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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차별금지법-여섯 가지 이유 있는 걱정

[기획 : 차별금지법-여섯 가지 이유 있는 걱정④] 복잡한 차별 현실, 차별금지법에 담기

복합차별에 대한 논의의 시작

복합차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복잡한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인지 차별이 섞여있다는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연속으로 진행하고 있는 반차별공동행동의 쟁점포럼 4회차에서는 <복잡한 차별 현실, 차별금지법에 담기>라는 제목으로 복합차별에 대한 논의를 풀어보았다.

9월 9일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네 번째 쟁점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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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9일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네 번째 쟁점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복합차별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낯선 개념이다. ‘개별사유에 의한 차별’만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1개 이상의 정체성이나 조건으로 인해 차별을 받았을 때 이런 상황을 설명할 만한 마땅한 용어도 없다.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말은 ‘이중차별(double discrimination)’이다. 이중차별 이라는 용어는 장애여성의 경험을 드러낼 때 주로 이야기되어왔고 이후 좀 더 대중화되어서 이주여성, 비정규직 여성 운동으로 퍼져나갔으며 언론에서도 취약하고 열악한 상황에 놓인 집단은 ‘이중차별을 경험한다’고 관용적으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장애여성 운동 진영에서는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장애여성의 경험은 여성 의로서의 경험과 장애인 의로서의 경험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고유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중차별이 쓰이는 맥락은 비교 대상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음을(장애남성에 비해 장애여성이 혹은 비정규직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여성이) 강조하는 차원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중’이라는 말 때문에 그 사람의 정체성이 두 가지로만 한정되는 문제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용어의 한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multiple discrimination이라는 용어가 보편화 되었는데 한국어로는 복합차별 혹은 다중차별로 옮길 수 있다. 복합차별의 양상도 무척 다양하게 볼 수 있는데, 교차차별(intersactional discrimination)을 복합차별의 한 가지 형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차차별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연결되어 있는 두 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서, 군대에서 백인남성은 물론이고 백인여성이나 흑인남성은 진급을 하는데 흑인여성이 진급을 하지 못할 경우 인종과 젠더가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하게 ‘여성이어서’ 혹은 ‘흑인이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복잡한 차별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용어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라 앞으로 많은 논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런 현실과 상황을 하나의 용어로 정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차별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차원에서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에서는 개념적 혼란을 방지하고자 교차차별을 포함하여 이런 상황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복합차별’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

복합차별과 차별금지법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 복합차별에 대한 담론과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다. 특히 젠더와 연령처럼 다른 차별 사유와 접점이 많은 경우는 구체적인 상황 및 차별사례들이 이야기되고 있다. 개별사유로 인한 차별은 어느 정도 대응하고 있지만 복합차별의 법적, 제도적인 해결책은 아직 뚜렷하게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런 고민으로 인해 실질적인 대안들이 논의되고 있는데 캐나다는 법 조항에 ‘1개 이상의 차별 사유’ 혹은 ‘차별 사유들의 조합’이라는 표현을 포함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 간접차별의 개념을 확대시키면 복합차별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고, 차별 사유 목록을 특정한 몇 가지로 고정하지 않고 열린 채로 두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비교 대상자에 집착하지 않고 ‘왜’ 이러한 차별이 발생했는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실제 법 적용에서 가능한 방법들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복합차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교차적인 접근과 통합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지금의 시점에서 복합차별과 관련하여 법적인 논의를 구체적으로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가장 기본적으로, 복합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낮기 때문에 법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방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일반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차별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 개별법도 여러 사유별로 제정되지 않은 상태이고 그나마 있는 법 중에서 연령차별금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영역에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다. 법이 있다 해도 차별을 받는 상황을 ‘차별이 아니’라는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커진다는 의미에서 차별의 개념과 차별금지 관련 법률의 적용 영역이 좁혀지는 것은 문제로 봐야 한다. 이런 경우라면 개별법이 지금보다 많이 제정된다고 해도 복합차별의 경우는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2008년에 시행되었지만 실제로 현장을 살펴보면 ‘명쾌하게’ 장애인 차별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서 장애인차별상담을 맡고 있는 서재경 활동가는 상담을 하면서 고민이 되었던 지점들을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했다. 서재경 활동가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인권위가 건강상의 차별이라고 판단한 사례, 명백하게 장애인 차별이지만 이것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서 기각당한 사례, 정신장애여성이 피해를 당했지만 여성차별이냐 장애차별이냐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고 사건의 성격 상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으로 접근해야 하는 사례 등을 소개했다. 당사자들의 오랜 투쟁과 힘으로 장차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이 있기에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차별’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차별 양상은 너무 복잡하고 조사관의 감수성, 사회의 인식 정도, 제도적 지원 등에 따라 법 적용의 기준과 실효성이 달라진다고 서재경 활동가는 지적했다.

