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성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한국에 오기 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산업연수생으로 꼬박 6년을 일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 공장의 깨끗한 환경에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체육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고, 휴가도 꼬박꼬박 챙기면서 그렇게 6년을 일하다가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말레이시아에서 번 돈을 종자돈 삼아 한국에 연수생으로 입국하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인생이 꼬였다고 한다.
교육이 끝날 때까지 어디에 가서 일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고, 사장이라는 사람이 데리러 와서 함께 공장으로 가는 길은 팔려가는 염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공장은 먼지가 많이 날리는 카펫 공장, 말레이시아에서 전자공장에서 일하던 연수생 시절을 생각하고 따라 왔는데 허술한 건물 안 카펫공장을 본 순간 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어쩌랴,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큰 돈을 내고 왔는데…….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공장을 나와야 했다. 무거운 카펫을 옮겨야 했기 때문에 손목을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리가 왔고, 먼지 때문에 피부병까지 생겼는데, 연수생은 직장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불법체류자’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생활은 너무 불안했다. 이 불안함을 달래주고 직장도 찾게 해 준 사람과 친해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 것이다. 정말 본의 아니게 ‘꼬인 인생’이다.
산 넘고 산 넘어 찾아온 한국에서의 ‘남편구타’
동남아시아에서 결혼으로 한국에 입국한 다른 한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알게 된 사연. 이 여성은 이미 그 나라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었지만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이혼한 상태였다.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하기에 말레이시아 남성과 결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수속비를 지급하고는 여행자로 가장해 버스를 타고 몇 개의 국경을 넘어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국경수비대에 걸려서 보호소에 들어갔으나 인솔자가 돈을 지불해 겨우 나올 수 있었고, 한 개의 국경을 넘을 때 마다 인솔자가 돈을 나누어 주면서 ‘여행 경비’라는 것으로 국경수비대에 증명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 가서 만나 결혼한 현지 남성의 집은 보기에도 곤궁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몇 달을 살다가 집을 나와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 어찌 어찌 해서 다시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 남성과 결혼할 수 있다기에 다시 결혼을 해서 한국에 입국했다. 이번에 만난 한국 남편은 때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3개월 만에 이유 없이 집을 나가면 친정 부모님들이 2,500달러를 내야 한다는 ‘결혼계약서’ 때문에, 남편에게 맞으면 경찰이나 병원에 간 것이 아니라 중개업자에게 달려가서 ‘봐라, 나 맞았다’라고 시위를 한 것이 수 회, 마지막에는 중개업자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남편이 한 번만 날 더 때리면 집 나간다. 그러니 친정 부모님께 2,500달러 달라고 하지 말라.”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 나서겠다고 떠나는 여성을 말리는 상담원에게 “하도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어서 무서울 것 없다. 이미 엎어진 물이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훌쩍 떠났다.
그냥 ‘위장결혼’인줄 알았더니 성매매
어찌하다 몇 명의 중국동포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들이 호적을 빌려준다는 합의하에 돈 천만 원씩을 빌려서 소개비를 지급하고 결혼비자로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애초의 계약조건은 한국에서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고 국적까지 발급받을 수 있도록 수속을 해 준다는 것. 그러나 비행기 타기 직전에, 일을 하게 될 곳은 마사지 업소이고 가게 되면 몸도 팔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엎어진 물. 고리로 빌려서 지불한 소개비로 인해 계약을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퇴폐 이발소에서의 생활. 한국 여성이 요령을 알려주어서 어찌어찌 그 생활을 견디려고 노력해 한국에서 일한지 1년 만에 중국에서 진 빚을 다 갚은 후 이 여성들이 손에 쥔 돈은 용돈 얼마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엄청난 액수의 돈을 계속 요구받았지만, 자신들은 위장결혼을 한 상태이고 성매매를 하고 있기에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여기서 떠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그냥 참고 기다렸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협박, 감금, 구타 등으로 인해 그야 말로 ‘살기 위해서’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경찰에서 조사를 다 받고 나오는데 서울의 공기 맛이 달랐다고 한다.
어차피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지만 사는 게 이렇게 꼬인다면 견뎌야 한다는 무게감은 겪어 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소한 ‘출입국관리법’이라는 법 하나 때문에 어디 가서 도와 달라는 소리도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사람이 살라고 있는 세상인데, 그리고 밥 먹고 몸과 마음이 좀 편히 지내고자 이렇게 저렇게 사는 세상인데, 그냥 좀 적당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 사정 좀 봐주면서 같이 살면 안 될까!
덧붙임
김민정 님은 이주.여성인권연대 정책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