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야 했다. 둔한 내 몸을 일부러라도 채찍질 해야겠다 싶었다.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자연에 대한 향수는 거의 없다. 할머니가 계신 시골의 커다란 나무와 강물 소리들이 아릿하게 떠오르긴 해도 그게 절실하진 않았다. 도시에서 벗어나야만, 그래야만 내 몸과 마음에 닿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한다 해도 다만 그 뿐,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는 어항 속의 물고기였다. 아프리카의 굶어 죽는 아이 소식에 마음이 아픈 누군가는 ‘사람에게 날개가 있다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라고 적었다. 아무래도 그게 내 일 같지는 않으니까, 날아다닐 수 있다면 경계 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거라 믿어서였다. 도시인 역시 마찬가지. 난 움직거려야 했다.
'사귀자' 녹색연합에선 ‘사귀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4대강 살리기란 명목 하에 이뤄지는 공사로 이미 파괴될 대로 파괴된 습지와 강변의 모래사장들. 그것들이 더 파괴되기 전에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대강 귀하다 지키자'다. 도시에 사는 열여섯 명의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금강의 현장으로 출발했다.
여행 잡지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창 여행을 다니고 찬양 글을 쓰면서도, 난 여행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이 많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4대강 사업을 반대할 거란 내 순진한 기대가 무너져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이기를 위한 관광사업이 눈에 보여서였다. 인간의 여행 혹은 관광을 위해 자연은 과연 어느 정도 까지 훼손 가능한가. 아니 훼손 불가능한가. 인간의 눈요기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러 '관광지화' 시키는 움직임들은 무조건 다 용인되는 것일까. 선과 정도가 있으면 싶었다.
처음 방문한 충남 서천군의 신성리 갈대밭에서 특히나 이런 고민이 많았다. 정부에서는 신성리 갈대밭에 공원 너댓개를 만들고 흙길을 포장해 자전거 도로를 만들거라 했다. 이미 이곳은 충분히 사람 손 때가 많이 탔다. 관광할 수 있도록 길을 냈고 그래서 이미 많은 갈대가 사라졌다. 바닷물이 드나들지 못 하게 강에 둑을 막아서 해수를 통한 자연적인 잡초제거도 불가능하다. 매년 돈을 들여 갈대밭에 소금을 뿌린다고 했다.
충분하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관광객들은 이곳을 찾아 갈대밭과 강을 즐기고 간다. 하지만 이 정도서 멈추지 않고 말 그대로 '무분별하게' 계속되는 개발. 그건 곧 자연 파괴, 인간 중심적인 생각들. 서 있는 곳 멀리에 삽질하는 포크레인이 보였다. 도시에선 늘 익숙했던 포크레인, 그 당연했던 풍경을 넓은 강변에서 바라 보니 새삼 낯설었다. 부자연스러웠다. 어쨌든 인간들이 좋아해 마지 않는 산, 강, 나무, 꽃들. 이 자연을 인간은 얼마나 누릴 수 있고 그 '선'은 어느 정도인가. 털끝 하나 대지 말아야 할 것 같다가도 어느 정도 개발해서 누리고 가는 것이 역사라는 생각도 들어 머리가 복잡했다.
문득 옆 사람에게 물었다.
"근데 4대강 사업 주장하는 사람들도 산 좋아하고 물 좋아할 텐데 왜 자꾸 망가뜨리는 방향으로만 갈까요, 공사하려는 이유가 대부분 엉터리란 반박도 많은데."
"돈 이죠."
이미 알고 있는 답이지만 언제 들어도 이 사실은 허무하고 시시하다.
"여길 어떻게 혼자 오게 됐어요?"
"그냥.. 말로만 반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대단한 것 같아요. 마음이 끌려 여기까지 왔다는 게."
"... 이렇게 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어차피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공사는 계속 될 거라는 거. 이러는 게 그냥 자기 위로 같아 씁쓸해지기도 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런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 분명 큰 힘 돼요. 낙동강엘 갔는데 꾸준히 강 길 걷는 사람들 있어서 짠했어요. 그런 거 절대 무시할 거 아니에요. 절대."
