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의 소중함은 그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고 한다. 자신의 건강이 그렇고, 우리를 둘러싼 물과 공기의 깨끗함이 그렇다. 이명박 정권이 진행하고 있는 이른바 '언론 장악' 계획이 낳을 결과 역시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누리는 게 당연하다고 우리가 생각해온 표현의 자유가 전면 제한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부정한다. 1997년과 2002년 집권에 실패한 원인이 '방송, 특히 공영방송인 KBS와 MBC'에 있다고 본다. 방송이 자신들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겪으며 터진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통제 목록 우선순위에 인터넷을 올렸다.
이명박 정권은 조중동 광고주 불매 운동을 빌미로 전면적인 인터넷 통제에 이미 착수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앞세워 '사이버 폭력', '사이버 범죄', '명예훼손' 등 이른바 인터넷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건전한 인터넷 이용문화를 조성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었다. 지난 8월8일에는 정보인권단체들이 철저히 배제된 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인터넷을 침묵의 바다로
개정안의 핵심은 일일평균 이용자 수가 10만명 이상인 모든 서비스 유형의 사이트에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지금은 실명제 적용 대상이 포털, UCC, 인터넷 언론 등 세 가지 유형의 사이트에 한정돼 있어, 포털과 UCC 사이트는 일일평균 이용자 수 30만명 이상, 인터넷 언론은 20만명 이상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명제 적용 사이트는 2008년 5월 기준으로 37개에서 268개로 늘어나고, 실명제 적용 이용자는 전체 이용자 수의 51.5%에서 74.5%로 증가한다. 인터넷 전체에 실명제를 적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실명제 확대는 표현의 자유 위축과 직결된다. 현행 공직선거법이나 전기통신사업법은, 실명제 적용 사이트 운영자가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요청에 반드시 응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의 영장이나 허가가 필요없는 것이다. 이에 더해, 방통위는 실명 확인 정보를 거친 정보의 게시가 종료된 때로부터 6개월 동안 개인정보보호를 보관할 의무를 지우는 쪽으로 정보통신망법 시행령을 바꾸려 하고 있다. 게시판에 정보를 게시한 뒤부터 6개월 동안 보관하도록 돼 있는 현행 규정을 더 개악하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실명제 적용 사이트 운영자가 광범위한 '사적 검열' 의무를 지게 된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 제2항은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가 유통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같은법의 다른 조항들과 결부되면 일상적인 감시와 모니터링을 강제하는 내용으로 기능한다. 제44조의2 제6항은 누군가 게시물 삭제를 요청만 하면(삭제의 필요성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없이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일단 삭제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배상 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고 이 조항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업무방해 등 각종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네티즌의 의사소통 행위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강력한 유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1996년 통신품위법(Communication Decency)을 제정해 포털과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등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를 '중립적 전달자'(neutral carrier)로 자리매김 하고,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빼곤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책임을 지는 경우는, 이들 사업자가 문제가 되는 콘텐츠의 생산이나 발전 과정에 직접 개입돼 있거나,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잘못, 이를테면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위반 등에 대해 명확한 통지를 받은 뒤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을 때 등 극히 제한적이다.
인터넷에서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위축은, 이미 지상파 방송에까지 확대되는 중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관련 MBC <PD수첩>의 보도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취재 원본을 요구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였다. 정연주 KBS 사장을 일방적으로 해임하는 과정은, 정치적 독립을 위해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방송법 취지를 태연하게 위반하는 몰염치의 극치를 이뤘다. 이런 현 정권의 압박은, 이들 방송 내부에서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려는 움직임을 낳고 있다.
방송에 재갈 물릴 계획들
방송 장악을 위한 정권의 계획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 시도로 구체화하고 있다. 핵심은, 미디어(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집단 상한선을 현행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완화하고, 종합편성채널을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방송 장악을 위한 주요한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종합편성채널은 보도 기능을 포함해 연예/오락/시사/고양 등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프로그램 공급자이다. 독자적인 네트워크(송출망)가 없을 뿐 지상파 방송이나 마찬가지다. 시청가구의 전체 가구의 70~80%에 이르는 케이블TV 등이 반드시 의무편성을 하도록 방송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민영화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방송통신위원회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한 종합편성채널을 올해 안에 출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무게를 얻어가는 실정이다. 실제로 조중동이 '10조원 미만' 특정 대기업과 제휴 작업에 일찌감치 나섰다는 얘기는 이미 언론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측면에서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과 이에 대한 정권 차원의 몰상식한 탄압이 지니는 맥락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중동이 대기업과 손잡아 방송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여론의 제압이 그것이다. 대규모 불매운동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기업들이 조중동과 손잡을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종합편성채널과 기존 지상파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지상파 방송의 시사교양 및 보도 프로그램에서 유지되고 있는 저널리즘 기능의 전면 약화다. 우리에게 익숙한 저널리즘 관련 프로그램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살아남는다 해도, 이들 프로그램의 비판과 분석의 날은 매우 무뎌질 가능성이 높다.
존 스튜어트 밀이 1859년 지은 <자유론>에서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 곧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다양한 의견을 옹호한 이유는, 흔히 얘기되는 것처럼 단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밀이 표현의 자유와 다양한 의견을 옹호한 본질적인 이유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그 의견에 접근하지 못하는 다른 이의 권리도 침해하게 되어 사회적으로 진리에 다가가는 기회가 축소된다는 데 있다. 결국 밀에게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에 해당하는 사회적 자유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고 인터넷을 전면 통제하려는 속내를 여기서 찾는다. 진실에 접근하는 기회를 차단하고 축소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언론시민운동은 대화와 합의를 존중하는 관행에 익숙해져 왔다. 하지만 현 정권은 '봉쇄'와 '적대적 무시'로 일관하고 있고, 언론시민운동은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 직접적 당사자들인 방송 내부 종사자들의 저항이 기대하는 수준을 밑돌고 있다. KBS라는 '약한 고리'는 이미 뚫렸다. 언론시민단체들의 의지와 결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선 다음 아고라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다음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에 실망한 네티즌들이 기존 포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엄호할 수 있는 대안 마련에 언론시민단체들이 중추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조중동 광고주 게시 목록 올리기에 언론시민단체들이 적극 결합하고 나선 시도는 향후 더 발전돼야 한다. '싸우는 제2의 아고라'를 만드는 몫까지 떠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임
* 조준상 님은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