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설문조사는, 2010년 1월부터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거나, 설문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전국의 10대 665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배달노동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은 205명이었다. 현재 배달노동을 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청소년 14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도 이루어졌다.
“다 돈이 한편으로 사람을 살리고 한편으로 죽이는 거예요”
“재미로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막상 타보면 목숨 걸고 하는 거인 지 이제 알죠.” 이 청소년 배달 노동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은 언제나 목숨을 걸고 노동을 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었다.
얼마 전 청소년 배달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배달노동자들의 안전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30분 배달 보증제가 폐지됐다. 하지만 배달 1건당 소요시간이 20분 미만인 응답자가 83.9%로 나타나 30분 배달 보증제가 과속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면접조사에 응한 청소년들이 생각한 과속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업주의 폭언과 벌금’, ‘소비자의 배달 재촉’이었다. 제도적인 문제보다는 배달노동자를 ‘아랫사람’이라고 보는 사업주나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의 상황을 아예 외면해버리는 소비자들의 인식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평가인 것이다.
청소년 배달노동자를 사고에서 그나마 지켜줄 수 있는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이 되지 않았다. 퀵서비스나 택배와 같은 운송업과 달리 패스트푸드 배달 노동은 그냥 서비스업으로 분류되어 안전 장비 지급이나 오토바이의 안전 기준을 법에서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의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원하는 사업주들은 헬멧 정도만을 지급하고 있어서 어떤 상황이든 헬멧만 착용하고 배달을 가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교육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66.3%가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도 조심운전이나 헬멧 착용 등을 지시하는 업무지침을 안전교육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와 같은 과속 조장, 안전 장비 지급 부족, 안전교육 부족 등의 요소들로 인해 응답자 중50.2%가 사고를 경험했다. 그 중 교통사고가 월등히 많았으며, 통원, 입원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56%로 나와 청소년 배달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단순한 우려가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30%는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런 저임금은 청소년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배달노동을 선택하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청소년 노동자들이 배달노동을 선택한 이유 중 ‘다른 업종에 비해 높은 시급’이 48.3%로 가장 많았다. 청소년 배달노동자가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노는 애’일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달리,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서’라고 응답한 청소년 배달노동자는 9.3%에 그쳤다. 면접조사에 응한 청소년은 “뭐 집에 할머니 밖에 없어가꼬 용돈 내가 받아쓰기도 그렇고, 다른 일보다 돈 더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시급을.”이라며 자신이 배달 노동을 선택한 계기를 얘기했다. 다른 청소년 배달노동자들도 대체로 용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배달 노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배달노동의 임금수준 역시 다른 업종에 비해 월등히 높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수준의 임금을 얻기 위해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은 다를 바 없다.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야간 노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야간 노동은 건강과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 등에 큰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인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2명 중 1명꼴로 사고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에 비해 사고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던 사람은 30.5%밖에 되지 않아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산재보험을 받지 않은 이유는 ‘제도를 몰라서’가 가장 많았고, ‘내가 잘못했으니까’ 역시 상당히 많아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노동교육이 절실해보였다.
마음 놓고 쉴 시간도 없었다. 4시간마다 최소 30분의 휴게시간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응답자 중 58.2%가 정해져 있는 휴게시간이 없어 사업주의 눈치를 보며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식사하고 있는 시간에도 주문이 들어오면 당장 나가기를 주문하는 사업주도 있었다. 주휴일은 있었지만 그 중 55%가 무급으로 쉬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대타를 구하지 않고 쉬면 벌금을 물리기까지도 해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을 더욱 더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이처럼 청소년 배달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들마저 보장받지 못 하는 노동환경에서 힘겹게 노동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 배달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
청소년 배달 노동자들이 이렇게 기본적인 노동권마저 보장받지 못 한 채 노동을 하게 되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겠지만 실태보고에서 중요하게 제시한 원인은 ‘제도와 감독 부족’, ‘노동인권교육 부족’, ‘사회적 인식’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위에서 봤듯이 패스트푸드 배달노동은 일반 서비스업으로 분류되어 안전 장비에 관한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 장비에 관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청소년 배달 노동자들은 사고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 역시 현실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도가 있는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감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근로계약서 미 작성 비율 53.4%, 정해진 휴게시간 없음 58.2% 등의 설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면접조사에 응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근로감독관을 본 적이 없고, 근로감독제도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은 노동인권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했다. 최저임금이나 근로계약서, 산재보험 등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 지식들마저 알지 못 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용노동부의 주요 정책에는 청소년이 고려된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삶에 필요한 지식을 알려줘야 될 학교마저 노동인권교육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청소년 노동자를 ‘청소년 시기에는 공부에만 집중해야 된다’는 생각에 끼워 맞춰 규제하고 있었다. 참고로 실태보고 때 실제 배달 노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은 학교의 불허로 못 왔다고 한다.
‘사회적 시선’이야말로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의 현재 노동환경을 만든 ‘숨겨진 검은 손’이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복합적인 시선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다. ‘청소년의 본분은 공부다’라는 시선은 청소년 배달 노동자들을 학생답지 않은 문제아로 만들었다. ‘청소년이 노동하는 것은 사치를 위해서다’라는 시선은 그들이 사고 싶은 것을 사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것을 사치로 단정 짓고, 청소년 노동을 성인 노동보다는 질이 낮은 아르바이트로 폄하해 청소년 노동자에 대한 푸대접을 조장한다. 청소년 배달노동자를 외면하는 소비자의 시선도 문제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가도 재촉을 하는 것 안에는 청소년 배달노동자에 대한 어떠한 배려나 생각도 담겨 있지 않은 채 ‘손님은 왕이야’라는 서비스 노동자를 무시하는 잘못된 소비자 의식이 담겨있다.
그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배달노동자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바라고 있는 것들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최저임금 현실화’, ‘정규교과에 노동인권교육 포함’, ‘수습기간 감액 규정 삭제’,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사항을 요구하지만 결국 이들이 하고 싶은 얘기는 청소년 배달노동자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들 역시 학생이자 노동자이며,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학교가, 그리고 시민들이 청소년 배달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덧붙임
영글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