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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제 15주년 기획: 다른 생각에 대한 기억] 그 계절이 봄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1.
제임스 조이스의 장편소설 『율리시스』는 한 때 판매금지, 수입금지 되는 불운을 겪었다. 1920년 뉴욕의 마이너 문예지 <리틀 리뷰>가 연재하던 『율리시스』를 ‘죄악금지회’라는 단체가 고소한 것이다. 이유인즉 외설적이라는 거다. 사후에 이 정도로 유명해질지 몰랐던 조이스는 가수가 된 친구를 늘 부러워할 정도로 자신의 문학에 대해 고뇌했다고 한다. 문단의 환영도 못 받고, 지면 얻기도 힘든 지경에 판매금지와 수입 금지를 당했으니 불운은 겹으로 온 셈. 뒤이어 영국에서도 세관에 의해 몰수당하는 치욕을 겪는다. 소심한 소설가의 영혼은 아마 지옥을 헤맸을 것이다. 여러 번 개작한 『율리시스』에는 작가가 사회로부터 당한 폭력의 상흔을 발견할 수 있다. 다행히 『율리시스』는 뉴욕 법원의 판결로 해방을 맞는다.

존. M. 울지 판사는 외설성의 유무를 책을 읽는 이들의 성적 충동을 야기하거나 성적으로 불순하고 육욕적인 사고로 유도하는 경향이 있는가를 판단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한다.

“불결한 것으로 비판받는 단어들은 거의 모든 남자들, 그리고 본인은 감히 말하거니와 많은 여자들에게 알려진 옛 색슨족의 말들이고 이러한 단어들은 본인이 믿기에 조이스가 서술하고자 추구하고 있는 육체적 및 정신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유형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의 인물들의 마음속에서 섹스라는 주제가 거듭 출연하는 것에 대해, 조이스의 배경이 켈트지방이요, 그 계절이 봄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생각의 나무, 1314쪽 )

봄이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하다니! 켈트 지방 색슨 사람들의 연애질을 육담 좋게 묘사해 놓은 게 외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봄엔 거기서 다 그러잖아, 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는 꽃이 피면 들쑤시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실천에 옮기면서 얼크러설크러 살아가는 것 아니냐고, 그것은 죄악이 아니며 특히 법을 어기는 따위는 정녕 아니라고.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 영역이라고. 며칠 전 술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같은 글은 판결문이라고 한 나의 믿음을 접어야 했다. 인간의 자유를 이토록 인간적으로 판단해주는 판결이 아니었다면 미국 법치주의는 두고두고 망신을 당할 뻔 했다. 1933년의 일이다.

2.
1997년은 인권영화제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기억할 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인권영화제와 함께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인권운동사랑방을 덜 외롭게 해주었던 퀴어영화제 상영작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 의해 상영 금지되었다. 동성애 묘사가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검열에 걸려든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공연윤리심의위원회는 성소수자의 사랑이라는 인간의 자유를 ‘변태적 성행위’로 간단하게 압축하는 윤리의식을 보여주었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왕가위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모욕에 떨게 했다.

장정일은 그의 장편 소설『네게 거짓말을 해봐』 때문에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을 당했다. 음란물을 만들어 놓고 뻔뻔하게 반성도 안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서울지법 형사6단독 김형진 판사는 장정일의 소설이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변태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에 치중하고 있어 음란성이 충분히 인정”된단다. 보통사람의 성적 자율성 또는 성적 상상력을 뭘로 보고 이러시나. 울지 판사가 김 판사를 뒤풀이에서 만났다면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촌스럽기는, 맥주나 마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또 한 사람이 모욕을 당해야 했다. 같은 해 인권영화제에서 <레드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를 들어 집행위원장 서준식이 구속되었다. 기소된 죄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국가보안법 제 7 조, 보안관찰법, 음반및비디오에관한법률(음비법), 기부금품모집규제법,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현주건조물침입). 보도자료 쓰기도 번거로웠던 갖은 죄목이었다. 감옥에서 서준식은 음비법이 ‘음란한 비디오’라고 엉뚱하게 오해받아 다른 재소자들의 경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엉뚱한 짓은 재판부도 저질렀다. 현주건조물침입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서준식은 최후진술에서 재판부에 법적평등을 강하게 요청했다. <레드헌트>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문제 삼지 않았고, <참된 시작>을 쓴 사람도 판 사람도 기소되지 않았는데 유독 1997년 서준식에게 그것이 죄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판부는 현주건조물침입이라는 죄목을 달아주었을까, 평등에 대한 답으로? 재판부가 법적평등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영화제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 ‘건조물’이 될 것이라는 점은 예언한 것 같다. 서울에 그 많은 극장 중 단 한 곳도 인권영화제를 받아주지 않는 15주년의 현실 말이다.

