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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전두환 추징금 환수운동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들

진실을 향한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과거사 정리 작업은 중요한 인권분야이지만 이명박 정부 5년은 전반적으로 역행의 시기였다. 진실화해위원회를 해체함으로써 과거청산 작업을 청산하였다. 공권력이 민간인을 학살하였다면 대통령의 사사로운 견해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가해자로서 국가를 대신하여 사죄해야할 의무가 존재한다. 죽음을 편 가르지 않고 애도하며 기억하는 것은 인도성의 기본이다. 폴란드의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의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국가원수는 바로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라고 만든 직책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마르고 닳도록 대통령은 누구든지 매년 4.3일나 5.18일에 제주도와 광주의 기념식에 참여해야만 한다.

2005년에 증보된 유엔의 <불처벌투쟁원칙>은 홀로코스트 부인행위와 같이 인권침해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행위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수정주의적 태도에 맞서 투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제3조). 우리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부인자의 입장을 취했던 것 같다. 부인주의자들의 정권 아래서 또 다른 부인세력들이 발호하였다. 인터넷 웹사이트 일간베스트(약칭 일베)가 어수선한 시대 분위기를 틈타 부인주의자들의 숙주가 되어 5․18 희생자들을 극단적으로 모욕하고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단지 2013년에 곪아 터진 것이다. 여기에 종합편성 방송은 보수논객과 탈북자의 입을 통해 저열한 가설을 재생산하고 서로 참조하였다. 부인의 표현과 증오적 언사(hate speech)는 피해자 집단의 명예를 침해하고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가들은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2004년 르완다 국제군사법정은 방송매체를 통해 증오적 언사를 남발한 자를 전쟁범죄자로 처벌하기도 하였다.

2005년에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2007)>이라는 철학적 풍모마저 느껴지는 여섯 권의 종합보고서를 통해 각종 인권유린과 불법행위를 스스로 고발한 국정원이 정권교체 후에 정치와 선거판에 개입하더니 이참에 아예 국가정보를 누설하며 국기를 뒤흔들었다. 진정한 의미에 정보상업주의라고 할까, 불법의 관성을 극복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모양이다. 국정원에 대한 감시와 통제 그리고 혁신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를 일깨우고 있다. 어쨌든 현재의 국정조사는 잘 진행될 이유가 없는 것같다. 이들이 자행한 불법과 반칙의 수익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왕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익스피어의 <헨리 5세>의 대사처럼 “비록 왕의 주장이 잘못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충직하게 복종했다고 하면 우리의 죄는 씻겨 버리지 않겠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국정원 사람들에게‘세계인’이 되라면 무리한 요구이겠지만 최소한 ‘왕의 사람’이 아니라‘국가의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의 이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의 이성은 대변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표현을 따르면 국정원의 행태는 사사로운 파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패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전두환 추징금 환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과거사 파동은 또다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문에 불상사를 몰고 왔다. 시효완성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광주학살의 주범으로서 상징성에 대중의 부정적인 정서가 결합하여 추징금을 위한 특별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일명 전두환 추징법)이 제정되었다.

[출처: 프레시안]

▲ [출처: 프레시안]


그러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은 검찰의 전 씨 일가의 재산검색작업을 구경만할 것이 아니라 과거청산의 큰 맥락에서 확전을 도모해야 한다. 전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은 재벌총수나 기업가들에 받은 뇌물과 관련된 것일 뿐이다. 신군부세력 누구도 학살로 인해 발생한 국가보상과 배상에 대해서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만 국가범죄의 특허권자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쿠데타 이후에 혁명재판소를 설치하여 특수범죄처벌법으로 진보적인 인사들을 고문하고 처형하였다. 그러한 행태는 유신시대와 긴급조치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당시에 자행된 일련의 재판들이 최근에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되었다. 그 여파로 손해배상소송에서 국가는 희생자들의 유족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게 되었다. 치사하지만 돈에 주목해야 하겠다. 시민들은 불의한 권력의 만행을 묵인했으므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기 때문에 자신이 낸 세금에서 그 희생자들에게 배상금을 제공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인권유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가해자들은 책임을 피하고 시민만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부당하다. 그 원인 유발자들에게 일정 비율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의로우며, 이것이 법의 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살, 각종인권유린사건, 불법수사, 조작재판에 관여한 공직자들에게 가담정도에 따라 배상금이나 보상금을 징수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법도 제정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공직사회에 법의 지배와 공적 책임이 확립될 것이며, 추징금 소동을 겪는 한 가문의 외로움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국가기관으로서 사법부만이 과거청산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법원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심권고를 수용하여 다수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역사적 부정의를 시정하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사법부에 의한 권리구제 방식은 점차 한계에 봉착하였다. 개별사건의 구제방식이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사법적 논리의 제약도 적지 않다. 일례로 울산보도연맹원 집단살해 사건에 대해 2011년 대법원의 판결 이후 배상의 문이 열렸으나 2013년 5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시효이론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청구권을 제한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던 청구인에 대해서는 배상청구를 봉쇄하였다. 같은 시기에 발생한 학살사건에 대해서 상이한 판결을 내리는 것은 피해자에게는 불평등한 취급을 의미할 뿐이다. 이제 집단희생자나 긴급조치 피해자와 같이 대량의 인권유린 사태를 입법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확립된 원칙에 따라 포괄구제법을 제정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 분명한데 국회는 몇 년째 아무런 반응이 없다.

더 이상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과거 청산은 이뤄져야

과거사는 과거에만 속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과거사는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개인적 수준에서는 물적 피해는 배상을 통해 만회될지 모르지만 정신적 피해와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때로는 공적 차원에서는 인권 침해기제가 혁파되지 않고 더욱 정교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우리는 배상과 치유라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민주주의 심화와 제도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과거청산 작업은 과거의 침해자를 처벌하자는 회고적 응보가 아니라 인권침해의 재발 방지라는 전망적 야심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청산은 특정한 시대에 국한되는 일이거나 특정한 정치세력이 독점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과 정의를 향한 싸움이자 일상적이고 공공적인 사업이다.

새누리당도 이러한 대의를 주도할 기회를 다시 얻었다. 유엔의 <피해자권리장전(2006)>을 모범으로 삼아 과거청산 작업을 재개하여 그 성과를 초당파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공통기반이 과잉 이데올로기화된 역사전쟁에 휴전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올해 정기국회가 진실화해법을 되살려 아직 해원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엔의 <불처벌투쟁원칙>은 피해자들에게‘진실을 알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시효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실화해법이 부활한다면 그 법은 피해자들에게 진실을 향한 더없이 좋은 문이 될 것이다.
덧붙임

이재승 님은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