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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 “평생 일할 수만 있다면…최저임금도 필요 없다”

‘짤릴 뻔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김 씨를 만나

경비노동자 김 씨(본인 요청에 따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음)

▲ 경비노동자 김 씨(본인 요청에 따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음)

부산시 ㄴ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 씨는 지난해 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야간·직책 수당에 상여금까지 합쳐서 80만 원에 못 미치던 월급이 새해부터는 수당 합쳐서 100만 원 이상으로 오른다는 것. 그동안 최저임금제의 적용대상이 아니었던 경비노동자가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최저임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최저임금 전액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감액적용’이라 해서 시행 첫해인 2007년에는 70%, 2008년부터는 80%를 받을 수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매년 조금씩 오르는 최저임금에 따라 임금도 따라 오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올해 김 씨가 받을 수 있는 시간급 최저임금액은 3,480원의 70%인 2,436원이다.

“짤리는줄 알았는기라”

하지만 지난 7일 아파트 경비실에서 만난 김 씨는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월급 몇 푼 더 받으려다 짤리는 줄 알았는기라.” 2006년 12월 5일 국무회의에서 동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임금 인상의 희망이 현실화되자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아파트 부녀회였다. 일반 건물과는 달리 공동주택인 아파트의 경우 경비노동자의 임금은 입주자들이 매달 내는 관리비로부터 나오니 입주자들의 반발은 거셌다. 나이 든 사람부터 자른다는 소문에 대부분 60대인 경비노동자들은 내 차례가 올지 몰라 귀를 곧추세웠다. 가족이 없고 나이가 많은 한 경비노동자는 반장격인 김 씨를 찾아와 한참을 울고 갔다.

“이기 나가먼 받아주는 데가 없는기라. 이 나이로 공사판에 갈끼가…, 굶어 죽는 수밖에 없지.” 김 씨는 관리사무소 소장과 입주자대표를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월급은 안올려도 좋으니 그만두는 사람만 없게 해 달라고. 지난 5일 동대표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올렸고 김 씨는 회의장 바깥에서 결과를 기다리며 3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굴렀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어떤 동대표는 임금을 올리면 관리비 부담이 늘어난다면서 나이든 경비원부터 감원하자고 핏대를 올렸다고 한다. 또 다른 동대표는 돈이 좀 들더라도 이참에 무인경비시스템을 설치하면 굳이 경비원을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빠짐없이 제사 음식을 챙겨주며 집안 어른 대접을 해주던 입주자들이 단돈 몇천 원 때문에 인연을 끊자하니 김 씨는 야속했다.

다행히도 회의는 감원은 하지 않되 쉬는 시간을 늘여서 임금 인상분을 줄이는 편법을 쓰기로 결론 났다.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맞교대로 일하는 김 씨의 하루 노동시간은 24시간이다. 그런데 점심·저녁식사 각 1시간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의 휴식시간을 합한 하루 4시간이 노동시간에서 제외된 것이다. 연장수당과 휴일수당을 받을 수 없는 김 씨와 같은 경비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은 50% 할증되는 야간수당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입주자들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로 규정된 야간 시간대에 휴식시간을 끼워 놓았다. 결국 최저임금제 적용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김 씨의 월급에 7~8만 원을 더 얹었을 뿐이다.

입주자가 최저임금법 개정을 못마땅해 하는 것은 ㄴ아파트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아래 전아연)는 관리비 상승을 걱정하며 산하에 최저임금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전아연은 관리비 상승이 결과적으로 경비원 대량 감원을 낳아 사회적인 물의가 빚어진다는 핑계로 반대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최저임금제가 적용된 이 달부터 전아연은 각 아파트 단지에 대해 △최저임금 위반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 휴게시간을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야간 취침 시 펴지는 의자를 배치하며 △휴식시간을 알리는 푯말을 설치해 입주민들이 경비원의 휴식시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고지할 것을 권장했다.

김 씨의 경비실. 24시간 일하는 곳이지만 쉴 만한 공간은 없다.

▲ 김 씨의 경비실. 24시간 일하는 곳이지만 쉴 만한 공간은 없다.

