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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증에는 폭식이 아니라 다이어트가 필요”

[경제위기와 인권④] ‘부동산 비만증’과 경제위기

‘부동산 비만증’ 걸린 한국사회

한국사회가 부동산 때문에 앓는 열병은 ‘부동산 비만증’이다.
우선 건설투자 비중이 20%에 달해 경제의 부동산 건설 의존도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적도기니, 투르크메니스탄, 부탄, 레소토, 에리트레아… 이름조차 생소한 이 나라들은 세계에서 건설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5곳인데, 한국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 세계 14번째다. 부가가치와 취업자 비중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동산 비만증에 걸린 산업구조는 선진국 형 보다는 후진국 형을 닮았다.
부동산에 관련된 것은 모두가 비만증이다. 인구수 대비 복덕방 수는 미국의 6배, 일본의 4배에 달한다. 뇌물사건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건설 관련 부정부패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재벌대기업치고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 건설에 뛰어들지 않은 기업이 있는가. 반도체의 삼성도 래미안을 짓고 음료수 파는 롯데도 캐슬을 짓고 자동차나 조선이 주력인 줄 알았던 현대가문도 아이파크나 힐스테이트를 짓고…. 삽과 포클레인으로 돈 벌지 않는 재벌이 어디 있던가. 은행도 경제발전을 위한 자금중개기능 보다는 부동산 담보 대출로 단기 소매금융에 흠뻑 젖은 지 오래다.
비만증이 심하면 합병증을 일으키듯 대한민국은 부동산이 결정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고교 졸업생 중 서울대에 합격자 수는 부모의 아파트 값에 정비례하는 교육문제, 땅값이 오르지 않았지만 공기 좋은 경남 합천이나 전남 신안군보다, 오염이 심하지만 땅값이 많이 오른 서울 강남권과 과천 등에 사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건강문제도 부동산 비만증이 낳은 합병증이다. 결혼비용의 3분의 2가 방 구하는 비용이고, 결혼식장 붉은 카펫을 밟으며 내 집 마련을 꿈꿨던 신부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아이를 낳을 것인가 내 집을 마련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저출산 문제, 지방선거도 총선도 대선도 똑같이 부동산 선거인 정치문제도 합병증 증세다.

부동산 정책, ‘노-노’형 vs 'DJ-MB‘형

건설재벌의 원조 격인 현대건설 사장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뽑아놓은 대통령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집 많이 짓는 대통령’이었다는 데서 부동산 비만증은 절정을 이룬다. 이승만 대통령도 100만 채 건설을 약속했고, 김대중 - 노무현 대통령 10년 재임 기간에도 450만 채를 지었으니 다른 사람은 말해 무엇 하랴. 주택난 해결을 위해서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든 대통령마다 결론은 ‘집 많이 짓기’ 한가지였다. 부동산 비만증은 이처럼 ‘집 많이 짓는 대통령’들의 개발정책을 폭식하면서 얻은 병이었다.
한국 현대사 경험으로 보면 부동산 정책은 민주화 이전과 이후 정권 간에 별 구분이 없다. 다만 부동산 값이 너무 오를 때 대통령이 됐느냐, 가격이 너무 떨어질 때 대통령이 됐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투기가 비만증을 부풀려 자칫 터질 위기에 처했을 때 집권한 게 노태우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다. 성은 같지만 군부정권과 민주정권으로 정반대였다. 그런데 부동산 정책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닮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토지공개념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종합부동산세로 투기를 좀 누그러뜨리려 했다. ‘투기 좀 살살 해라’ 하는 수준의 정책이라 평하면 적절한 ‘노-노’형 부동산 정책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역시 무엇 하나 닮았다고 보기 어렵지만 투기규제 장치를 죄다 풀고 경기부양을 위한 개발정책을 마구 쏟아냈다는 점에서 부동산 정책 면에서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닮았다. 경제위기와 함께 부동산 가격이 ‘너무’ 떨어지는 시기에 대통령이 됐다는 공통점 때문이다(‘DJ-MB'형).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는 달리 경제위기가 아니더라도 집 많이 짓고 도로 많이 내고 공사 많이 하는 것을 천직이자 본성으로 간직한 인물이란 점에서 그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비만’ 정책

