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재생산하는 노동에 익숙해지기
나는 나의 의식주를 얼마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돈을 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계에서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살아왔던 탓이다. 한때 나는 돈이 있으면 나의 자존감도, 독립심도 높아질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돈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자본주의에서 돈(화폐)은 상품 뒤에 숨겨진 노동을, 그 노동의 경험(고통과 자부심)을 가린다. 그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을 가려버리고 마치 돈이 곧 물건을,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노동자는 경영지원부서의 책상위에서 숫자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일회용품이 되고, 고객에게는 무인판매기가 된다. 이런 생각은 나를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을 직접 경험할 필요성을 일깨웠다. 말로 머리로 이해하는 것 말고 내가 실제로 경험하기. 그래서 아주 서툴지만 나는 노력중이다. 밥 해 먹기, 옷 만들기 모임도 하면서. 집짓는 것도 배워볼 생각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어설프지만 잘 하는 것, 효율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사회에서 나 같은 사람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길 위에서 생각하기
바쁘게 살았을 때는 그랬던 것 같다. 늘 종종거리며 거의 뛰다시피 걷는다. 주변에 있는 일과 사물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와 부딪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걷는다. 아니,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잊는다. 차를 타는 것은 더 그렇다. 모든 지나가는 것들은 그저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과의 관계에서 '느낌'이 제거된다. 자신에 대한 느낌조차도 잊는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타인과의 관계도 스쳐지나갈 뿐, 금세 잊어버린다. 로드킬. 길 위에서 나와 세계를 죽이지 않고 '느낌'을 복원하는 방법. 천천히 나와 내 주변을 음미하며 걸어가기. 그리고 길 위에서 생각하기.
사적인 고민을 공적인 일로 만들기 - '재밌는 일' 만들기
노동은 삶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하나의 부분이다. 그러나 노동이 기쁨과 보람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생기를 잃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 생각은 나에게 '재밌는 일 만들기'를 고민하게 했다. 시간과 효율을 따지면 시도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은평구 응암역에서 하는 '벼룩시장과 캠페인'이다. 물건도 팔고, 각자 하고 싶은 얘기도 하고, 그 수익금으로 비정규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기도 한다. 칼도 갈고, 우산도 고치고, 면 생리대 만드는 법도 알려주면서 동네에서 더불어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외박'(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510일 파업을 기록한 영화)공동체 상영하기다. '외박DAY'라는 이름으로 응암역 근처에 있는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이라는 대안청소년문화공간에서 하루 종일 영화상영도 하고 감독과의 대화도 하고 음악공연도 하고. 그야말로 작은 축제를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했었다. 다른 공간에서도 가능하면 해보고 싶다. '벼룩시장과 캠페인'도 '외박DAY'도 끝나고 나면 너무 피곤하지만 또 너무 재밌어서 생기 없을 틈이 없다.
이 모든 아이디어들은 내가 임금노동 생활자를 포기하면서 떠오른 것들이다. 삶에서 '느낌'을 제거하지 않고 그것에 더 깊게 개입하기. 올 한해도 나는 이 지침을 따라 지금, 오늘, 현재를 살아갈 생각이다.
덧붙임
양미(빨간거북) 님은 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