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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덕후'의 '빡침'으로 차별금지법 제정한다

장예정 님을 만났어요

 

연말연시, 이 사람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궁금해져 만났습니다. 연말연시 컨셉으로 질문도 준비했으나… 모든 답이 차별금지법으로 통하는, 차별금지법과 혼연일체인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장예정 님을 만나보세요.

 

 

가볍게 시작해봅니다. 자기를 소개하는 낱말 3개를 꼽아본다면?

안 가벼워요. 이런 거 부담스러워ㅎ 하나는, 익숙함 또는 덕후. 저는 오래되고 익숙한 게 좋아요. <차만세(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할 때도 느꼈는데 처음 가는 동네에, 심지어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하니까 부담스럽더라고요. 덕후 기질도, 제가 뭘 꽂히면 오래가거든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 활동도 그렇고, 제가 또 에픽하이 18년 팬이잖아요. 해리포터도 조앤 롤링 작가가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을 하면서 안 보고 있지만, 마음이 아직 떠나진 않았어요. 두 번째는, 빡침이에요. 사람마다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제각각일 텐데, 저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노예요. 차제연 입장을 쓰게 되는 이유도, 어떤 새로운 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을 때도 “빡쳐서 안 되겠다”가 있을 때 가장 열심히 하게 되기도 하고요. 세 번째는, 공부요. 나는 빡칠 때 공부해요. 저게 진짜 저런가 하면서 찾아보고 책도 사고, 활동하면서 말의 무게를 느낀 영향도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이 인용돼서 기사가 되기도 하는데 무서운 줄 알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2023년 결산을 해볼까요? 작년에 재밌게 읽은 책은?   

김영하의 『작별인사』. 여행 가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랑 같이 읽었던 책이에요. 다른 책이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같아요. 인간은 무엇인가. 『소년이 온다』는 5·18 항쟁의 참혹한 현장에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작별인사』는 미래의 로봇 얘기예요. 피부까지 인간이랑 똑같이 생겨서, 몸을 갈라보지 않는 한 구분할 수 없어요. 국가는 엄격한 로봇 등록제를 시행해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죠. 어느 날 아빠와 함께 외출했던 주인공이 일종의 경찰에게 붙잡혀요. 인간/로봇인식표를 찍어봤더니 미등록로봇이라고 뜨거든요. 그렇게 수용소에 끌려가요. 주인공은 계속 호소해요. 나는 로봇 아니고 사람이다. 우리 아빠는 내게 음악을 가르쳤고, 나는 학교도 다닌다. 그런데 국가는 아니라고, 넌 로봇이라고 계속 말해요. 어느 순간 주인공도 헷갈리기 시작해요. 나는 감정이 있는데, 음악을 즐기는데, 글을 쓰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책이었어요. 의도하진 않았는데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하게 되는 휴가의 독서였어요.

김영하의 『작별인사』 / 한강의 『소년이 온다』

 

2023년, 자신을 새로 발견하게 된 것이 있다면?

작년에 제가 대학원에 갔거든요. 몇 번 위기가 있었어요. 진짜 못 해 먹겠다, 이런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었어요. 법학과 수업을 듣는데 학생들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 교수님이 수업을 하니까 자기가 공부하는 만큼 얘기가 돼요. 이번에 은퇴하신 헌법 교수님이 군(軍)가산점 헌법소원 때 당사자들 조직해서 위헌 결정 나오기까지 애쓰신 분인데, 나이 많은 남자 교수와 성평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요. 성적 내야 하는 거 없이 내가 뭐 찾아보고 더 잘 쓰고 싶고 그런 게 일할 때랑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리포트 주제도 내가 정하니까 1학기에는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랑 ‘간접 차별’로 쓰고, 2학기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랑 ‘군형법 92조의 6’으로 썼어요. 군형법 리포트 서론은 선고 기자회견 다녀온 얘기예요. 내가 이렇게 공부를 재밌어할 수 있는 줄 몰랐잖아. 그러니까 우리나라 교육이 성적 우선주의로 가는 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공부에서 멀어지게 하는 건지.

 

작년에 가장 마음이 갔던 일은?

이동환 목사님 재판(*)이었어요. 천주교인권위는 종교 단체가 아니지만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녔고 지금도 시간을 계산해서 미사를 가거든요. 그래서인지, 교단이 탄압할 때 진짜 징글징글하면서도 나가지 않고 남으려는 마음을 너무 알겠는 거예요. 어떻게든 그 안에 남아서 우리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얘기하는 심정을. 성소수자 문제를 떠나서 저한테는 종교 문제로 느껴졌어요. 천주교에서는 매년 12월 마지막 주일이 ‘성가정 축일’이라, 올해엔 12월 31일에 주교님이 담화문을 냈는데 “사람은 혼인의 성사가 있어야 참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말 듣고 있으면 짜증 나기도 하고, 변화가 어려운 지점들이 공고하게 있어서 질릴 때도 있어요. 내가 미사 안 나간다고 누가 뭐라 그럴 것도 아닌데 저도 남아서 싸워야겠다는 마음이 좀 있어요. 내가 신자의 입장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는 다르니까요. 목사님 마음을 정확히 모르지만, 이렇게까지 공격이 들어오는데 꿋꿋이 활동을 이어가시니 부채감도 있어요. 최소한 곁에 누가 있는지 잘 보여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동환 공대위(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대부분은 개신교 단체들이에요. 활동하면서 이동환이라는 사람의 단단함도 봤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내부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했고요.

