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의 차이가 불러오는 관계의 변화
친구들은 저마다 인생관을 세공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다른 인생의 간극을 넓히는 촉매제 1순위가 ‘돈’이었다. 친구들은 주말이면 한 데 모여 맛 좋은 음식을 먹고, ‘2차~ 3차~’를 외치며 술을 마시거나, 차를 몰아 무슨무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콘도로 달렸다. 모든 비용은 수입의 액수와 상관없이 똑같이 N분의 1. 대화의 내용은 뻔하다. 회사 이직과 노동환경, 휴가와 상여금, 결혼과 아직 이루지 못한 꿈. 월급 많은 친구가 뿜어내는 불만과 투정은, 번듯한 직장도 돈도 없는 친구에게는 그저 박탈감과 빈곤함을 온 몸에 투입하는 주사바늘처럼 느껴질 뿐. 그래서 더 빈곤한 친구는 늘 빈곤을 체감한다. 김새고 기운 빠져 할 말을 잃은 빈곤한 친구. 목 조이는 가난한 일상을 늘어나봐야 공감을 얻기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 될 것이고 꿈도 한 번 펴 보지 못하고 힘겨운 생존경쟁에서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는 핀잔만 얻어 갈 것이다. 그래서 대화는 서먹한 정적에 닿기 일쑤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술잔을 들어 ‘원 샷’을 외친다. 입 다물고 술이나 먹자라는.
“과연 지금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영화 <돈 많은 친구들(Friends with Money)>을 보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옛친구들과의 오랜 인연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친구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돈의 역학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올리비아(제니퍼 애니스톤)는 자신이 가르치던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이 자신의 헌 차를 바꿔주기 위해 동전을 모아주겠다는 말에 모멸감을 느끼고 교사직을 그만둔다. 시간제 가정부라는 불안정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올리비아. 그녀의 친구인 제인(프란시스 맥도날드), 프래니(조앤 쿠색), 크리스틴(캐서린 키너)은 안타까워하며 다시 교사직을 하라고 설득한다. 이유는 “청소를 하며 산다는 게 끔찍하다”는 것. 더군다나 다른 세 명의 친구들은 비혼의 올리비아를 “불쌍하다”고 말한다. 프래니는 올리비아에게 새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노력하고, 제인은 이런 저런 사연으로 가정부 청소비를 깎아 주었다는 올리비아의 말에 한심하다며 큰소리로 나무란다. 크리스틴마저 올리비아에게 인생 설계 좀 제대로 하라며 다그친다. 속 터지는 올리비아. 하지만 자신과는 다른 고민에 빠져 있는 친구들 눈치를 보느라 할 말도 다 못한다. 그런 올리비아를 보며 프래니의 남편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공통점도 별로 없어 보이지만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올리비아와 프래니의 관계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이 고민은 프래니 자신의 고민이기도 하다. “과연 지금 만났다면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녀의 빈곤은, 그녀의 게으름으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녀는 현재 일을 하고 있어도 반복적으로 실업 상태에 놓을 수 있는, 그래서 늘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역설적으로 항상 쉬지 않고 일을 하거나 해야 하는 중압감에 고통 받는다. 그러나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한 훈련을 받고 싶어도 비용으로 지불 할 종자돈을 만들 수가 없다. 시간당 받는 청소비 는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그녀의 빈곤은, 교사직을 그만 두었다는 ‘과감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일부의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들고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빈곤의 연쇄에 있는 것이다. 노동을 하면서도 빈곤한, 늘 실업의 위협을 느끼고, 고용 불안에 조바심을 내야 하는 빈곤한 계층의 불평등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빈곤이 가져오는 문화적 소외·관계의 단절
물질적 빈곤과 아울러 문화적 소외는 상대적 빈곤에서 떼어낼 수 없는 절대적 빈곤을 확대 재생산한다. 올리비아는 친구들의 비난과 조롱이 불편하다. 그녀를 더 빈곤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세 친구들)의 시선과 태도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올리비아를 실패한 인생의 낙오자로 대한다. 대마초를 피우는 한심한 인생이며 남의 집 쓰레기를 청소하기 때문에 그녀가 선택한 삶도 하찮은 것이다. 힘겹게 감당하는 올리비아. 그러나 그녀의 위기는 소소한 일상에서 폭발한다. 잡지 광고에서 본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을 쓰고 싶어 묘안을 생각해 낸 올리비아. 상점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 화장품의 샘플을 모아쓰기로 한 것. 그러나 샘플마저 다 쓰고 난 뒤, 서랍을 뒤져도 쓸만한 화장품을 찾지 못하자 전화기에 대고 악을 쓴다. 급기야는 자신이 가정부로 일하는 집에서 화장품을 훔치기에 이른다. 올리비아는 사회적 부를 향유하는 계층이 보여주는 소비패턴에 따라갈 수 없는 빈곤한 자신을 목격하고 그 암담함에 몸부림치며 울먹인다.
올리비아에게는 우리가 원하고 보장 받아야 할,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운명과 생활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자유와 권리’가 없어 보인다. 세 친구 역시 ‘돈’이라는 튼튼한 배 위에 올라탔지만, 사랑도 희망도 없는, 문제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인생의 이상 기류에 휩쓸려 휘청대는 불안한 삶이 위태롭기만 하다. 쉽게 ‘그런 게 인생이야~’하며 덮어 두려는 불안한 날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사회도 국가도, 질서도 법도 없는 ‘남쪽 섬’으로 가면 우리는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