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의 현실은 더 엄혹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치과 치료는 물론이고, 생명과 직결된 필수적 의료에서도 차별받으며 더 많이 아프고, 더 일찍 죽는다. 한국은 GDP대비 의료비 본인부담 비중이 OECD 평균적인 수준에 비해 1.5배 높다. 또한 소득의 40%를 의료비로 사용하는 ‘재난적 의료비 발생 가구’도 2.5배 높다. 고소득 남성은 저소득 남성에 비해 9.11년 더 오래 산다. “성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 (유엔의 사회권 규약 제12조)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저소득층이 더 일찍 죽는다는 것은 사실 매일 매순간 더 많은 저소득층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과 같다. 건강불평등과 건강권의 침해는 현재진행형인 재앙이다.
의료민영화 강행 선언, 6차 투자활성화 대책
건강권 현실이 이렇게 형편없는 상황인데 박근혜 정부는 건강을 돈벌이로 만들 계획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세월호 사태 이후 개편된 2기 내각의 핵심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8월 초 경제활성화 법안 30개를 국회가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여기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보험사의 환자 유인알선 행위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 의료민영화 악법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12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밝혔던 계획들이 담겨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렇게 의료민영화 법안을 경제활성화 법안으로 포장하는 것도 모자라 6차 투자활성화 대책도 발표한다.
이미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절실하게 모이고 있다. 지난해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 발표된 뒤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대국민 서명은 목표치의 2배인 200만을 넘었다. 여론조사에서도 70% 이상이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병원 노동자의 파업 투쟁과 전국적인 시민사회의 연대가 이러한 여론의 촉매가 되었다.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이러한 반대 여론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4차 투자활성화 대책보다 더 파괴적인 의료민영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당장 10월 국회에서부터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쟁점법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영리병원 우려먹기, 민낯을 드러내다
영리병원은 의료민영화의 핵심 중 하나로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미국 영리병원들은 의료비가 비싸고 질도 나쁘다고 알려져 있다. 의사에게 응급실 찾은 환자의 20%를, 65세 노인인 경우 50%를 입원시키라는 지침을 내리고 매출을 올리지 않으면 해고하는 등 비윤리적인 사례가 넘쳐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병원이 영리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한 것과 마찬가지다. 영리자회사 허용은 병원에 돈벌이가 목적인 투자를 병원이 받을 수 있게 만들고, 병원의 수익을 병원에 재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등 밖으로 빼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영리병원 허용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낸다. 미국에서도 영리자회사를 가진 비영리병원이 기존 비영리병원보다 가난한 환자를 덜 진료하고, 의료시설을 과잉투자하고, 의료비가 증가하고, 리베이트 및 부당청구 증가 등을 일으켜 영리병원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고 회계감사원이 지적한 바 있다.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더 나아가서 인천 송도와 같은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영리병원 규제를 더 완화할 계획이다. 국내 자본이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의료진을 고용해서 영리병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되어 무늬만 외국인 영리병원이 될 것이다. 게다가 대학병원도 기술지주회사라는 명목으로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도록 허용하는데, 4차 대책을 발표할 때 중소병원의 경영이 어렵기 때문에 영리자회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던 정부 스스로의 주장도 명백히 파괴해버렸다.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원격의료
또 다른 쟁점 중 하나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이다. 의료법 개정 사안으로 쟁점법안이다. 천만 스마트폰 시대에 병원에 가지 않고 영상으로 진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편리해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는 병원 체계를 무너뜨려 더 큰 불편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
원격의료는 삼성, LG, SK텔레콤 등 재벌과 삼성병원, 아산병원 등 재벌병원들이 의료를 독과점적으로 지배해 장기적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네의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2011년부터 진행해 올해 결과를 발표한 시범사업이다. 시범사업은 ‘시범’이라는 말 그대로 원격의료가 허용된 뒤 현실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시범사업을 진행한 주체가 바로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재벌병원과 삼성, SK, KT, LG 등 재벌기업들이다.
원격의료는 환자를 위한 것도 아니다. 이미 효과 측면에서 기존 대면치료에 비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최근 국제적 연구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추세다. 비용만 더 드는 것이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더라도 만성질환자들은 결국 대면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원격진료는 추가적 의료비 부담을 만든다. 원격의료 도입에 따른 각종 비용 부담은 비급여 혹은 건강보험 급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환자에게 전가된다.
또한 동네의원이 몰락해 오히려 불편해질 위험도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2000년대부터 심화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환자가 줄어든 동네의원은 문을 닫거나, 돈벌이 의료를 더 늘려가면서 정작 만성질환 관리와 같은 필수 의료는 소홀해졌다.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만성질환 관리도 대형병원으로 쏠려 원격의료가 오히려 의료공백을 심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대안을 찾기 위한 질문들
이 외에도 청와대와 여당은 메디텔(영리병원호텔) 규제 완화, 임상시험 규제 완화(줄기세포 치료, 유전자치료 등), 민간보험사의 환자 유인 알선 허용, 병원 인수합병 허용, 영리법인약국 허용 등 전방위로 의료민영화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마치 하나라도 통과시키겠다는 심정으로 졸속적이고 성급하게. 실 내용을 보면 경제 성장을 위한 산업 육성 정책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럽다.
그 문제가 낱낱이 드러난 것이 바로 제주도 영리병원 사례다.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정부는 제주도에 국내 1호 영리병원을 9월까지 설립 승인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자본이 추진한 싼얼병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계획을 발표한 지 한 달도 안 된 9월 16일에 병원 승인을 불허했다. 최근 모법인이 부도 위기고 회장은 구속되어 있으며 응급의료체계도 부실한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을 설립하겠다는 일념으로 기본적 조사도 없이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졸속으로 진행한 결과다. 이런 행태가 바로 박근혜 의료민영화의 민낯이다.
여기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의료민영화를 강행하는 정부를 보면 무기력해 지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은 대안적 의료의 필요성을 더 강화하고 있다. 영리병원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의료를 이대로 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병원은 지나치게 돈벌이를 추구하고 있다. 공공병원도 민간병원과 다르지 않게 돈벌이로 내몰리고 있다.
건강과 의료는 상품이 아닌 시민의 권리다. 건강할 권리, 공공성과 같은 대안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병원의 구체적 모습은 무엇일까? 지역에서부터 병원을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면서 병원의 돈벌이 의료 행위를 감시하고, 병원이 공공적으로 운영되어 약자를 차별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의 운동은 가능할까? 대안적, 공공적 의료의 빈 공간을 채워줄 다채로운 목소리와 실천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의료민영화를 근본적으로 막아내고 역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
덧붙임
김태훈 님은 사회진보연대 정책선전위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