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10분경 한 여대생이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쪽에서 화물트럭에 치여 숨졌다. 사체에는 청바지가 입혀져 있었지만, 속옷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피해자의 팬티와 거들은 사고 현장 부근에서 발견됐으며, 속옷에서는 남자의 정액이 검출되었고 그로부터 유전자형을 얻을 수 있었다.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고 전날 밤 대학 교정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10시 40분경 귀가하기 위해 남자친구와 함께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술에 취해 그 이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고, 사고지점은 집으로 가는 길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이다. 한편 가해차량 운전자가 주장했던 알리바이는 조사 결과 허위임이 판명됐다.」
언뜻 보기에도 단순 교통사고로 여겨지지 않는 이 사건은, 98년 10월 17일 대구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사체에 속옷이 벗겨져 있었던 점, 속옷에서 정액이 검출된 점 등을 보면 피해 여성의 성폭행 가능성을 쉽게 점쳐 볼 수 있다. 남자친구, 가해 운전자의 진술이 미심쩍은 것은 물론, 가해자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으로부터 유전자형을 확보한 만큼 범인을 잡는 것이 결코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도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의 예상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종결됐다.
부검결과 나오기도 전, 교통사고로 종결
“…고속도로를 횡단하였다는 점, 그리고 집의 반대방향으로 가려했다는 점, 혈중 알콜 농도가 0.13%로서 운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라는 점 등은 흔히 보는 보행자의 교통사고와는 다르다. 즉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본시는 사고 전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받아 매우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 이 점에 대해서는 수사에 의해 판단함이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이는 99년 1월 28일자 부검 감정서에 나와 있는 설명으로, 이 사건이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상식적인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대구 달서경찰서는 부검 감정서가 나오기 이미 한 달 전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혐의없음’ 의견을 내고 수사를 종결해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경찰의 안이함과 아집
달서경찰서는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실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것에만 집착한 채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족들이 피해자의 속옷을 사건 현장에서 발견했다며 느닷없이 국과수 감정 의뢰를 요청하고 나온 것이다. 경찰의 입장에서 이는 간단히 종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건이 확대되면서 업무량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유족들의 요청이 성가실 수밖에 없었고, 문제의 속옷이 눈에 들어왔을 리도, 유족들의 주장이 귀에 들릴 리도 없었을 것이다.
유족들의 노력에 의해 이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던 00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담당 형사가 한 말은 이러한 추정에 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먼지와 잔디가 묻은 것을 주워와 자기 딸이 입던 거라 한단 말이야. (아줌마 팬티처럼) 커다랗잖아요, 이거. 이것을 주워 와서 (피해자의 것이) 맞다고 하는데, 이건 아니지요.” 형사의 인터뷰에는 주관적 판단만 있을 뿐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옷이 피해자의 것임은 분명했다. 사건 발생 얼마 전 어머니가 세트로 선물받아 피해자와 여동생에게 하나씩 준 것이었기 때문에, 유족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00년 6월에 이루어진 제2차 국과수 감정 결과에서도 사실임이 판명됐다. 속옷에 묻은 피가 피해자의 것과 일치했던 것.
결국 달서경찰서는 사건 발생 1년 9개월만에야 문제의 속옷이 피해자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때까지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경찰이 왜 초기에 국과수에 속옷 감정을 의뢰하지 않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사건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유족들의 가슴에는 두 번씩이나 못을 박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성인권에 대한 무지 혹은 외면
성폭력 사건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았던 점은 수사담당자의 여성인권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약자의 지위에 있고, 따라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보다 높은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이 사건에서처럼 여성이 성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면, 이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으로 규정되었어야 하고 보다 강도 높은 조사가 요구되는 것이었다.
피해여성의 속옷이 없었다는 점,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속옷이 발견된 점, 유족들이 성폭력 가능성을 강력히 제기했다는 점 등의 정황을 고려했을 때, 달서경찰서는 당연히 이 사건이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 성폭력 사건일 가능성을 열어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달서경찰서가 보인 행태는 거꾸로 성폭력 사건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 성폭력 가능성을 계속해서 부인하는 꼴이었다.
