대응해라, 밀리지 말고 시위대의 머리를 향하지 말고 아래쪽을 향해라", "그래 잘 하고 있어! 밀고 들어가! 작살 내버려!"라고 선동해 시민들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또 흥분한 경찰들을 자제시켜야 할 지휘관임에도 이 기동단장은 "몽둥이로 치고 소화기 분사하고 잘한다 야 너 매맞고 있냐? 또 쳐", "(전경) 여러분들의 동료가 지금 습격을 많이 당했다! 우리라고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지금부터 공격하면 맞받아 쳐버려! 괜찮아! 훈련된 동작으로 하면 돼! 절대 매 맞지 않도록.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고 지시했다. 또 "어이 ○○중대장 내가 너네 청장한테 보고한다! 왜 뒤로 빠져! 내가 지금 당장 보고한다!"며 다른 지휘관을 협박하기도 해 시민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이에 대해 평택범대위는 13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평화적 집회를 보장하고 대회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호해야할 경찰의 입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김 교수는 "일선 의경·전경은 명령이 떨어지면 따를 수 밖에 없는데 지휘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지시한 것은 폭력교사로 볼 수 있다"며 "최근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독립시켜도 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해산하려는 시민들까지 연행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는 과정에서도 연행은 계속됐다. 내리 쪽에서 집회를 마치고 대추초등학교로 돌아가던 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는 "전경들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돌아가던 중에 갑자기 지휘관이 '이들은 적이니까 초등학교에 모이게 하면 우리를 공격할테니까 가지말게 하라'고 지시하는 순간 전경들이 일행을 포위하고 연행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아무런 무기 없이 맨몸으로 저항했던 여성들을 강압적으로 연행하고, 해산한 집회대오를 범죄자 취급한 것"이라고 분개했다.
집회 전부터 시작된 경찰의 집회방해
한편 행사 당일 관할 평택경찰서가 미군기지 주변의 인간띠잇기 행사를 불허해 의도적으로 행사진행을 방해하려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행사 당일 목격자들에 따르면 경찰은 대추초등학교로 들어가려는 행사준비 차량과 참가자들을 경찰 물리력을 동원해 차단하는가 하면, 행사장 입구까지 경찰병력이 난입해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과 행사관계자들을 연행하기도 하는 등 의도적으로 긴장을 유발시켰다는 것.
당일 오전 집회장으로 들어가려다 경찰에게 폭행 당한 민주노동당 최규엽 최고위원은 13일 기자회견에 휠체어를 탄채 참석해 "경찰이 깃대를 빼앗으려해 항의했더니 주먹으로 때렸다"며 "이빨이 깨지고 한쪽 눈이 멍들었다"고 증언했다. 팽성대책위 김지태 위원장도 "집회장을 전경들이 빽빽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은 참가하는 것조차 엄청난 공포였다"며 "전경들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무장병력이었다"고 규탄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4일 경찰청에 낸 공개질의서를 통해 △지휘관이 집시법에 따른 해산명령 3회를 적법절차에 따라 하지 않은 것 △불특정 다수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을 선동한 것 △경찰관이 시민들을 위협·협박해 심한 모욕감을 가한 것 △해산 후의 이동경로조차 일률적으로 제한해 이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 등에 대해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볼 수 있는지 추궁했다.
미군기지 주변 집회는 불법?
한편 경찰이 미군기지 주변에서 예정됐던 인간띠잇기 행사를 불허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태 다음날인 11일 허준영 경찰청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에 주둔하는 외국군의 부대 철책을 무너뜨리는 것은 국경을 무너뜨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평택경찰서 관계자는 "미군부대(K6)장이 7월 1일자로 시설보호요청을 해, 행사 당일 미군기지 주변의 행진에 대해 제한 통고했다"며 "대추초등학교에서의 집회는 합법이지만 행진은 불법이므로 집회만 했다면 진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현행 집시법 제8조는 집회 신고장소가 "군사시설의 주변지역으로서 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시설이나 군작전의 수행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관리자가 시설보호요청만 하면 집회·시위를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군사시설보호법 제18조는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에 주류하는 외국군의 군사시설"도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어 미군기지 근처 집회·시위도 언제든 제한될 수 있는 것.
이 규정은 지난 2003년 경찰이 주도한 집시법 개악에서 추가된 대표적인 개악조항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 바 있다. 당시 '개악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는 "미국을 항의주체로 하는 집회는 원천적으로 금지하겠다는 발상이고 이는 어느 모로 보나 위헌"이라며 "경찰당국은 미군부대 주변지역에서 집회를 하고자 하면 이 조항을 근거로 무조건 금지통고 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집회시위의 자유에서 장소는 집회목적과 연관되어 있어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며 "평택 미군기지가 확장되면 안된다는 취지로 집회를 하는데 평택시청에 가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6월말 접수된 집회신고에 대해 행사 당일에야 '제한통고'를 한 것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금지통고와는 달리 제한통고는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당일날 할 수도 있다"고 둘러댔다. 또 이 관계자는 "집회장소인 대추초등학교는 폐교여서 (군사시설과 함께 규정되어 있는) '교육시설'이 아니므로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범대위, 경찰청장 파면·현장책임자 구속 요구
폭력진압에 대해 범대위는 △허준영 경찰청장의 즉각 파면 △현장지휘 책임자인 이종우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장과 오진선 평택경찰서장 구속 처벌 △부상자들의 치료비 배상과 농작물 피해 보상 등을 요구했다.
한편 13일 경기도경은 △당일 행사를 주최한 범대위 공동대표 6명 △현장에서 연행되어 불구속 입건된 3명 △채증자료를 통해 판독한 5명 등 14명에게 출석을 요구했고 "사안이 중한 대상자에 대해서는 구속수사 등 엄정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전담반을 편성해 당일 현장에서 채증된 자료를 중심으로 신원을 파악한 후 "폭력행위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 검거하여 의법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