*)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인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도 ‘하나님의 자녀’라며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넘겨졌다. 2020년 감리교단은 교리를 위반했다며 최종 ‘정직 2년’의 중징계를 내렸다. 2년의 시간은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모두 지나버린 상황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동환 목사는 고발당했다. 그가 여전히 교리와 장정을 어기고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까지 설립했으며, 여러 자리에서 교단의 반동성애 활동을 비판하여 교단을 모욕했다는 혐의였다. 경기연회 재판(1심. 이후 항소하면 결심인 총회재판이 열린다)은 재판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강행되었다. 2023년 12월 최고 수준 징계인 ‘출교’가 결정되었는데, 교리를 이유로 목회자가 출교된 것은 대한감리교 역사상 30년 만의 일이다. 이동환 목사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항소했다. 

 

사전에 없던 질문인데, 2023년에 예정을 울린 일이 있다면? 

임보라 목사님. ‘평등세상(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에서 누군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2023년은 임보라의 부고로 시작해 이동환의 출교로 끝났다. 말하니까 더 마음이 아프네요. 더 종교 안에 남아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임보라 목사님은 사실 저에게 먼 사람이었어요. 떠나시고 나서 더 많이 알게 된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흔히 하는 말 중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이 많을 줄 알았던’ 사람이었어요. 그 누구에 대한 위로, 공감, 지지, 응원도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결심하게 된 것 같아요.

 

 

2023년을 보내며 ‘한 매듭 지었다’ 싶은 일도 있나요? 

그게 없는 것 같아요. 22년을 마칠 때는 있었거든요. 차별금지법 대국회 투쟁을 한번은 마무리했다는 느낌. 23년은 그냥 쭉 이어진 느낌이에요. 지지도 이기지도 않은 느낌. 확 나빠진 것도 확 좋아진 것도 없고, 다 같이 정리한 게 없는 느낌이랄까. 저는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 중에 법 제정 자체의 중요성을 가장 많이 주장하는 사람인데요, 그게 끝나지 않은 숙제로 느껴지는 건 ‘제정이 안 됐다’는 거랑 좀 다른 거예요. 차별금지법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이제 다 ‘들어는 봤어’ 정도가 됐는데, 여전히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많이들 모르는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가 가장 고민이에요. 2021년에 차제연이 국민동의청원할 때 “알면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는데, 요즘 개신교 쪽 보수 매체에서는 “모르면 찬성하지만 알면 반대한다”고 얘기하거든요.

 

차별금지법과 혼연일체구먼요. 총선을 앞두고 어떤 고민이 있을지 궁금해요. 

국회가 정신을 차리게 될까요? 그런데 차별금지법은 국회 조건 말고도 고려할 부분이 있어요. 국회 밖 반대 세력이 너무 크다는 거죠. 국회도 문제지만 그 안에서만 풀려면 답이 안 보이는 측면이 있어요.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혐오세력이 작지 않거든요. 수적으로는 적죠. 그런데 그들의 공세와 압박이 견딜 수 있는 수준 이상이긴 해요. 정치인이 그 정도는 감내하라고 말하지만, 그걸 다 정치인들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어요. 혐오는 나쁘다는 말로 그 세력이 사라지지도 않고요. 만약 하느님이 제정 말고 딱 하나 해결해주겠다고 소원을 말해보라 하면,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동성애에 반대하는 세력이 종북몰이나 무슬림 혐오 등을 넘나드니까요. 물론 길게 보면 이런 혐오에 대응하는 사회적인 역량은 커진 것 같아요.

 

어쩌면 참 답답하고 어려운 활동이기도 한데, 차제연 활동의 덕후가 되는 이유는 뭘까요? 

이 운동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역동에 내가 꽂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몽, 지오, 예정, 이렇게 공동집행위원장 셋이서 회의하다가 완전 빵 터진 적이 있어요. 공공운수노조 파업한다고 연대 요청 왔을 때 당연히 참여해야지 얘기하다가,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인력을 낼 수도 없는데 도움이 될까 막 얘기하다가, 또 각자 뭘 제안했는데 그게 너무 몽 답고 지오 답고 그런 거예요. 같은 사안을 놓고도 소화하는 방식이 다 다르고, 각자 잘할 수 있는 일도 다르고. 저희 세 명도 그렇지만 다른 집행위원들도 다르고. 그렇게 다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서 갈 때면 마음이 모이잖아요. 달라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런 역동이 정말 사람을 빠져들게 해요.

