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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함께 짓는 내일

작년 9월 초였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약 3주간 <평등의 이어달리기 온라인 농성>을 이어가고 있던 때였죠. 6월 ‘10만행동’ 성사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과 함께 사회적 열망이 국회에 올라갔지만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하던 때,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강화로 사람들이 제대로 모일 수조차 없던 때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온라인 농성’이라는 방식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함께 하는 여러 단위들이 모이고 다양한 반차별의 목소리를 모으는 자리마저 없었다면, 정말로 외로운 시기였을 것 같아요.

저는 비종교인이지만 어느 날에는 ‘믿는페미’가 주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짓는예배> 농성에 접속했습니다. 하루하루 여러 실무를 처리하느라 농성에 참여하면서도 잘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해야겠네요. 진행자가 갑자기 저에게 숫자 하나를 꼽아보라며 지목해서 당황했거든요. 알고 보니 숫자를 꼽으면 하나님의 ‘말씀카드’를 선물하고 위로를 전하는 순서였습니다. 무작정 아무 숫자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런 ‘말씀카드’가 왔습니다.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마태 6:10)”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함께 지을 사람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우리가 함께 만들자는 이야기를 건네며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차만세) 활동과 함께 시작한 2022년, 말씀카드를 받았던 그때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게 해 주실 ‘그 나라’가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였구나…!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아닙니다. (^^;) 말씀카드가 아니라 그 말씀카드를 저에게 전해주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차별적인 성서 해석이 전달되는 기존 예배가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한 예배, 목사-성도라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다 수평적인 예배를 지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성애 확산’을 막아야 한다며 오랜 기간 차별금지법을 앞장서 반대해온 보수개신교의 입장에 내부에서 대항하고 사회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신교인 중 차별금지법 반대보다 찬성이 더 많았다는 최근의 설문조사는 바로 종교를 가진 성소수자 당사자와 이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 지은 시간들이 쌓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유세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목표 중 하나로 삼은 게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동료시민으로,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와 일상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보자는 것입니다. 성소수자를 ‘사회적 논쟁거리’로 만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로막고 있는 게 이 사회의 정치라면, 그 정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힘, 동료시민이자 이웃으로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관계를 ‘짓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2021년 제정 운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정치의 각성과 변화된 행보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다른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들, 다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변화된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요. 대선을 코앞에 둔 2022년,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변화를 함께 만들 사람들을 더 깊고 너르게 만나기 위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활동이 시작된 이유입니다.

연결되는 경험

매주 화~금요일 서울 25개 자치구와 수도권 도시들을 돌아다니고 있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을 보면, 선거 시기 정치인들의 유세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유세차량을 타고 각 자치구의 주요 거리에서 연설을 하거나, 번화가나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는 모습만 보면요. 하지만 선거운동이 정치인 개인을 지지하고 뽑아달라는 호소라면, 유세단 활동은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우리가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죠.

매일 다른 자치구를 돌며 유세활동을 하다보면 해당 지역에 사무실이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단위뿐만 아니라 지역단위들이 모여 맞이단으로 나와주시기도 하고, 하루종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알리는 연설원 함께 결합하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서 흔히 ‘지역운동’이나 ‘마을운동’을 하는 단위들과는 적극적으로 만날 계기가 많지 않아, 유세단 활동을 준비하면서는 여러 좌충우돌이 있기도 했습니다. 거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익숙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보니, 연설원들이 두려움에 떨기도 했고요. (^^) 뭔가를 ‘맨땅’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은 막막함이랄까요.

그런데 유세단으로 돌아다니다보면 ‘새롭게’ 시작하는 경험보다 ‘익숙한’ 관계들을 확인하게 되는 일도 적지는 않아요. 분명 처음 만나는 지역운동 활동가인데, 잠깐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연설을 듣고 있다 보면 10만행동도 함께 조직하고, 차별금지법을 알리는 1인 시위도 하고, 시민대행진이나 국회 앞 집회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지금도 가끔씩 국민동의청원 10만명이라는 숫자를 떠올리다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떻게 함께 하게 됐을까’ 떠올려보곤 하는데요, 유세단 활동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각자 애써온 사람들의 얼굴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만나는 일, 그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세차량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달려라 하니’를 개사한 ‘달려라 평등’ 노랫소리를 듣고 나와서 박카스 한 박스를 급하게 전달해주시고 가신 분, 시장에서 따끈한 붕어빵 두 봉지를 사서 건네고 엄지 척 파이팅을 외쳐주는 분들을 만난 날에는…! 감격스럽기도 하고요.

함께 만들고 싶은 내일

"이게 뭐하는 거예요?", "차별금지법이 뭐예요?"

당연히 유세단 활동 중에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납니다. 그러다보면 어떤 정당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거냐는 질문부터, 차별금지법이 뭐냐는 질문까지 맞닥뜨리게 되고요. 특히 중년, 노년분들이 많이 있는 시장에서 관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부터…) 유세단이 ‘우리 다 똑같은 사람인데, 나이 많다고 여자라고 좋은 학교 못 나왔다고 사람 차별하면 서럽잖아요’ 사람 차별하지 말자는 법이 차별금지법이고 그런 나라 함께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고 말씀드리면 ‘아~’ 감탄사 후에 ‘수고가 많네요’ 하는 답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이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건네야 하는 부담을 매순간 조금씩 견디면서, 한 마디라도 차별금지법을 더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갱신하는 힘이 됩니다.

물론 지난 유세활동 중에도 유세단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얘들아, 정신 차려. 차별? 그런 거 없어.” 이야기하는 분을 만났어요. 15분 단위로 이어지는 짧은 유세 경로에서 개개인과 긴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차별은 없다’고 하는 이 사회에 어떤 입장과 행동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최근 윤석열 후보가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했다가 ‘구조적 차별보다는 개인별 불평등과 차별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이런 행보를 ‘말 바꾸기’라고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공고하고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대적인 비판과 개입으로 그나마 입장을 ‘톤 다운’ 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평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정치인은 새로운 사회를 약속할 자격도 능력도 없으며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입장과 태도가 날카롭게 선언될수록, 이를 실현시킬 성평등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힘을 더 대중적으로 모아낼 수록, 성차별을 부정하거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는 줄어들 테니까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역시 계속 그런 방향으로 더 잘 움직여야겠고요. (페미니즘 정치에 기반해, 페미니즘 대중운동과 함께!) 유세단 활동을 그런 ‘내일’을 함께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월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했던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는 2월에는 전국행동으로 더 확장되고, 2.26(토)에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대국회 집중행동 <가자, 평등의 나라로!>’를 엽니다. 전국 각지에 계신 사랑방 후원인분도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함께 열어주시기를!


•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전국행동 일정
https://equalityact.kr/change-feb/

•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일정
https://equalityact.kr/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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