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 민낯을 그대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불평등함은 세월호 추모의 과정에서도 드러났습니다. 희생자가 어떤 사람이냐 때문에 추모받지 못하거나 사건을 둘러싼 사람 중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싸움의 주체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기에 평등하게 추모 받고 등등한 주체로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함께 성찰하기 위해 5월 8일과 5월 18일 청와대 만민공동회에서 발표한 발언록을 싣습니다.
배가 뒤집혀 300여명이 목숨을 잃은 초유의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세월호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원들의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이었습니다. 배를 가장 먼저 탈출하고 전원 구조된 갑판부와 기관부에는 70%가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으며, 계약과 해약이 반복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직업윤리, 소속감, 책임감을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세월호의 선원들이 비정규직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비용절감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5월 초순, 지하철이 추돌해 24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인 승무체제를 단독 혹은 무인운전으로 바꾸겠다며 도입한 열차 자동운전 장치, 과도한 외주화, 그리고 2000년 이후 10년간 무려 600여명 감소된 정비 인원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이유는 비용절감이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를 또 다른 버스가 들이받아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운전자는 당일 18시간 연속 근무를 하며 극도의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장시간 근무는 예산을 지원하는 지방정부가 적정수준의 인건비 유지를 평가항목에 넣고 있어 버스회사들이 신규 채용을 줄였고, 부족한 인력은 심각한 장시간노동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이유는 비용절감이었습니다.
공항에도 철도에도 병원에도 건설 현장에도 인력은 부족하고 대부분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안전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인간을 비용으로 치부하고 오로지 비용을 줄일 작정만 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질 수 없습니다. 낮은 임금, 부족한 인력, 소속감이 박탈된 불안한 노동은 계속되는 재난으로, 불안한 사회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의 끝자락에 바로 알바노동자가 서 있습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존재인 세월호 알바노동자는 최저임금도 못 받고 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심지어 장례비도 못 받고 있습니다. 최근 청해진해운은 알바노동자를 승객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끝끝내 선원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선원으로 인정하면 청해진해운이 장례비든 보상이든 결국 그 비용들을 떠안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청해진 해운이 알바노동자를 승객이라 판단할 경우 이제 보상 문제는 책임주체가 애매해 집니다. 승객에 대한 보상책임이 있는 보험사는 근로관계가 명확한 알바노동자를 승객으로 인정해 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시 청해진해운으로 보상책임을 떠넘기게 되면 유족은 청해진해운과 보험사 사이에서 오 갈대 없는 처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생떼 같은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고 그 죽음에 대해 세상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니. 부모님의 비참한 심정을 어찌해야 합니까. 도대체 이 사회는 왜 이렇게 야만적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쉽게 쓰고, 가장 쉽게 버릴 수 있는 노동자. 일하다 목숨을 잃었음에도 장례비조차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 가장 저렴한 노동자가 바로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알바노동자 500만. 늘어나는 일자리는 오로지 알바수준의 일자리 밖에 없는 상황. 시간제일자리라는 이유로 박근혜정부가 앞장서 전 국민 알바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 우리는 이 사회에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요. 인간을 비용으로 치부했던 세월호는 결국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우리사회도 비슷합니다. 서서히, 그러나 파멸적으로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이제 분노의 방향을 정하고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와 같이 침몰하는 이놈의 불안한 사회를 바꾸려면 불안한 노동부터 바꿔야 합니다. 결국 불안한 노동을 확산시켜온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을 묻고 국정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썩은 내각과 낡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분노의 볼륨을 높여 청와대를 향해 쏟아내고 대안을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버이날을 맞아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의 아픔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이 무려 23일째 생활하고 있는 진도체육관에 칸막이 하나 설치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총체적인 무능과 무기력도 모자라 이 정부는 피해자 가족들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도덕과 양심이 있다면 이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만민공동회는 청와대를 향한 우리 행동의 첫 시작입니다. 저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5월 8일 청와대 만민공동회 때 발언한 내용입니다.
덧붙임
구교현 님은 알바노조 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