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발표한 정부의 긴급조정 결정으로 대한항공조종사노조 파업이 나흘만에 중단됐다. 이로써 참여정부는 올 들어 두 번이나 긴급조정권을 남발하면서 파업을 폭력적으로 중지시켰다. 긴급조정권 규정은 1963년 도입된 이래 현 정부 이전까지는 단 두 번만 발동되었을 정도로 사문화된 반노동악법이었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는 △기본급 및 비행수당 6.5% 인상 △상여금 50%인상 △비행수당의 보장항목과 관련한 임금협약서 개정 등을 요구하며 8일 오전 0시부터 총파업을 시작했다. 조종사노조는 그 뒤 두 차례 열린 임금협상을 통해 10일에는 3.5%까지 요구안을 낮춰 사측의 요구안인 2.5%에 매우 근접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반면 사측은 2.5% 인상안에서 한번도 수정안을 내지 않았다.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노사 당사자간에 임금인상률에 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함에 따라 파업이 장기화되고 이로 인한 피해 또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긴급조치를 결정했다. 관계부처의 집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직접적인 매출 손실이 500여억원, 수출업계와 관광업계의 간접적인 피해액이 1393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76조에 의하면 "노동부장관은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그 규모가 크거나 그 성질이 특별한 것으로서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에는 긴급조정을 결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과 노조 내의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친 정당한 파업에 대해서까지 무리하게 단체행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등의 기준은 사측에 타격을 줌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 쟁의의 당연한 특성인 이상, 규모가 있는 쟁의이다 싶으면 마구잡이로 적용될 위험이 있다. 노동부도 이러한 지적을 의식해 파업초기에는 노사간 협상진행경과를 지켜보면서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그렇지만 긴급조정제도가 이토록 남용된다면,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정당한 단체행동을 막아 노동계에서 위헌적이라 주장되는 직권중재제도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대한항공 사측이 긴급조정에 기대어 노조에 대한 악선전만 하며 협상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도 문제이다. 이미 7일에 정부는 파업을 시작하지도 않은 대한항공 노조에 대하여 긴급조정권을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한 적 있으며, 8일 오전에는 건교부 장관이 노동부 장관에게 긴급조정권 발동을 요청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실제로 파업 이후에도 대한항공 사측은 협상을 번번이 결렬로 이르게 하고, 노조 측의 요구안에 대해서는 수정안도 내지 않았다. 게다가 비조합원, 촉탁조종사, 외국인 등을 합해 600여명의 사용가능한 대체인력이 있으면서도 노선들을 결항시키고 피해액을 늘린 것도 사측이 나서서 긴급조정을 앞당기려고 한 게 아닌가 의구심을 사는 부분이다. 전체 2500여명의 조종사 중 절반도 안되는 1000여명이 이번 파업에 참가했는데, 결항률은 70%에 달했음을 보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파업을 중단하고 조종사들이 업무에 복귀하는 가운데 대한항공조종사노조 박병렬 교선실장은 "정부의 긴급조정 결정은 당연히 규탄해야 한다. 12월 6일부터 긴급조정이 예고되면서 사측은 각본이 짜여진대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파업에 대해서는 법에 의한 절차를 따르겠다. 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에게 회사가 불이익을 주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막겠다"라고 말했다.
긴급조정의 결정이 공표되면 관계당사자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하며 공표일로부터 30일이 지난 후에야 쟁의를 재개할 수 있다. 중앙노동위원회(아래 중노위)는 긴급조정의 통고를 받은 때에 노·사·공익위원으로 조정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정을 개시한다. 이 때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중노위는 중재(강제조정)에 나서게 된다. 이후 15일 간의 강제조정에서 노사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중노위는 중재재정을 하게 되며, 이는 단체협약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 2956호
- 노동조합결성권·파업권,일반
- 마토
- 200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