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했었다. 시작은 “돈도 벌고, 장애인도 만나고”였다. 장애인과 만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비장애인처럼 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버하기도 싫고. 내가 커밍아웃할 때 드러나는 이성애자들의 어리숙함을 나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인권감수성 욕심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 이용자와의 관계는 익숙해졌다. 최소한 낯설어서 갖게 되는 두려움은 사라졌다.
하지만 불만은 쌓여갔다. 말 못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였다. 참 쓰기조차 부끄러운데,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간다거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자꾸 나에게 물어보는 거 같은 것들. 그 당시에는 나의 이런 불만들에 갖가지 이유들을 대서 정당화하려 했다. ‘본인도 직장을 다니고 싶다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화장실에 자주 갈 수는 없어. 커피를 줄이던지 조절이 좀 필요한 거 아냐? 언제까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내가 알려줄 수는 없어. 활동보조가 없을 때도 로그인할 수 있어야 할 거 아냐?’ 물론 절대 말하지는 않았다. 나도 이게 얼마나 구린지 알고 있었다.
‘화장실이야 자기 가고 싶을 때 가는 거지. 기억력이 안 좋다고 인터넷을 못해서는 안 되잖아.’ 내가 가진 불만들이 장애인 인권의 측면에서 문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시도 때도 없이 불만이 튀어나왔다. 불만이 너무 쌓이면 짜증스럽게 변했다. 어디다 풀 수도 없었다. 말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싫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무척이나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별로인 인간이었다니. 가진 건 인권감수성밖에 없다 생각했는데.
일을 그만둔 이제 와서야 그 불만들을 거리 두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시간을 빼앗긴다고 느껴서였던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로서 느끼는 불만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일상을 챙겨주는 일’이 익숙하지 못한 나는 거기서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내 시간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때문에 빼앗긴다고 느꼈던 거 같다. 그러다 보니 마치 이용자 삶의 가치가 내 삶의 가치가 되어 버리고, 이용자의 삶에 대한 불만까지 생겨 버린 것 같다.
활동보조를 하기 전에는 내가 지닌 소수자로서의 경험과 장애인이 가진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잘 연결시킬 수 있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장애인의 경험들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근데 활동보조라는 입장에서 만나는 장애인은 달랐고, 나는 어느새 장애인을 ‘돌보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생겨나는 불만들은 어느새 이용자를 향하게 되었다. 그건 그 불만들을 즉각적으로 풀 수 있는 사회구조적인 통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 만들어주니까 우리가 만들어야지 뭐.)
어쩌면 활동보조를 하게 되면서 가장 놀랐던 건,
내 속에서 장애인 인권을 무시하는 말이 튀어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노동이 나를 좀먹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는 거 같다.
* 추신 : 당연한 말이지만 이 글은 저의 경험임을 강조하고 싶네요. 장애인 활동보조하는 사람들이 다 이런다고 생각할까봐 약간 우려가 되어서 말입니다.
덧붙임
오리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완전변태'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