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올해 서른넷이다. 첫 문장부터 웬 나이 타령? 이십대에 너무도 힘들었던 탓인지 어서 빨리 삼십대를 맞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삼십대가 된 선배들은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삼십대가 되면 나도 좀 안정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뭐 이런 생각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나이도 하나의 권위로 통하기에 내 스스로 이런 권위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쓰는 언어 하나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쓰지만 나의 인생을 돌아 볼 때에 나이는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구획선이기도 해서 이럴 때는 유용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내가 쓰는 이 글은 내가 걸어온 시간만큼의 고민이라,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른셋이 끝나갈 무렵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왜 아직도 그렇게 살아요?? 지지리 궁상맞게 책임질 것 밖에 없는 이 일(운동)을 왜 하고 있는 건가요?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궁금해요. 십여 년 동안 그냥 시간에 얹혀 오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살면서 이렇게 공격적인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 어안이 벙벙하고 말문이 막혔다. 나 말고도 이 질문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20대 중후반 때에도 부모님이나 주변 친구들이 “왜 아직도 번듯한 직장에 취직 안하고 그렇게 사느냐?”, “앞으로 뭐하고 살 거냐?”라는 질문들은 했지만 임기응변으로 넘겼던 그때와는 달리 집요하게 나에게 답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골치 아프지만 내가 해결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숙명과도 같은 질문.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묻고 있는 거 같아서 오로지 스스로 냉철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지금 이에 대해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십대에는 나이 서른에도 나는 당연히 운동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십대에 바라던 대로 나이 서른에도 난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게 막연히 생각한대로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계, 건강, 집안 및 가족 등의 문제로 운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가치관이 달라질 수도 있고 자기의식을 배반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가슴 한구석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긴장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다. 그리고 이 긴장의 터널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일이다.
처음엔 내 나름의 가치를 두고 시작했던 일들이 갈수록 책임과 의무만 늘어가는 이 생활이 너무도 힘들었고 내 의지보다는 운명공동체 속에서 허우적대며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내 스스로 소진되기도 했다. 그러다 그만두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는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몫들이 있듯 지금은 스스로 또 한 고비를 넘기며 난 왜 아직도 이러고 사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많은 마주침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머리로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판단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많은 불안이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바를 기획하고 표현하고 그러는 삶들이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시기가 있었는데 사상과 구호만 있고 실천과 행동이 없는 모습이 지속되는 데에 대한 권태로움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선배를 통해 영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체제인가가 중요하다. 돈이 우선인 사회인지 사람이 우선인 사회인지 말이다. 그러면 사회체제가 바뀌면 사람들도 개과천선 되는 거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사람은 사회체제를 만들고 사회체제도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거냐는 문제는 어떤 사회체제를 만드냐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내용이 영성에 관한 부분이었다.
한동안 자본주의 체제는 대안이 아니라고 배우면서도 자본주의의 소비자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에 괴리감이 들었고 내가 하는 활동이 위선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 선배를 통해 나는 갈등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했고 그렇게 인식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함께 대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를 알고 인정한다는 것의 시작은 그때였던 거 같다.
운동을 당위로만 여겼던 나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하고 운동을 삶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때가 그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정의, 당위, 대의라는 내 안의 허위를 벗어던지고 운동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거 같다. 그 뒤로도 갈등은 많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 말문을 막히게 했던 그 질문에 대해 난 아직도 뚜렷한 답이 없다. 이제 이렇게 사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이 그렇게 돼버린 건 아닌지…….
그래서 그 질문을 받고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는 거 뭐 있어? 그냥 사는 거지. 얼버무리기도 했고 어쩌면 이 질문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 아직도 이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생각한대로 살다보니 여기에 있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내가 갈 길이 확실하지 않지만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해서는 뚜렷해지기도 하다. 또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당위로만 접근하는 것은 나를 더 이상 살게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몇 년 전 기회가 되어 일본 노동조합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운동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 열심히 하고 직책이 없으면 활동에서 멀어지는 한국의 모습과는 분명 달랐다. 운동이 삶이라고 하는 것을 그 노령의 활동가들의 모습에서 본 것 같다. 무엇을 하더라도 웃음이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힘겨움만이 잠식해버린 내 모습을 다시 반추해보기도 했다.
당신들 왜 그렇게 살아요? 그 사람들한테 그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여유가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런 질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질문은 크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 질문을 나에게 했던 사람도 내가 불안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십년을 갓 넘긴 고비에서 맞아야 할 질문이기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질문은 내가 활동가로 성장하기 위해 넘겨야 할 또 다른 고비이기도 하다. 언제 누군가 이 질문을 내게 다시 했을 때 내가 허허 웃어넘길 수 있기를 바라며 난 이 질문을 한동안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덧붙임
풍경 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