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 국가 ‘인권’ 기구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아래 국가인권위)가 지난 10월 10일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문건을 하나 탑재했다. 제목이 「청사 점거농성에 대한 위원회의 (기본)입장 및 방침」이다. 지난 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중증장애인 동지들이 활동보조인서비스 권리쟁취를 위해 국가인권위에서 23일간 단식농성을 마친 직후 발표된 「‘위원회 무단점거’와 관련한 위원장 메시지」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는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가 국가인권위 7층에서 60일 가까이 농성을 진행 중이다. 둘 다 핵심적인 내용은 농성이 불법이니 하지 말라는 건데, 이번에 나온 게 방침은 훨씬 업그레이드되고 인식과 태도는 훨씬 위험스러운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문건을 읽으며 내가 혹시 경찰청에서 나온 방침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기본입장 및 논거가 시커먼 공권력을 배경으로 경찰차량의 스피커에서 왕왕거리며 흘러나오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혹 못 보신 분들도 있을 테니 몇 가지 핵심적인 부분들을 짚어 이야기를 좀 해보련다.
첫째, 국가인권위가 점거 농성을 용인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그 행위가 ‘다른 선의의 단체·시민들에게 광범위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국가인권위의 ‘임무수행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도 옹호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로 인해 도로가 막힐 때, 결사의 자유를 행사한 철도·지하철, 통신, 병원 등 소위 공익사업장 노조의 파업으로 업무가 중단될 때, 경찰이나 자본가들이 허구한 날 하던 소리가 이거 아닌가. 물론 점거 농성의 장소가 배움터 일 때, 그 장소를 사용하기로 예약해 놓은 단체에게는 일정한 ‘피해’가 갈 수 있다(국가인권위도 이것을 대표적인 일반시민들의 피해사례로 꼽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속한 단체가 배움터를 사용하기로 예약을 해놓았는데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인권 피해자들이 농성을 진행해 행사 장소를 옮겨야 한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고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인권적’ 단체라면 당연히 취해야할 태도라고 단호히 말하련다. 감수하기만 해야 할까, 같이 연대할 방법도 찾아봐야지.
둘째, ‘적법한 절차·방법에 의해서보다 점거농성을 통해서 요구를 효과적으로 관철할 수 있다는 인식은 불식되어야’한다고, 그래서 점거농성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 국가인권위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한다. 인식이 불식되어야 한다는 건 그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전장연 등 장애인계는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성람재단 민주화 및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교육법 제정, 420투쟁 등의 과정에서 그 ‘적법한 절차·방법’을 지키지 않아 1억 5천여만 원에 이르는 벌금 폭탄을 맞아 쑥대밭이 되었다. 그럼 장애인운동계는 돈이 남아돌아 괜한 짓거리를 한 건가? 내 보기에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슬프게도 적법한 절차·방법에 의했을 때 무수한 인권적 요구들이 무시된 채 짓밟히고 있는 건, 잘못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개 같은 엄연한 ‘현실’의 문제다. 정말 모르는가, 국가인권위는.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거농성이 발생하였을 시의 대책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는데, 가장 협박적으로 들리는 건 ‘공무수행을 직접적으로 중대하게 방해 시 공권력에 의한 퇴거조치’를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농성은 다양한 이유로 이루어지지만, 다른 정부기관들에 대한 점거농성과는 다소 결이 다른 경우가 더 많은 듯싶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야당 당사나 명동성당 등에서 농성이 많이 이루어졌듯이, 얼마간 맥락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국가인권위는 그러한 사회적 장소로서 선택되고 있는 것이다. 농성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변화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장소로서 선택될 곳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건, 점차 사회 전체가 비인권화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선택한 국가인권기구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공권력’에 의해 짐짝처럼 질질 끌려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 이러한 인식 정도는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의 국가인권위가 되었으면 한다.
행자부와 각 지자체는 지난해 말부터 불법·폭력시위의 전력이 있는 비영리민간단체들을 국가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전장연은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을 위해 임의단체로 존재해왔기에 애초부터 일반적인 국가보조금 지원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꼭 필요한 몇 가지 사업의 진행을 위해 기획서라도 내 볼 수 있는 곳은 국가인권위와 장애인재단이 전부였다. 그러나 올해 초 진행한 그 ‘무단 점거’로 인해 국가인권위의 인권단체협력사업 심사대상에서조차 배제되어 버렸다. 몇 푼의 돈을 지원받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게 아니다. 인권시민단체와 협력관계를 역설하는 국가인권위가 억압적인 국가기구의 논리와 행태를 점차 닮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인권은 슬프게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고, 질서정연하고 세련되고 깔끔한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권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 고통을 대면하여 끌어안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국가인권위는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장소’로서가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나 국가기구와 마찬가지로 ‘직적접인 투쟁의 대상’으로서 점거농성의 장소로 더욱 널리 애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인권단체들의 노력과 투쟁으로 세워진 국가인권위, 그렇게 되지는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덧붙임
◎ 김도현 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입니다.
◎ 이 글은 <에이블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