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인망 어선들이 자행하는 노예노동
최근 환경운동단체 환경정의재단(The Environmental Justice Foundation, EJF)은 「망망대해에 All At Sea」라는 보고서를 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하이테크 저인망 어선들이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이미 사라진 것 같은 노예선을 이용하여 전 세계 바다에서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직접 필드워크를 거친 환경정의재단의 보고서는 영국의 언론 <Guardian>에 의해 심도 있게 보도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하이테크 저인망어선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노예노동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불법행위를 상시적으로 저지르고 있다. 한국 어선에 몸을 실은 대부분의 선원들은 수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미숙련노동자가 태반이다. 이들은 막대한 돈을 현지 직업소개소에 지불한 대가로 배에 탑승하게 된다. 서아프리카에서부터 동남아시아, 인도양, 태평양 등을 가로지르는 저인망어선의 조업은,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생태계의 자생력을 추호도 고려하지 않은 불법행위를 통해 지속되고 있다. 혹자는 한국 어선들의 조업행위를 가리켜서 불법으로 점철된 ‘해적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한다.
‘불법적이고, 관계당국에 보고되지 않으며, 규제받지 않은’ 어업행위는 해양환경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쳐서, 인근 지역 어민들이 극심한 생계의 어려움에 방치되는 상태를 조장한다. 이와 같은 불법행위가 특히 감시가 취약한 개발도상국 근처 해안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에, 현지의 가난한 어촌 주민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인재로 연결시키고 있다.
선원들에게 가해지난 가혹한 노동
특히 이 보고서가 독자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준 것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선원들에 대한 인권탄압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시에라리온 등지의 빈곤한 미숙련 선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하루에 최장 18시간 동안 중노동을 강요받고 있으며, 상시적인 감금과 종종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저인망어선의 한국인들은 만일 선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항의하며 개선을 요구할 경우, 무일푼인 선원들을 가까운 해안에 버려둔 채 어업을 지속했다. 이러한 유기 행위는 사실상 선원들의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움으로써 노예노동의 메커니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선원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승선을 거듭하며 일을 해야 했다. 한 달에 고작 200달러 정도를 받는 임금조차 체불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여권을 비롯한 신분증 압수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시에라리온 출신 선원들은 현금으로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는 대신, 유럽의 수산시장에다 내다팔 수 없는 물고기들을 임금 대신 받도록 강요받기도 하였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연일 40도에서 45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아무런 방비 없이 노출되어 있다. 채 100미터도 안 되는 자그마한 공간에서 다수의 선원들이 켜켜이 몸을 맞대고 생활하고 새우잠을 자야 했으며, 환풍기나 에어컨은 전무했다. 이들에게는 외부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며, 위급상황에서 쓸 수 있는 안전장치도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선원들이 먹는 음식은 더러운 악취가 진동하는 상자에 비위생적으로 담겨 있었으며, 깨끗한 물을 거의 마시지 못한 채 오염된 소금물을 마시기 일쑤였다. 이들과 함께 배에 올라탔던 환경운동가 던캔 코플란드(Duncan Copeland)에 따르면, 배의 곳곳에 바퀴벌레가 득시글거렸다고 전했다.
환경정의재단은 오늘날 전 지구에서 선원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노동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해양기구는 올해를 ‘국제선원의 해’로 정하면서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선원들의 불우한 처지를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해적들에게 잡힌 어류들이 버젓이 식탁에
갈수록 수산식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 세계 바다 곳곳은 이미 심각한 자원의 고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 현실화되면서, 유럽연합은 불법행위를 통해 포획한 물고기들을 회원국들 간에 거래할 수 없는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도 곳곳에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 환경정의재단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 일본의 불법어선들이 불법으로 잡은 어류들이 유럽의 식탁에 올라가게 되는 것은 절대 이윤을 차지하려는 각국 어선들의 ‘합작’을 통해 가능해진다. 인적이 없는 해안에서 불법어선은 허가를 받은 선박에 고기를 슬며시 넘김으로써 순식간에 합법적인 어류로 탈바꿈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본의 아니게 해적들이 닥치는 대로 잡아들인 어류들을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은 유럽연합에 속해 있지 않은 점을 교묘하게 악용해서 불법행위를 보란 듯이 자행하고 있다. 한국의 저인망어선이 불법어업행위를 하다 관계당국에 적발되면 막대한 금액의 벌금을 납부해야 하지만, 조업을 하면 불과 두 세 달 만에 금세 벌금에 준하는 돈을 회수할 수 있기에 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사건이 점증하는 사이에, 얼마 전 한국인 선장과 1등 항해사, 기관사가 시에라리온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서 3천 4백만 원 가량의 벌금을 납부하기도 하였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강탈과 선원 납치 행각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보도와 국민감정 속에서, 한국인 어선들이 빈국 출신의 노동자들에게 참혹한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련의 노예선 사건은 국내 미디어에 의해 전혀 보도되지 않으면서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지 않은 형국이다. 인권과 자연에 국경이 존재하지 않듯이, 한국 어선들이 나라 밖에서 해양생태계를 치명적으로 위협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가난한 선원들을 인간이 아닌 노예로 착취하고 있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의 책임과 가책을 요구하는 문제로 보인다.
특히 공정무역의 일환으로 우리가 입을 옷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움직임처럼, 우리가 먹을 해산물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잡혔는지를 헤아려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바로 한국의 절박한 대응과 해결의지가 절실해 보인다.
덧붙임
박정준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