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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만 골백번, 현장경험 풍부’

[삶, 세상 2] 청소년, 나이 차별을 말하다.

첫 교육감 선거에서 경쟁을 내세운 공정택 후보의 당선에 많은 사람들은 허탈함을 느꼈다. 촛불 집회의 여론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답답함에, ‘이번에는 혹시’라는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에게 이번 선거의 결과는 아쉬웠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낀 사람들은 바로 ‘청소년’일 것이다. 항상 교육 정책의 당사자이면서도 늘 교육 정책의 적용자이지 그것의 결정에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번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은 ‘또또’ 씨라는 청소년 활동가이다. 교육감 선거에서도 ‘청소년 후보’를 이야기했던 그에게 ‘청소년’은 어떠한 의미일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추리에 갔는데, 고1말쯤 교총 소속인 사회선생에게 얘길 살짝 한 적이 있다. 대추리를 한번 갔다 왔다고. 그랬더니 정말 (그분이) 수구라고 해야 하나, 말 그대로 ‘누가 너한테 혹시 가라고 시켰냐?’라고 묻더라. 그래서 당황했었다.”

청소년! 그들을 정의내리는 가장 편한 말, 질풍노도의 시기. 어른들은 ‘이미 겪은’ 혼란을 ‘아직’ 겪고 있는, 어떤 단계에 오르지 못했다고 가정해버리는, 그래서 ‘보호’가 필요한 그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대추리에서도 시청 광장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부 ‘어른’들은 항상 묻는다.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

청소년 활동가 또또

▲ 청소년 활동가 또또

“이번 촛불 집회 때 밧줄을 당기고 할 때, 어려 보이는 활동가들이 같이 밧줄을 당기고 있으면 아저씨들이 와서 ‘여자와 어린이들은 빠지라니까요, 학생들 빠져요, 빠져.’라고 한다. 잘 당기고 있는데…한번은 신촌으로 쫓긴 날 있었잖아요, 그때 열심히 같이 싸워서 연행된 사람들도 많이 구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왜 이 시간까지 여기 있냐. 집에 가라.’라고 하더라. 자기는 인도에만 있었으면서.”

나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기준

지구라는 마을에 태어난 햇수만으로 그들의 삶의 깊이가 결정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청소년’은 항상 주변부이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이 그들의 삶의 대변해 버리는 현실에서 또또 씨에게 나이는 무슨 의미일까?

“저에게 나이는 어떤 신체 성장의 정도일 뿐이에요. 요즘엔 이것도 많이 애매해지고 있지만 말이죠. 열세 살인 청소년이 저보다 크기도 하잖아요. 암튼 저에겐 신체성장의 의미 말고는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사회에서 나이는 나이테와 같이 그들의 삶의 모든 것을 넘어서는 서열의 기준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났는데 인사하면서 ‘실례지만 몇 살이세요?’, ‘열아홉 살인데요.’, ‘아, 열아홉 살이구나! 학교는 어디 다녀?’ 이런 식이죠. 기분이 나쁘죠. ‘학교는 어디 다니냐’는 질문 내용도 기분 나쁘지만 더 기분이 상하는 건 당연히 자기보다 어리면 반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또또 씨의 경우도 나이의 확인으로 서열이 쉽게 결정되는 문화에서 반말을 들어도 함부로 저항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보자마자 반말을 하거나, 처음에는 존대하다 뒤에 쉽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심하게 말하는 경우가 아닌 일상화된 반말에 대해서는, 특히 대화가 통할 거란 기대가 별로 없는 경우에는 지쳐서라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때가 많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결정권을 달라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단순히 반말과 하대를 받는 것을 넘어 행동의 제약 및 인권의 침해로 이어진다.

“우선, 만 18세 미만은 법적으로 고용주가 고용보험을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네요. 얼마 이상 일하면 6개월 동안 실업급여가 나오는데 그런 혜택 전혀 못 받죠. 의료, 산재보험만 가능해요. 그리고 청소년들은 밤 10시 이후로 찜질방, 피시방 등 이용할 수 없는 게 많죠. 특히 절대 혼자서는 숙박업소에 갈 수 없어요. 집밖으로 나가서 어딘가에서 자야 할 때는 길거리에서 잘 수밖에 없어요. 나도 여관에서 안 받아 줘서 못 잔 적이 있죠. 여권 발급의 경우 부모님 데려가면 제 신분증도 필요 없고 부모님 신분증이랑 서류 두 개만 있으면 돼요. 그런데 부모님 없이 가면 제 신분증, 부모 신분증, 엄마 인감, 인감증명서, 동의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준비 서류가 많아지죠. 결국 그 준비 비용이 엄마 차비보다 더 나와서 같이 가서 했어요.”