일반법이 실효성 있는 법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되어야겠지만, ‘통합법’적인 성격이 없는 일반적 차별금지법은 현재의 인권위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통합적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차별 사유의 단순한 나열에서 나아가 차별에 대한 다른 관점과 세밀한 고민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차별금지법이 복합차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지의 여부, 차별사례에 대하여 복합적인 관점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반차별운동에서 복합차별의 다양한 사례를 드러내자

소수자 운동, 반차별 운동을 해온 사람들에게 한 사람의 정체성이 복합적이고 차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현실의 사례들을 보아도 차별이 인권위법에서 열거한 사유 중 하나에 명확하게 걸리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양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이런 현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알리기 위해서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9월 9일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네 번째 쟁점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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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9일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네 번째 쟁점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한국에서 복합차별 사례가 가시화된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고, 최근의 성인종차별대책위원회의 활동이 복합차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신기루 활동가는 성차별의 관점에서 복합차별의 맥락으로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면서 몇 가지 사례를 분석하였다. 얼마 전 승소 판결이 난 ‘KTX 여승무원’ 사건은 여성차별 혹은 비정규직 차별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신기루 활동가는 자세히 살펴보면 이 문제는 여성 분리채용, 외주화, 외모, 신체조건, 나이, 고용형태, 성별로 인한 복합적인 차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래야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차별’로 판단해서 시정경고를 내렸을 때 남성 몇 명만을 채용한 후 성차별이 개선되었다고 주장하는 철도공사의 회피적 태도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정기공사협회의 조기직급정년 차별 사건도 이와 마찬가지로 성별과 연령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례로 볼 수 있으며, 성차별이나 연령차별 어느 한 가지만 해소될 경우 이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차별을 경험한 당사자들조차 스스로의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그것은 소수자 운동일수록 하나의 명확한 정체성에 기반 한 경우가 많으며 복합차별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회적인 영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법과 제도가 만들어낸 한계에 자신의 경험을 맞춰야만 하는 탓도 있다.

복합차별을 이야기하자는 것은 도식적으로 이 차별은 ‘젠더와 인종이 합쳐진 것이다’ 혹은 ‘연령과 장애가 교차 되서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분석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누가 가장 차별받는 집단인가를 따져보자는 것도 아니다. 차별이 복합적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한 사람의 정체성이나 경험이 분리되지 않은 채 전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보노짓 후세인’ 사건의 당사자인 한지선 씨는 이런 부분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그 사건은 본인이 보았을 때 인종, 젠더, 사회적 계급․ 계층과 관련된 차별이 결합되어 있었지만 ‘인종차별’로 명명되면서 자신의 경험은 현장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지선 씨 자신도 그 당시 ‘성인종차별’이나 ‘복합차별’같은 용어를 떠올리지 못했고 포럼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통해 이제야 자신의 경험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례와 경험을 반영하여 차별 피해에 대한 부분을 재해석하는 판례’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반차별 운동을 하는 단체 및 단위들끼리 연대해서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복합차별의 양상을 드러내는 작업이 그래서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복합차별을 좀 더 가시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높이는 과정이 있을 때 차별금지법 뿐만 아니라 차별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할 것이다.
덧붙임

진경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