이명박 정부는 6.11 지방 미분양 아파트 대책을 시작으로 11.3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까지 7차례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그 내용은 모두 아다 시피 강남부동산부자를 위한 정책으로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고, 집이 두 채인 사람은 세 채로, 세 채는 네 채로 더 사도록 권유하는 정책이다. 심지어 나이 38살에 집을 64채나 소유한 하늘이 낳은 집 부자에게 연간 소득이 근로소득 120만을 포함 2천2백만 원 밖에 안 되니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줘야 한다는 정책이다.
1974~2006년 사이 510배나 불어난 건설시장의 주역인 건설업체들이 시장예측을 잘못해 지어놓은 미분양 아파트를 가격을 깎지 않고도 팔 수 있게 국민 세금 들여 사주는 정책이다. 이번 기회에 거대한 몸집의 부동산이 움직이는데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다 풀어버리려는 정책이다. 부동산 비만증은 마치 부동산을 더 많이 먹는 게 최선이라는 듯한 정책이다.
정부는 이런 일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자칫 부동산이 경착륙하는 것을 예방하고 연착륙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경’이든 ‘연’이든 ‘착륙’을 원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어불성설이다. 그저 한반도 대운하로 맘껏 해보고 싶던 개발정책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현실에 맞을 것이다.
물론 현재 조성되고 있는 경제위기가 워낙 국제 금융위기에 얽혀 복잡할 뿐 아니라, 이 위기의 앞날이 정해지는 데 국내 경제나 정부 정책이 차지하는 변수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미래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모든 걸 다 해도 부동산 시장에 약발이 없다’는 세간의 평가는, 미국 발 국제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풍랑에 휩싸인 ‘냉엄한 현실’과, 약발이 있을수록 부동산 가격이 또 올라간다는 ‘약발의 가치’를 기준으로 더 따져봐야 할 복잡한 방정식을 단순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동산 비만증’에 짓눌린 주거인권
부동산 비만증이 낳은 합병증의 최악은 투기에 짓눌린 한국인의 삶 그 자체다. 대한민국 평균 봉급쟁이가 최소한 먹고 입고 쓰는 돈을 빼고 다 저축을 해도 33평 아파트를 사는 데 전국 평균으로 19년이 걸려 28살에 취직하면 47살이 돼야 한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29년이 걸려 57살이 돼야 하고, 강남에서 33평 아파트를 사려 했다가는 44년이 걸려 72살이 돼야 한다니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하늘을 나는 새도 둥지가 있고, 풀 잎 사이를 기어 다니는 달팽이도 제 집이 있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집도 절도 없이 바람처럼 뜬 구름처럼 떠돌아 다녀야 하는 셋방살이 인생, 그 규모가 전체 국민 열중 넷 꼴이라니 말이다.
부부가 독립된 침실이 없어 시부모나 다 큰 아이와 365일 함께 자야 한다면, 우리 가족만 쓰는 화장실과 목욕시설, 심지어 부엌조차 없어 빌려 써야 한다면, 산사태나 기차 소음의 위험에 노출된 집에서 살아야 한다면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달되는 곳에 사는 사람이 줄잡아 1천만 명은 된다고 하니 말이다.
인간이 동굴과 같은 지하공간에 살기 시작한 게 50만 년 전 베이징 원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21세기에 그것도 세계 11위 경제대국 한국에서 서울 시민 열 중 한 명 꼴로 지하실에 살고 심지어 동굴에 사는 사람도 있다 하니 주거 인권은 너무 처참한 수준이다.

경제위기에 주눅 들지 말아야

경제위기는 모든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효과가 있나 보다. 돌아보면 주눅 든 침묵 속에 부동산 부유층을 더 살찌우고, 대다수 서민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게 경제위기였다.
경기가 괜찮을 때는 투기로 집값이 오르고, 경제가 위기일 때는 경기부양책 때문에 집값이 안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면 부동산 비만증은 영영 치료할 길이 없다. 비만증에는 폭식이 아니라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부풀대로 부푼 집값을 제 자리로 끌어내리지 않고 어떻게 비만증을 치료하겠는가.
그마나 서민들이 동굴과 지하실에서 밝은 태양계 햇빛을 볼 수 있는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는 거품이 잔뜩 낀 집값이 정상 가격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셋방 사는 1,700만 명의 한국인이 좀 더 넓은 전셋집으로 옮겨가거나 개중 형편이 나은 사람은 내 집 꿈이라도 실현하려면 집값이 떨어져야 하는데, 집값 떨어지면 다 죽을 것 같은 분위기에 주눅 들어 있다.
주눅 들수록 주거권이 박탈된 대다수 한국인의 힘겨운 삶에 볕들 날은 멀어진다. 정신을 가다듬고 경제위기 우산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보고 느끼고 판단한대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자. 집값 좀 낮춰 서민도 좀 살자고. 집값 좀 낮춰 부동산 비만증 치료하자고.

덧붙임

* 손낙구 님은 『부동산계급사회』(후마니타스, 2008)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