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교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생생토크’ 시간은 교사 1인, 청소년 3인,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1인이 패널로 참석했고, 이들에게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대화를 진행했다.
패널로 나온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이 연애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반응이 ‘꼰대’스러운 줄 알면서도 덜컥 걱정부터 앞서고, 결국엔 ‘남자는 다 늑대니까, 방에 둘이만 있을 때는 문 열어 놓고..’ 같은 이야기만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한 교사는 우스갯소리로 ‘반에서 몇 명이나 해 봤을까..진짜 궁금해.’ 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학교 밖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이랑은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지만, 자기 반 ‘학생들’은 같이 터놓고 연애나 성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 고민이라는 교사도 있었다.
패널로 참석한 청소년들은 어찌 되었든 연애를 상담할 일이 있을 때, 주로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교사에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까칠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잘 사귀고 있는 커플을 학생주임교사가 따로 떨어뜨려 강제전학을 보내버린 주변 학교의 예를 소개하며 청소년의 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향으로 ‘지도’하려는 교사에게 굳이 상담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청소년들의 연애고민은 성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 상당히 구체적인 물음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한 사람만 좋아하는 1:1 연애관계가 맞지 않는다.' , '여자애들은 남자애들과 달리 왜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 걸까?', '오랜 애인과 섹스 말고 어떤 걸로 소통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남자 애인에게 나의 성감대를 설명하는 것이 편하지 않다.' 등 실제 연애할 때 생겨난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학교, 성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 여전
교사, 청소년 모두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로 만나는 순간 서먹해 지고,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고, 또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보수적이어서 성에 대한 이야기는 수면 위에 오르지 조차 못하고, 그렇게 담론이 부족하다 보니 딱히 상담할 만한 곳도 못 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청소년들의 성이 억압되는 것만큼이나 학교에서는 ‘여교사’의 성도 보수적인 틀에 갇혀버린다는 이야기도 터져 나왔다.
모둠별로 가상 연애고민을 해결해보는 '연애팍 도사' 프로그램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고민의 지점들을 확인하고 함께 조언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스킨쉽을 원하는 정도의 차이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동성애자 청소년을 지지하며 상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연애와 스토킹의 차이는 무엇일까/ 10대들의 연애에 대한 부모의 간섭은 정당한가 등을 주제로 모둠별로 논의를 진행했다.
모둠별로 각각 다른 고민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핵심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로 모아졌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스킨쉽을 '해줘야' 하는 관계가 '사랑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 10대들에게 누구를/어떻게 사랑할지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 집요한 애정요구는 사랑이 아닌 폭력이라는 것, 청소년이 성에 대해 알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어야 오히려 그 '위험성'이 사라진다는 것 등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한국 성폭력 상담소 활동가의 '청소년 성폭력 사건 해결 지원' 발제를 마지막으로 워크숍이 끝났다.
의미 있는 대화들이 많이 오간 워크숍이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아쉬운 구석은 남아있었다. 우선 청소년의 성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는 지점에는 모두 공감했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성을 논할 때 늘 '성교육의 질을 높이자'라는 말로 결론이 지어질 때면, 우리는 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청소년’이라는 특수한 레테르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시선은 우리를 오히려 억압하고, 어른들이 말하는 ‘건전함’쪽으로 방향선회 하기를 요구받는 느낌이 들게 한다. 성교육의 내용도 대부분 성폭력 대처나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피임교육을 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 피임교육도 청소년일 때 성관계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다. 청소년은 주체적으로 성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섹스를 하게 되고, 정말 원하지 않았는데 억지로 ‘당하는’ 입장에만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소년 성에 대해 여전히 무지한 언론
우리가 진행한 워크숍이 한 진보언론을 통해 기사화되기도 했는데, 기사의 요지가 청소년들도 성에 무지하거나 무성의 존재가 아니라는 내용이긴 했지만, 여전히 청소년들을 '아이들'이라는 틀 속에 가두고 이들이 바른 성지식과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도와 줘야 한다'는 시선을 벗어나진 못했다. (더불어 패널로 참여한 한 청소년의 성정체성을 동의 없이 기사에 싣기도 했다.) 청소년들도 성적 욕구가 있는 존재이고, 무성의 존재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논의는 유의미하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성은 여전히 충동적인 것이고, 언제나 교육받고, 허락받아야 하는 무언가로 남아 있다. 여전히 즐김이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성을 몰아가는 어른들의 '조바심'에서 청소년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비청소년에게도 성은 '쉬쉬해야' 하는 영역이다. 성이 토론의 영역이 되지 않고, 소통의 영역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나 왜곡된 성지식을 갖게 될 가능성은 높게 마련이다. 청소년만 유독 가르침을 받는 '상담'이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성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누가 더 성숙하고 미성숙한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너도 나도 무지하니 이제부터라도 함께 알아가고, 말해보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길 원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내숭'을 넘어서도 남아있는 교사와 학생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좀 더 '과욕'을 부려야겠다.
덧붙임
해솔, 날토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