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2일 세계 37개 지역 곳곳에서는 멕시코의 와하까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과 연대하고, 이들의 대표기구인 와하까민중의회(APPO)를 지지하는 국제공동행동이 펼쳐졌다. 한국에서도 이 날 항의행동이 벌어졌다.
미국의 독립미디어인 디마크러시나우(www.democracynow.org)의 보도에 따르면 와하까 현지에서는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지으며 가두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시위 참가자들은 정부당국의 지독한 탄압에 대한 긴장감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경찰병력을 뚫고 시내 중심가인 단자플라자까지 나아갔다. 마침내 최종 도착지에서 시위대가 행진을 멈추고 마지막 정리집회를 가질 때,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다.
“이번 행진은 전 세계 민중들과 각 사회진영들에게 와하까민중의회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울리세스 루이스 오르티스의 사임 요구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와하까민중의회와 와하까 교사들이 계속해서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2006년 6월 14일 이후
이번 와하까 투쟁은 지난해 5월 1일부터 벌인 교사들의 시위가 발단이었다. 이 지역 교사들은 자신들의 봉급인상과 빈곤층 학생들을 위한 복지서비스 등을 요구했지만, 와하까 주지사인 울리세스 루이스는 이를 전면 거부하였다. 그러자 5월 22일부터 7만여 명에 달하는 교사들은 총파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싸움이 새로운 차원으로 치닫게 된 것은 바로 6월 14일, 이날 발생한 주 당국의 대대적인 탄압에 의해서였다. 1천여 명에 이르는 연방경찰(Fedral Protective Police)들이 무장한 채 도시를 봉쇄했고, 시위자들을 향해 발포와 무차별적 구타를 가한 것이었다. 결국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최소 4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널리 퍼졌으며, 이는 와하까 운동의 결집을 불러일으켰다. 6월 17일 조합, 원주민, 농민, 여성 단체들을 망라한 365개 풀뿌리 조직들이 모여 260명의 대표를 두는 무지개 연합인 와하까민중의회를 구성했고, 자치 체계 건설에 힘썼다. 그들은 그동안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살인과 납치, 고문 등을 통해 사회운동을 탄압해온 주지사 울리세스 루이스의 즉각 사임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주민들은 공공건물을 점거하고 도시 거점마다 바리케이드를 쌓아 ‘와하까 꼬뮌’을 형성했다. 저항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해방구를 만든 것이다. 주민들이 점거한 대학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대안미디어 방송을 실시했으며, 거리 곳곳에서는 그래피티, 노래, 토론과 시위 조직 등으로 투쟁의 열기가 넘치는 또 다른 역사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의 주체적 투쟁이 두드러졌다. 한 와하까 여성이 라디오 방송으로 연방경찰들에게 끌려가 받았던 성적 학대와 고문 사실들을 직접 증언하고 나자, 이후 속속 다른 피해사실들이 밝혀졌다. 그러자 수백 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고, 경찰들의 물대포에 맞서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처럼 라디오 방송국에서, 와하까민중의회 조직 내에서, 집회 현장에서 와하까 여성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었으며, 여성적 저항 색채는 점차 선명해지고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미 부정부패에 깊이 연루되어온 멕시코의 폭스 대통령은 제도혁명당 소속인 울리세스 주지사의 손을 들어줘, 10월 3일에는 특수부대를 투입시켜 군사작전을 펼치기까지 했다. 12월부터 직무수행에 들어갔던 칼데론 신임 대통령 역시 국민행동당(PAN)과 제도혁명당(PRI)의 연합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와하까 민중들의 요구는 무응답으로 일관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적 투쟁이 전지구적 연대로
와하까 투쟁이 제2의 사파티스타 봉기로까지 여겨지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외치는 요구들이 어느 한 지역으로 한정되지 않는 전지구적 메타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와하까 민중의회의 결의안에는 선주민들의 권리와 자치권 인정, 성적 평등, 신자유주의와 푸에블라 파나마 플랜 반대, 대안 교육 실시, 미디어 공동 운영 등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2001년부터 계획된 ‘푸에나 파나마 플랜’은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때문에 상품의 생산과 수송을 위한 고속도로와 철도 등의 지역개발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사실상 이 모든 개발은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지역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을 말하며 또한 천연자원, 생물적·문화적 다양성 등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재앙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와하까 주민들이 맞서 싸운 적은 거대 자본이 휘두르는 착취와 폭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 싸움은 오늘날 정치·사회·경제·문화적으로 가난하고 배제된 민중들이 직면하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적 마찰과 진통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총체적 저항의 한 단면으로서 전지구적 의미까지 가지는 투쟁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와하까 민중들은 이제 더 이상 추락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정부의 위력적인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의 희망을 향한 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임
지은 님은 '경계를넘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로서 이 기사는 '경계를넘어'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같은 기사를 '경계를넘어' 인터넷 홈페이지(www.ifis.or.kr)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