혼자서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없다고 가정되는 청소년에게는 늘 ‘친권자’라로서 부모의 권한이 크다. ‘성숙한’ 부모는 ‘미성숙한’ 자식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력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학교에서는 교사와의 관계 속에서 재현된다. 더욱이 탈학교를 결정한 또또 씨에게 학교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학교가 말만 보호(?)라는 것도 보호하는 사람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람을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해서 불평등하고(->규정하는 불평등이 바탕에 깔려 있죠), 마치 자본가와 노동자처럼 계급이 생겨 버리는 것처럼. 사실 보호라는 개념도 그렇게 나오는 거고. 그게 답답해요. 예를 들어 교사들은 하는 것 보면 어떻게 저렇게 고리타분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 많이 들게끔 하고. 두발규제, 체벌, 복장 문제. 가령 학생이 학교 밖에서 어떤 활동을 하려면 학교장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교칙이라든가, 집회를 하거나 연행당하면 퇴학 가능하다는 등의 학칙들이 있죠. 연행은 경찰이 잘못할 수 있는 거라 보상청구제도 같은 장치가 있는 건데 학교는 ‘국가기관은 무조건 옳다’라는 전제를 깔고 규칙을 만든 듯해요.”

교육 정책의 당사자로 서기

그렇기에 또또 씨를 비롯한 청소년 활동가들이 교육감 선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실제로 교육감이라고 하면, 누가 어떻게 얘기하든 직접적 당사자는 청소년인 건데, 청소년이 투표권이 없다 보니 그나마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주경복 후보가 ‘어머니 시리즈(어머니, ~해드리겠습니다’ 식으로 나왔죠. 다른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이인규 후보나 주경복 후보 둘 다 두발자유에 관해 말할 때도, 아주 원칙적인 건데 그걸 ‘학생들끼리 얘기해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겠다’라든지 ‘자율’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기도 했죠.”

이렇게 남에게 자신의 권리를 맡긴 채 있을 수 없기에 또또 씨를 비롯한 몇몇 청소년들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청소년 후보’를 내세웠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공약

▲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공약


“주 슬로건이 ‘니들만 해먹냐(잘하는 것도 아니고 다 망치면서)’였죠. 당연히 청소년들도 똑같은 시민이고 게다가 교육당사자인데 왜 투표권이 없냐, 완전 앙꼬 없는 찐빵이다, 생각한 거죠. 또 하나, ‘너희는 우리가 두려운 거다. 우리가 선거권을 얻고 너희가 할 수 있는 걸 우리가 할 수 있게 될 때 너희가 두려워할 만한 변화가 일어날 거다.’라고 꼬집었죠. 청소년후보 쪽에서 낸 교육 정책들은 새로 논의된 게 아니라 쭉 논의돼 온 걸 담은 거라서 별로 재미가 없다는 점은 있지만 그걸 공약으로 담아서 보니까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훨씬 나았어요. 특히 주경복 후보에게 ‘제발 이것 좀 베껴 주길’ 바랄 정도였죠.”

결국 다시 경쟁을 강조하는 공정택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며 탈학교 청소년인 또또 씨는 걱정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교육감 선거하기 전에 공정택이 뭐 하겠다는 걸 발표했는데, 그 완성판을 보게 되겠죠. 국제중을 비롯한 엘리트주의의 산물들이 생길 거고 그걸로 하여금 다른 학교 학생들은 더 죽을 맛이 되겠죠. 더구나 탈학교, 대안학교 청소년들은 말 그대로 죽은 거죠. 물론 여유 있는 집안의 홈스쿨러들은 부모들이 있어 괜찮은데, 학교에서 쫓겨난 청소년들은 다시 비정규직이 될 테고 그런 상황이 더욱 굳어지겠죠.”

이번 교육감 임기가 1년 10개월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답답하다는 또또 씨의 우려는 그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다 너희를 위해 우리가 결정한 거야’라는 그들의 말에 ‘시험만 골백번, 현장경험 풍부’라고 뒤틀어 외치는 청소년들의 재치와 저항의 목소리가 언젠가 정책으로 반영될 그날을 꿈꾸어 본다.


덧붙임

* 청올,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