김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노는 시간이 늘어난 기라. 이 시간에는 내가 잠을 자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지.” 하지만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니 문제다. 두 평도 안되는 경비실은 절반이 화장실이고 절반은 책상에 의자까지 들어차 있으니 등을 댈 바닥도 없다. 그 안에서 밥을 지어 먹고 잠은 의자에 앉아서 자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부터 건물 지하실에 쉴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 하지만 쉬는 시간이라고 잠든 경비원을 입주자들이 참아줄 지는 미지수다. “쉬는 시간에 도둑이라도 맞으면 누구 책임이겠어?” 일터를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다면 휴게시간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시적 근로자’라는 멍에

김 씨와 같은 경비노동자를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은 ‘감시적 근로자’라고 부른다. “감시업무를 주 업무로 하며 상태적으로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다. 수위, 아파트 및 건물 경비원, 물품감시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휴일·휴게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개정 전 최저임금법에서는 배제되었다. 노동의 ‘밀도’가 낮거나, 실제 노동시간보다 대기시간이 더 길어, 정신적·육체적 피로도가 전반적으로 낮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적 인식은 최저임금법 개정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김 씨는 묻는다. “지키는 일이니까 쉽다고?” 경비노동자 1명이 1개동을 맡으니 한 사람이 100여 세대를 챙겨야 한다. 도둑을 막는 일은 물론 쓰레기 분리수거에 우편물 배부와 택배 관리도 김 씨의 몫이다. 주차하다 접촉사고를 낸 입주자를 찾아내는 일 같은 주차관리도 김 씨의 일이다. “순찰하다가 쓰레기 보이면 주워야지, 누가 하겠노? 주민들 편의 봐주는 게 경비지.” 물론 명절도 찾아먹을 수 없다. 이렇게 24시간 일해야 하는 경비노동자가 김 씨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4년 노동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비노동자와 같은 감시노동자 304명 가운데 64.4%가 본래 업무 이외에 김 씨가 하는 일과 같은 부수적 업무를 수행한다고 답했다.

중간착취가 부르는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

올 초 김 씨처럼 ‘짤릴 위기에 처했던’ 감시·단속 노동자는 정부 통계만으로도 25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실제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한편에서는 이미 일자리는 줄어들 대로 줄어 있고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업무는 여전하기 때문에 예상보다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어떤 경우든 고용불안의 원인을 최저임금제에 묻고 임금 인상분을 줄이는 편법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최저임금제는 사태를 터뜨리는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 중간착취를 일삼는 용역업체야말로 고용불안의 진짜 원인이다. 앞서 소개한 노동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가 전체 응답자의 59.8%에 이르렀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아파트가 비용절감을 이유로 경비업무를 용역으로 전환하고 있다.

ㄴ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김 씨는 직접고용된 정규직이지만 용역업체 소속일 경우 매년 재계약 때마다 불안감에 떨게 된다. 전체 16개동 32명의 경비노동자 가운데 10명은 아파트관리소에 직접 소속되어 있지만 22명은 3년 전부터 들어온 용역업체 직원이다. 처음에는 모든 경비노동자가 직접고용이었고 노동조합에 속해 있었지만, 하나둘 65세 정년에 걸려 그만뒀고 입주자들은 새로운 경비원을 채용하지 않았다. 대신 용역업체가 빈 자리를 차지했고 이곳 소속 노동자들은 한 달에 약 10만 원을 적게 받았다. 차액은 용역업체의 몫이 된 것. “노조를 깨는 게 목적인기라.” 올해 정년을 맞은 김 씨도 내년에는 용역업체로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노인들 일자리는 경비뿐인 게 문제”

자식 넷을 키웠고 이제 손녀·손자까지 본 김 씨에게 일자리는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셋방살이를 하는 친구들을 보고 생계걱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여든 넘게 살 수 있다는데 노인들 일자리는 경비뿐인 게 문제”라고 말하는 김 씨에게 앞으로 10년 넘게 뭘 먹고 살지는 늘 걱정이다. 정부는 저출산과 함께 고령화가 문제라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평생 일할 수만 있으면 최저임금도 필요 없다”며 허리를 굽히는 늙은 노동자에게 국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김 씨의 황혼은 아파트 경비실에 내리는 저녁노을처럼 빛나면서도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