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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의 인권이야기] 노동 천국, 출근 지옥

난 곧잘 이런 말을 한다. “아침 출근 시간만 없어도 내 삶의 질이 훨씬 더 좋아질 텐데!” 출근 시간이 긴 건 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강남 방향 지하철 2호선을 탄다는 것. 말 그대로 출근 전쟁, 지옥철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먹 하나 지나갈 정도의 거리만 유지해도 그 날은 운이 좋다. 아무리 사람과의 접촉이 중요하다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밀폐된 공간에 빽빽하게 서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침잠은 밀려오고 다리는 아프고... 어쨌든 실려 가긴 해야 하니 버틸 수밖에 없지만 정말이지 곤욕이다. 어쨌거나 출근길의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다들 참 열심히도 사는구나.'

어쩌다보니 최근 거친 두 곳의 직장 모두 지하철 2호선 라인이었다. 처음엔 제 정거장에서 내리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며 보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환승통로에서 심장을 부여잡고 쪼그려 앉아있는 여자애를 보기도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한 동료에게선 “서 있는 내내 한 쪽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느라 쥐가 나는 바람에 정작 내릴 정거장에서 내리지 못 했다”는 슬픈 일화를 들었다. 내가 본 가장 슬픈 장면은 짜증이 난 한 남자가 옆 사람의 뺨을 때린 일이었다. 비키라고 했는데도 꿈쩍을 안 하자 화가 난 남자가 누군가의 뺨을 때렸고 욕설이 오가면서 지하철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래도 모든 일이란 익숙해지기 마련인지 지옥철 2년차 이젠 출근길이 덜 부담스럽긴 하다. 좁은 공간에서 내 나름의 공간 활용 능력도 생겼다. 그만큼 주위 풍경에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자꾸만 생각나는 건, 내 곤욕이 아니라 이 풍경에 대한 씁쓸함이다. 노동 천국, 출근길 지옥. 수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어딘가로 향하는 서울이란 도시의 아침 풍경은, 열정적이라기보다는 공허하고 또 맹목적으로 보인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오랫동안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가 제일 못 견뎌한 것은 지하철 출근길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팔 하나 틀기도 어려운 상황이 못 견디게 싫었던 거다. 곳곳에서 낑낑대는 신음소리를 듣다 못한 그는 다들 왜 이러고 사는지 화가 났다고 했다. 글쎄 그래서 그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여러분,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지하철 측에 전화라도 해서 항의합시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뜬금없는 그의 행동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런데 반응이 전혀 없더라고. 무관심하게 쳐다보고 마는 표정들이 더 무섭더라.”

물론 그의 행동은 반응을 보이기 참 뭣하게 뜬금없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걸 몰라서 이러나.’ 출근길의 곤욕이란 누구에게 뭐라 탓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다. 어쨌든 다들 열심히 살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인데, 누군가가 제동을 걸며 왜 꼭 ‘열심히’ 살아야 하느냐 하고 물어버리면 그건 그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리 답할 수 있는 질문인 것만 같다. 그래서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해? 노동을 강요하는 이놈의 사회가 문제지’라고 탓하는 말도 참 공허하다.

그런데, 나는 피로하다. 사람들은 피로하다. 그래서 아쉬운 건, 이렇게 악착같이 모두 한 곳으로 몰려가지 않아도 생활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걸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선택하지 못 했을 뿐이다. 출근길만 겪지 않아도 내 삶의 질이 더 높아질 거란 불만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건, 바로 이런 고민에서 나오는 것일 터. 개개인의 삶은 뭐라 논할 수 없기에 차치하더라도, 도시의 출근길 풍경 그 자체가 황량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자꾸 피로해지면 사는 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피로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결국은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데? 그 ‘열심히’ 라는 건 대체 무언데?

낯선 사람과의 부대낌에 마냥 친절할 수만은 없더라도 적어도 짜증 때문에 낯선 이의 뺨을 때려선 안 되지 않을까.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외침에 한 사람이 반응하고 다 같이 바꿔보자고 박수를 치는 장면을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통쾌한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네 삶의 질이 조금 나아지는 건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글을 쓰는 사이 날은 어둑해지고 주말의 끝자락, 그리고 월요일. 그 어떤 날보다 피로감이 높아지는 월요일인데. 또 다시, 출근이다.
덧붙임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