처음 만난 우리들은 느닷없이 말을 걸었고, 금방 서로에게 진심을 털어놨다. 본능적으로 통할 뭔가가 있을 거란 서로의 기대 때문이었을 거다. 대화를 하다 번뜩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을 듣는 순간 보이는 내 오만함, 곳곳에서 소박하게 제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 될 거라고 해서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들, 또 내 입으로 안 될 거라 쉽게 단정지을 수도 없다는 걸, 지나간 그 어떤 역사도 그러하다고 증명한 적은 없다.
우리가 찾아간 두 번째 장소는 바로 금강을 끼고 있는 금산 천내습지였다. 이 곳에서 만난 금산참여연대의 최병조 사무국장님 덕분에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던 ‘단단한’ 희망. 그는 천내습지를 거의 지켜냈다. 정부는 금강 살리기 사업 중의 하나로 천내습지를 꽃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무국장님은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이 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부를 상대로 싸웠고, 그나마 이곳은 공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일단 구두로까지 받아 냈다고 한다.
금강 상류에는 습지가 많지만 천내습지처럼 다양한 식생과 동물이 갖춰진 데는 드물다고 한다. 우린 길이 2km, 폭 200m의 천내습지를 걸었다. 가는 길에 고라니똥이 보이고 진흙엔 뉘인지 모를 동물 발자국도 있었다. 보이진 않아도 곳곳에 형성된 둠벙에서는 두꺼비나 개구리가 알을 부화하곤 다시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30년 전에 이곳을 골재채취 한다고 다 파냈었대요. 그런데 삼십 년 만에 그때 모습 그대로 다시 복원이 된 거예요. 자연은 그냥 이 모습이 맞는 거예요. 이것보다 더 크지도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냥 물 고여 있는 이 습지가 뭐가 그리 대단한 거냐 싶겠지만, 이 습지가 없어지면 생물도 다 같이 없어지고 마는 거다. 사무국장님은 덧붙였다. 이 곳이 꼭 관광지가 돼 줄 필요는 없는 거라고. 공사해서 지역 활성화 하고 싶은 거라면 그냥 그 지역에 예산을 주는 게 맞다고, 있는 거 자꾸 망가뜨리지 말고 말이다.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생태계를 위한다면 최소 3,4년 걸려요. 아무리 짧아도 사계절은 봐야할 거 아닙니까.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한 거 보고 놀랐습니다. 얼마나 부실한지 절차에 지나지 않아요. 환경영향평가만 하면 공사가 합법이니까 그냥 했다는 거만 보여주는 겁니다. 4대강 사업 자체가 안고 있는 맹점이 그런 거예요.”
천내습지의 끝에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우린 강을 건넜다. 이 두 발로 직접 금강 상류를 건넜다. 산소가 많아 물이 소리 내며 흐른다는 여울이었다. 물이 얕아 사람이 그냥 건널 수 있는 곳이다. 맨발에 자갈이 밟히는데 발바닥이 어찌나 아픈지 한 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지압 효과로 온 몸에 피가 돌아 얼굴은 벌개지고 뒤뚱거리며 걷는 사이 비가 내려 옷이 젖는 줄도 몰랐다. 문득, 내가 강을 건너고는 있는데 이곳이 강이란 건 실감이 안 나 멈춰 섰다. 왼쪽에서 물이 흘러 내려와 내 다리를 휘감고 오른쪽으로 흘렀다. 돌돌돌돌. 그렇게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동안에는 발바닥에 온 신경이 묶여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머리는 텅 비었고 그저 귀가 물소리를, 코가 물 냄새를, 눈은 흐르는 물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강을 다 건너자 또 이유 없는 이런 저런 의문들, 나는 왜 자연이 파괴되는 게 싫을까, 왜 무분별한 개발에 속이 상할까, 왜 나는 어떤 사람들보다 이 강물을 더 믿는 걸까.
무모하게 친구에게 자꾸 캐물은 적이 있다. “너 왜 4대강 사업 반대해?” “너 왜 자연이 좋아?” 친구는 “좋으니까 좋은 건데, 그리고 자연 앞에 서면 내가 작아져서 좋아.” 그래서 친구는 이리 말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사라져 가는 거 보면 마음이 쿡쿡 쑤시는 거지.”
죽음을 반대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슬픈 사실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사랑하는 것들의 죽음 앞에서, 더욱이 대책 없이 억울한 사라짐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움직거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더욱 골똘해진다.
덧붙임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