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대해서 교육부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른 결과이므로, 학력에 의한 차별은 합리적이니, 차별금지 사유에서 ‘학력’은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해소하겠다던 교육부가 학력 차별을 옹호하는 모순에 많은 비판이 이어졌고,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직접 “차별금지법의 취지에 동의한다, 교육부가 법을 잘못 이해한 게 아닌지 검토하겠다”며 한 발 물러서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의견서가 드러낸 관점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이 심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는 주로 교육부가 의견서에 적었듯이 ‘합리적인 차별’이라 이해되곤 한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하기까지 비용과 시간을 들였으니, 그에 대한 대가는 정당하다는 식이다. 여기에 채용의 자유를 부르짖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덧붙여진다. 맨 처음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던 17대 국회 이후로 차별금지법 반대의 선봉에는 언제나 보수 기독교계가 서왔지만, 기업으로 대표되는 재계 역시 학력 차별 금지는 과도하다는 의견과 함께 차별금지법에 반대해온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이 발의된 후, ‘학력에 의한 차별의 정당성’이 다시 논의 선상에 오르고 있다.
학력,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 새로운 신분
한국의 채용 시장은 이미 학력과 출신 학교에 따라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대졸과 고졸 사이에서 애초에 취업의 선택지 자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4년제가 아닌 대학 졸업생은 ‘초대졸’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4년제 대학일지라도 대학의 등급에 따라 서로 다른 위치가 주어지는 등, 학력은 고졸·초대졸·대졸·명문대졸 등 노동자를 촘촘히 나누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교육부는 의견서를 통해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할 경우에 기업이 노동자를 평가할 지표가 없”기에 학력 차별 금지는 “과도한 규제”라고 말했다. 기업은 좀 더 노골적으로 ‘좋은 대학 나온 인재’를 뽑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의 판단 근거로서 학력은 직무 능력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 하지”, “명문대 들어갈 정도면 뭐든 어련히 잘 하겠지”라는 식의 선입견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선입견은 곧장 ‘고졸’과 ‘비명문대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진다.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직무 내용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더라도 관습적으로 학력을 요구하는 일은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 설령 연구직과 같이 특정한 능력을 요구하는 직군을 채용하더라도, 해당 직군에 필요한 전문성은 논문과 같은 경력을 확인하거나 면접, 실습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학력과 출신 학교를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문성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는 그간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학력과 학벌에 게으르게 기대왔다는 반증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정 대학 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 결과를 조작하거나, 같은 직무더라도 최종학력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거나, 승진 기회를 박탈하는 것처럼 노골적인 학력 차별도 이어진다. 채용 단계, 채용 후 부서 배정, 수행하는 직무 내용, 승진과 인사관리 등, 진입 단계뿐 아니라 모든 과정에서 학력은 노동자를 평가하고 노동자의 대우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학력이 곧 직무 능력을 증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학력을 요구해온 역사는, 곧 학력이 능력이라는 착각이 만들어지고 강화된 역사이기도 하다. 기업은 서로 다른 직종과 직무를 ‘사회적 분업’이 아니라 ‘분리와 위계’로 위치시킨다. 고용정책기본법에서 출신 학교 및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나, 규제가 없으니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업이 노동자를 평가하여 분절시키는 일을 자발적으로 그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학력에 따라 노동자를 분절하고 위계를 나눴기에 학력은 ‘능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아니라 ‘넘어설 수 없는 신분’으로 자리잡아왔다.
‘대학 졸업장 하나쯤 당연한’ 사회, 누가 만들었나
학력에 따라 분절된 채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한국의 높은 대학 진학률을 두고 과도한 교육열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는 실상 기업과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이다. 1980년대 후반,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기업과 정부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꾀했으며, 이에 따라 고학력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가 증가했다. 기업의 수요에 호응하듯 1990년대 중반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으로 대학 설립요건이 완화되었고 비슷한 시기 정원자율화를 통해 대학 정원이 대폭 확대되었다. 그 결과 지방 사립대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대학 간 서열도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대졸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었던 기업의 수요를 정부 정책이 뒷받침하는 과정이었다. 이때부터 대학 진학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2000년대에는 80%에 이른다.
수능 날 오전에는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 세계 최상위권의 대학 진학률은 입시와 진학에 쏠리는 관심을 증명한다. 대학이 교육의 장이 아니라 취업소개소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오래되었지만, 먹고 살만한 일자리를 얻기에 마땅히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여전히 대학 진학률은 70%를 넘어선다. 있는 집 자식만 가던 곳에서 인문계고 졸업생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연히 가는 곳으로, 이후 특성화고 졸업생이라도 취업을 위해서 웬만하면 가는 곳으로, 대학은 그렇게 당연하고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왔다. 대학 졸업장 하나쯤 당연히 있어야 그럴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온 것은 기업의 요구와 국가의 정책이었다.
학력에 대한 보상은 가능할까?
교육부는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며 ‘여론’을 근거로 들었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였으니 이에 대해 정당히 보상해야 한다는 인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높은 학력을 요구하기에, 노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높은 학력을 취득하고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그 투자가 언제나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취업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이 특정 기업이나 직종에 지원 자격조차 가지지 못한다면,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은 그걸 가지고도 더 나은 임금이나 고용 조건을 따내지 못하는 조건을 강요받는다. 대학 졸업장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소위 ‘대졸 프리미엄’은 의미가 없다. 이는 교육투자수익률, 즉 학력을 취득하기 위해서 들인 비용 대비 학력으로 얻는 이득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학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학력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은 모두가 학력을 취득하기를 강요하지만, 정작 학력을 취득하더라도 촘촘하게 나눠진 학력 차별의 기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차별을 마주하게 된다. 학력이 신분으로 작용하는 사회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개인의 욕구나 희망과는 무관하게 학력 취득을 강요받는 현실에서 ‘학력 취득을 위해 투자한 비용과 시간에 대해 제대로 보상하라’는 요구는 공허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나아갈 길은 학력을 더욱 촘촘히 평가해서 서열화하는 게 아니라, 학력으로 차별하면서 학력 취득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차별을 차별이라 부르게 될 때
차별금지 사유로 학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은 일의 세계에서 학력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 다시 말하자면 ‘무엇이 합리적 차별인가’에 대한 토론과 합의를 예고하는 법이라는 뜻이다. 직무의 내용에 따라 노동자가 지녀야 할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대졸자나 명문대 출신만을 채용하는 일은 합리적인가? 승진과 임금 인상을 결정할 때 학력은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가? 교육의 목표는 학력 취득을 통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뿐인가? 학력이 학벌로 이어지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은 많은데, 그렇다면 ‘파벌’만이 문제이고 ‘학력’을 유일무이한 판단 기준으로 두는 것은 괜찮은가? 차별금지 사유로 학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따라올 질문들이다.
학력 차별을 철폐하자는 요구는 저학력자가 고학력자의 몫을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에게 부당함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자는 요구이다. 일의 세계에서 학력 차별을 금지하라는 요구는 그저 채용 단계에서 출신 학교나 최종 학력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에 그치지 않으며, 노동자를 촘촘히 위계화시키며 분절하는 기업의 채용 방식, 나아가 위계와 분절을 예고하는 교육 정책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관습화된 차별을 차별이라 부르게 될 때, ‘대학 졸업장 하나쯤 없어도’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