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의 차이가 불러오는 관계의 변화
친구들은 저마다 인생관을 세공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다른 인생의 간극을 넓히는 촉매제 1순위가 ‘돈’이었다. 친구들은 주말이면 한 데 모여 맛 좋은 음식을 먹고, ‘2차~ 3차~’를 외치며 술을 마시거나, 차를 몰아 무슨무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콘도로 달렸다. 모든 비용은 수입의 액수와 상관없이 똑같이 N분의 1. 대화의 내용은 뻔하다. 회사 이직과 노동환경, 휴가와 상여금, 결혼과 아직 이루지 못한 꿈. 월급 많은 친구가 뿜어내는 불만과 투정은, 번듯한 직장도 돈도 없는 친구에게는 그저 박탈감과 빈곤함을 온 몸에 투입하는 주사바늘처럼 느껴질 뿐. 그래서 더 빈곤한 친구는 늘 빈곤을 체감한다. 김새고 기운 빠져 할 말을 잃은 빈곤한 친구. 목 조이는 가난한 일상을 늘어나봐야 공감을 얻기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 될 것이고 꿈도 한 번 펴 보지 못하고 힘겨운 생존경쟁에서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는 핀잔만 얻어 갈 것이다. 그래서 대화는 서먹한 정적에 닿기 일쑤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술잔을 들어 ‘원 샷’을 외친다. 입 다물고 술이나 먹자라는.
“과연 지금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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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돈 많은 친구들> 포스터
그녀의 빈곤은, 그녀의 게으름으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녀는 현재 일을 하고 있어도 반복적으로 실업 상태에 놓을 수 있는, 그래서 늘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역설적으로 항상 쉬지 않고 일을 하거나 해야 하는 중압감에 고통 받는다. 그러나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한 훈련을 받고 싶어도 비용으로 지불 할 종자돈을 만들 수가 없다. 시간당 받는 청소비 는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그녀의 빈곤은, 교사직을 그만 두었다는 ‘과감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일부의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들고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빈곤의 연쇄에 있는 것이다. 노동을 하면서도 빈곤한, 늘 실업의 위협을 느끼고, 고용 불안에 조바심을 내야 하는 빈곤한 계층의 불평등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빈곤이 가져오는 문화적 소외·관계의 단절

▲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돈' 이상의 의미를 지녀 인간관계까지 변화시키기도 한다.<출처; the-whole-story.org>
올리비아에게는 우리가 원하고 보장 받아야 할,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운명과 생활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자유와 권리’가 없어 보인다. 세 친구 역시 ‘돈’이라는 튼튼한 배 위에 올라탔지만, 사랑도 희망도 없는, 문제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인생의 이상 기류에 휩쓸려 휘청대는 불안한 삶이 위태롭기만 하다. 쉽게 ‘그런 게 인생이야~’하며 덮어 두려는 불안한 날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사회도 국가도, 질서도 법도 없는 ‘남쪽 섬’으로 가면 우리는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