 

그러면서 많은 활동을 벌여왔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평등버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하게 준비하면서도 재밌었고, 며칠 합숙하며 같이 다니는 매일매일이 즐거웠어요. 성당 여름 캠프처럼요. 그리고 저한테는 지역 차제연을 처음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도 전국 간담회 하며 지역을 다녔는데 평등버스 기억이 다 나더라고요. 그래, 여기 버스 타고 지나갔지.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때 기억이 생각보다 깊이 남았더라고요. 오프라인의 힘이랄까. 그때 만났던 사람들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무엇보다 버스가 예뻤어요. 

출처 : 천주교인권위원회 홈페이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조금 주춤한 듯도 한데,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아주 느려도 앞으로 가고 있다고 믿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운동을 직업으로 삼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후퇴도 하지만 그건 정치의 권력을 서로 나눠먹으면서 제도가 무너지는 것과는 다른 일인 듯해요. 예산 삭감이나 제도 개편으로 중요한 센터나 정책이 사라져도 그것이 처음 등장하기 전과 지금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외국인지원센터’라는 것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던 때와 지금의 사회는, 설령 모든 센터가 문을 닫는다 해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전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점이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을 갖게 해요.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은 시민의 의식과 생각은 인권과 평등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어… 믿고 싶네요.

 

이렇게 바쁜 와중, 천주교인권위원회가 후원도 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요? 

남의 단체 후원인 소식지에 우리 단체 얘기하는 게 좀 튀겠지만, 사랑방에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비슷한 게, 자체 사업이 없고 거의 다 연대활동이잖아요. 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내 모든 시간과 역량을 쏟아부어도 후원은 차제연으로 모여야 하는 거니까. 우리가 많이 하는 감옥인권 활동은 가해자 편드는 일이라 생각하는지 사람들이 반기지 않고요. 매년 신부님들이나 성당에 후원 요청을 하는데, 교회 밖 독립적인 단체라 거기에만 기댈 수도 없잖아요. 생명권이 사형제 폐지와 낙태죄에서 다르게 연결되기도 하고요. 시민들이 후원하는 단체가 되려면 어떤 말로 천주교인권위를 지지하고 응원해달라 말할 수 있을지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일단 지금은… 썩 환영받지 못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온 천주교인권위를 기억하고 후원해주세요.

 

이제 2024년이 됐으니, 자신에게 주고픈 선물이 있다면?

저는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거든요. 기한 맞추고 약속 지키는 거에 강박이 있어요. 수행의 질은 별개고요. 수업에 지각은 안 하는데 수업 내내 딴짓한다든지 그런, 몸만 가 있는 거죠. 좋은 면도 많지만, 가끔 정말 스트레스를 받아요. 저 대학 다닐 때 지각 한 번도 안 했거든요. 엄마가 나보고 왜 학교를 그렇게 다니냐고 할 정도였어요. 세월호 행진 가려고 시간 계산하고 20분 늦겠다 마음 먹은 수업 딱 한 번 말곤 늦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 쉴 때도 속으론 ‘언제까지 이걸 해야지’하며 내려놓질 못해요. 아무도 마감을 주지 않는데, 그렇다고 빨리 하는 것도 아닌데. 얼마 전 이사를 했어요. 지난주 사무실이 쉬었으니 아무 때나 해도 되는데, 내일 옷 정리를 꼭 해야지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유를 선물하고 싶어요. (저는 해이함을 선물하고 싶네요.)

 

이번엔, 거꾸로 사랑방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낱말 3개를 꼽아본다면? (두근두근)

끈기, 동료, 고민. 천주교인권위원회랑 사랑방이 30년 동료잖아요. ‘끈기’가 있죠. 그런데 두 단체 스타일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사랑방은 단체 지향이 더 강해보여요. 서로 뭘 하고 있는지 다 공유하고 같이 고민하고, 그래서 누가 얘기하면 그게 사랑방의 입장이구나 혹은 사랑방의 지향은 저런 거구나 생각하게 돼요. ‘동료’와 함께 고민하고 합의를 만들어 활동으로 외화하는 느낌이에요. 장단점이 있을 텐데,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자율성을 더 존중한다고 볼 수 있죠. 사랑방 활동가들은 힘들 수 있겠지만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쓰거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고민’을 계속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새해 사랑방에 전하고 싶은 말은?

저한테 사랑방은 뭐랄까, 활동 초기부터 친하다기보다 같이 운동을 만들어가는 활동 동료라는 느낌이 컸어요. 개인 활동가들과의 느낌보다 사랑방이라는 단체에 대해서요. 나 혼자 갖고 있는 나의 오랜 동료 같은 느낌이요. 나는 사랑방 후원인 가입도 30주년 사업 때 되어서야 했어요. 이미 동료라는 느낌이어서요. (30주년 홈페이지 만드는 몽이 너무 고생하는 게 보여서 안쓰러웠다고 꼭 적어주세요.) 사랑방 활동가들에겐 내 오랜 동료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또 사랑방 후원인들에겐, 올 한 해도 쉽지 않겠지만 모두 건강하고 화목한 한 해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