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걸까? 어디에 어떤 개발을 할지는 누가 결정하는 걸까? 개발을 추진할 때 찬반 충돌이 잦은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이 있는 서울시 중림동 398번지 일대로 가보자. 서울시 중구청은 2010년부터 중림동 398번지 일대를 개발 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30년밖에 안 된 동네가 노후 불량?
중림동은 1980년대 초 자력재개발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불과 30년밖에 안 된 동네다. 이 지역 건축물들의 73%는 30년이 안 된 건물이다(표1 참조). 그런데 중구청은 이 동네가 낡았다며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개발 구역(정비구역)을 지정할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노후ㆍ불량건축물의 밀집이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제2조 제3호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제2조가 노후․불량건축물의 범위를 정한다. 이에 따르면, “당해 건축물을 준공일 기준으로 40년까지 사용하기 위하여 보수․보강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철거 후 새로운 건축물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는 건축물”도 포함된다. 즉, 지은 지 몇 년이 됐든 철거해서 새로 짓는 비용이 보수하는 비용보다 적다는 계산만 나오면 낡은 건물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준공된 후 20년 이상의 범위”에서도 도시미관을 저해해 철거해야 한다고 시․도 조례가 정하면 노후․불량건축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노후․불량건축물은 사실상 지자체가 철거하고 싶은 건축물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중림동 개발의 근거는 ‘역세권 시프트’
중구청이 중림동을 대상으로 하려는 사업은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써 일반적으로 상업지역·공업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도시환경정비사업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거나 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적 등을 이유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개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가령 중림동을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중구청이 서울시 도시환경정비기본계획에 기초해 중림동을 정비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한다. 서울시가 중구청의 정비구역 신청을 받아들이면 중림동은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이 된다. 지금 중구청은 서울시에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하기 위한 막바지 준비 중이다.
그런데 중림동 398번지 일대는 주택이 대부분이고 소규모 가게가 조금 있는 주거지(전체 건물 137동 중 주거용 건물이 102동, 근린생활 27동)로써, 일반적인 도시환경정비사업 대상 지역이 아니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림동은 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지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8월 11일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중림동 역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대상 지역이 되었다. 이 개정안에서 추가된 내용은 “역세권 등 양호한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한 지역으로서 주택법 제38조의6에 따라 토지의 고도이용과 건축물의 복합개발을 통한 주택 건설․공급이 필요한 지역”에 대해서도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세권시프트 사업이다.
서울시는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건립관련 지구단위계획 수립 및 운영기준’을 마련해 역세권 시프트 사업의 세부 요건을 정했다. 여기에 따르면 20년 이상 된 건물이 50%만 넘어도 개발을 할 수 있다. 중림동 398번지 일대는 30년밖에 안 된 동네인데도, 충정로역으로부터 250미터 이내에 있는 1차 역세권이라는 이유로 개발할 수 있는 대상 구역이 되어 버렸다. 서울시는 올해 역세권시프트 3,500세대를 공급하겠다면서, 개발 요건을 더욱 완화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개정했다. 구역지정 요건 완화의 문제는 중림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점차 완화되는 정비구역 지정 요건
정비구역지정요건의 완화는 도시환경정비사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도심재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개발 사업의 구역 지정 요건을 완화해 왔다. 정비구역 지정 요건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을 상위법으로 하고 세부 요건은 광역자치단체의 조례에서 정한다. 따라서 각 지자체별로 정비구역 지정 요건을 다르게 규정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이러한 정비구역 지정요건이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완화되면서 개발의 문제점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이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진 서울에서 아직도 개발과 관련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비구역 지정 요건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된다. 노후도, 호수밀도, 과소필지, 접도율이 그것이다. 노후도는 전체 건축물 중 노후․불량 건축물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호수밀도는 1만 제곱미터(1헥타르)의 면적에 몇 개 이상의 건축물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과소필지는 대지에 건축물을 짓기에 너무 좁아 효용이 없다고 여겨지는 90제곱미터 미만의 필지(토지대장이 작성되는 토지의 단위)가 얼마나 있는지를 일컫는다. 접도율은 전체 건축물 중 폭 4미터 이상의 도로에 접한 건축물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는 것으로, 도로에 대한 접근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지난 2006년 서울시는 정비사업구역 지정 요건을 완화하여 노후도 60% 이상, 호수밀도 60호/헥타르 이상, 과소필지 50% 이상, 접도율 30% 이하의 네 가지 요건 중 두 개 이상만 충족하면 정비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이전까지는 4개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했으며 내용도 더욱 엄격했다. 2010년에는 요건의 완화로 난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져 다시 강화되었지만 2003년의 지정기준에 비하면 이 역시 과도하게 완화된 기준이다(표2 참조).
구분 | 최초(2003.12.30.) | 종전(2006.7.19.)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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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적용 | 4개 기준 충족 | 4개 기준 중 2개 이상 적용 |
노후도 기준 필수 나머지 중 1개 선택 |
노후도 | 2/3 이상 | 60% 이상 | 60% 이상 |
호수밀도 | 70호/ha 이상 | 60호/ha 이상 | 60호/ha 이상 |
과소필지 | 50% 이상 | 50% 이상 | 50% 이상 |
접도율 | 30% 이하 | 30% 이하 | 40% 이하 |
이러한 지자체들의 정비구역 지정요건 완화에 제동을 건 법원의 판례도 있다. 지난 2007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안양5동과 안양9동을 주거환경개선사업구역으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행정2부(재판장 전광식 부장판사)은 이들 구역지정을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여러가지 정비구역 지정요건 가운데 한 가지 요건만 갖추면 주거환경개선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규정한 ‘경기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는 모법(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의 시행령 규정보다 완화된 것”이라 법이 조례에 위임한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경기도가 198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축된 건축물(당시 기준으로 준공 후 20년이 지난 건축물)을 모두 노후․불량건축물로 분류한 것은 위법”하다며 개별 건축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통해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인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역세권시프트 사업의 요건으로 정한 ‘20년 이상 된 건물 50% 이상’ 역시 위법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의 이중행보에 피해 보는 원주민들
개발은 필요한 지역에 해야 한다. 만일 개발에 의해 그곳에 살던 주민들의 삶의 조건이 더욱 열악해진다면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훼손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루어진 개발의 결과를 살펴보면 그것이 과연 주민들을 위한 개발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2009년 용산참사를 계기로 개발 문제는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원주민 재정착률이 낮다는 등 개발의 일반적 문제를 누구나 지적한다. 그동안 지역발전을 빌미 삼아 막개발을 추진했던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개선방안을 마련한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개발 구역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개선’으로 더욱 개발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현재의 개발 사업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 구역 지정 요건을 완화하면서, 개발이 필요하지 않은 지역까지도 개발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일일까? 정치인들의 이중 행보에 원주민들만 개발 사업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병원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