2007년 제2회 인권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홍익대학교 정문을 경찰이 봉쇄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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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제2회 인권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홍익대학교 정문을 경찰이 봉쇄하고 있다.



3.
에로티시즘이 봄에 법석을 떨 듯, 저항을 향한 욕망도 봄에 우리를 들쑤신다. 15년이나 영화제를 했는데 상영관에서 쫓겨나고 광장에서도 밀려났다. 마로니에 공원이 녹색으로 만개하지 않았다면 인권영화제는 조금 더 외로웠을지 모른다. 인권영화제의 배경은 온갖 인권침해가 벌어지는 서울이요, 그 계절이 봄임을 언제나 기억하자.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외』에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를 전한다. 인권영화제, 앞으로도 족히 열두 걸음은 뚜벅 뚜벅 옮기기 바라는 마음으로.

『소외』중에서 “엘베 강의 해적”

함부르크 사람들은 1400년 죽은 한 해적을 오늘날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남자는 클라우스 슈토르테베커 해적이다. 엘베 강의 해적. 1390년 한자동명은 피를 부르며 무력으로 북대서양과 발트 해의 상권을 장악했다. 한자동명은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장인들과 농민들에게는 일방적으로 물건 가격을 정해 주었다. 그리고 수천 척에 달하는 배들을 지휘하는 한자 선장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모두 교수형에 처했다.

포악한 얼굴에 주홍색 수염을 기르고 거대한 체구를 지닌 클라우스는 일부 뱃사람들은 한자 동맹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1392년 고틀란드 섬에서 슈토르테베커의 부하들은 자기네 행동 강령을 한 신부에게 받아 적게 했다. 그 후 신부는 북유럽의 갖가지 방언들로 언급된 그 행동 강령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그 행동 강령은, 인간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신의 선택을 받았고 행복만이 그 어느 고통도 참아 낼 수 있는 생명력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그렇듯 한자 동맹은 해적에게 현상금을 걸었고,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 선장 10여 명은 해적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해적은 1400년 중순까지 잘 피해 다녔다.

그해 어느 봄날 아침, 해적과 그의 부하 백여 명의 처형식을 관전하기 위해 악마의 다리 옆에 한자 동맹 전원이 모였다.

시장이 힘찬 목소리로 참형을 선포했다.

그러자 주홍색 수염을 기른 해적이 말했다.

“내가 첫 번째가 되고 싶소. 그게 다가 아니오. 시장, 이 진풍경을 더욱 흥미롭게 하기 위해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하겠소.”

“말해 보아라.” 시장이 명했다.

“내가 첫 번째가 되고 싶소. 나는 선 채로 참수형을 당하겠소. 그래서 내 머리가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후, 내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내 부하들을 한 명 씩 살려 주시오.”

군중 한 명이 “엘베 강의 해적, 만세”라고 외치자 해적이 만용을 부리는 거라 확신한 시장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날카로운 칼날이 아침 공기를 가르며 해적의 목덜미로 들어가 턱수염이 있는 쪽으로 나왔다. 머리가 다리 기둥이 있는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지켜보는 가운데, 참수형을 당한 해적은 쓰러지기 전에 열두 발짝을 떼었다.

그 일은 1400년 어느 봄날 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의 6백 년이 지난 1999년 7월 첫 주, 함부르크 경찰은 백 번째로 거리의 이름을 바꾸려고 시도한 젊은이 몇 명을 구속했다. 그들은 <클라우스 슈토르테베커 거리>라는 하얀 글씨가 적힌 길쭉한 파란색 스티커를 전혀 유명하지 않은 시몬 폰 우트레히트 시장의 이름이 적힌 철판 위에 붙이다가 붙잡혔다.

삶이 짧고 허망한 건 확실하지만, 자존심과 용기가 삶에 생명력을 물어넣는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 생명력은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함정과 불행을 견딜 만하게 해준다.


* 인용한 글은『소외』중에서 “엘베 강의 해적”을 짧게 축약했다. 열린책들, 122-126쪽

덧붙임

김정아 님은 현재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입니다. 김정아 님은 인권영화제 2회부터 11회까지 프로그래머, 총기획 등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