특히 99년 3월에 이루어진 제1차 속옷 감정 결과, 문제의 속옷에 정액 양성 반응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달서경찰서는 이 속옷이 피해자의 것임을 확신할 수 없고 사체의 질 속에 정액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성폭력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성을 매개로 한 범죄 혹은 여성폭력에 대한 경찰의 ‘무지 혹은 외면’은 최종 사인이 교통사고라는 명백함 뒤에만 경찰을 안주하도록 만들었고, 결국 이 사건을 미제로 만든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사, 유족들 삶의 뿌리 흔들어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후 은폐된 죽음을 흔히 ‘의문사’라 부른다. 이러한 ‘정치적’ 의문사는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고 불충분하나마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생업 유지 포기, 건강악화, 절망감과 스트레스, 가족ㆍ사회적 관계의 단절 등 유족들이 입게 되는 다양한 피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반면 사인에 의한 살인 혹은 폭력 사건의 경우, 경찰의 부실수사로 진실이 묻혀도 그만큼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이번 사건은 누가 봐도 경찰의 부실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의문사’라고 볼 수 있다. 유족들이 입은 피해도 좁은 의미의 ‘정치적’ 의문사 유족들이 입은 피해와 다르지 않다.
피해자의 아버지 정현조 씨는 사건 당시 대구 대명시장에서 아내와 함께 채소가게를 15년 이상 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 직전에는 채소가게 맞은편에 반찬가게도 냈다. 아무래도 채소가게만으로는 살림을 꾸려가기 빠듯했던 것이다. 그런데 딸의 죽음 이후 현조 씨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온 힘을 쏟았고, 99년 10월경엔 아예 채소가게를 폐점하고 진실규명에만 모든 삶을 바쳐야 했다고 한다.
딸의 죽음만은 바로 잡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현조 씨는 사건 관련자들을 하나하나 만나 나갔다. 딸의 친구들, 119 구급대원, 영안실 직원, 부검의, 가해차량 운전자 등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녹취도 하고 사실 확인서도 받아두었다. 하지만 현조 씨에게 사건은 점점 복잡해져 갔고, 때로는 관련자 모두가 이 사건의 공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경찰이 수사진행 상황을 귀띔해 주기는커녕 묻는 말에 속 시원히 대답도 해 주지 않아, 현조 씨는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진 채 의문을 풀어가야 했다.
그러면서 그 고단했던 세월은 훌쩍 8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담당 형사를 직무유기로도 고소해 보기도 하고,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헌법소원도 제기해 보고, 지검ㆍ고검ㆍ대검에 수차례 진정서와 수사 재기 청원서도 내 보았지만,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형식적으로라도 수사를 진행했는데, 최근에는 이전 진정과 동일하다며 그대로 종결될 뿐이었다.
“이러는 저를 보고 자식들은 ‘고만 하세요’ 합니데이. 사람 미치지요. 정신 이상자 취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는 기 말이 됩니까?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런 일은 없었을 깁니다. 이것만은 밝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민주화된 나라에서 탄압을 아는 사람이 그리하면 더 나쁜 사람입니다. 돈도 없고 법도 모르고 권력도 없는 사람 같으면 (사건이) 해결이 안 됩디다.” 현조 씨의 말에는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와 좌절이 교차되고 있었다.
국가의 폭넓은 책임 필요해
경찰의 안이함과 아집으로 인해 죽음의 진실이 묻힌 이 사건은, 현조 씨를 비롯한 유족들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진실을 알 권리’를 명백히 침해한 것이다. 의문의 죽음에서 진실을 안다는 것은 상처의 치유와 피해 구제의 출발점이 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8년째지만, 현재 재수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헌법소원을 대리했던 박연철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사건의 성격을 살인이나 강간치사로 변경하고 팬티에서 나온 DNA가 누구의 것인지 조사범위를 확대해서 수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검찰은 인권회복과 부실수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즉시 재수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은 그 동안 경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혔을 수많은 여성폭력 사건들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수사지침이 마련되고, 차별적 시선으로 진실이 가려지는 일이 없도록 좀더 평등한 수사관행이 시급히 정착돼야 한다. 나아가 진실규명 과정 속에서 유족들이 포기해야 했던 생계, 신체적ㆍ정신적 피해, 관계의 단절 등에 대해서도 국가가 나서 피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떳떳한 부모 못 돼가 원통합니다. 공부도, 과외 하나 못 시키고 혼자 했습니다.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는데……. 친구 하나가 거 가 있는데, 같이 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빠! 요번 주말엔 내려 갑니데이.’ 지금도 훤하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건 당시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던 딸을 회상하며 붉어지는 현조 씨의 눈시울에서 국가권력의 책임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