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외투를 다시 옷장에 넣게 된 것을 보면, 언제 끝나나 싶던 겨울이 지나가긴 했나보다. 이번 겨울은 눈이 참 많이 왔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눈을 싫어하게 된 나는 기상예보에서 유난히 자주 전해진 눈 소식이 원망스러웠다. 2020년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12월 30일 부산에서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노동자 김진숙 님과 동료들이 길을 나섰다. 멀고 험한 길이었다.
서울까지 400km에 달하는 거리만이 아니었다. 민주노조 운동을 이유로 한 부당해고였음이 이미 오래 전 인정되었지만, 당연한 복직이 가로막혀온 35년의 시간이 이어져온 길이었다. 경영부실의 책임을 한진중공업은 또다시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매각을 추진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며, 사측의 손배 탄압으로 네 명의 동료들을 잃은 한진중공업에서 “내 발로 걸어나오기 위해” 정년까지 반 년 남은 지난 여름 시작한 복직 투쟁이었다.
정년인 2021년을 이대로 맞게 할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김진숙 복직’을,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계속되는 산재사망 노동자 소식에 대한 분노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청와대와 국회에 요구하는 농성 투쟁의 날이 더해지고 있었다. “앓는 것도 사치”라며 김진숙 님이 다시 나선 길은 서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싸움들과 이어지는 길이었다. 코로나19로 더 제약된 조건에다가 가림막 하나 없이 맨몸으로 버티며 길 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속상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눈 쏟아내는 하늘로 돌린 날이 많은 겨울이었다.
무책임한 정치와 탐욕스런 자본으로 인해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권리가 위태롭고 흔들리기 때문일까. 다급한 마음이 담긴 듯 내딛어간 걸음은 걷기가 아니라 뛰기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고,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영상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숨을 고르게 됐다. 그래서인지 예정했던 것보다 더 빠른 34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함께 걸을 날을 다이어리에 적어두었지만, 마지막 날인 2월 7일에서야 함께 했다. 12월 30일 3명이 나선 길은 날이 갈수록 곁을 지키며 함께 걷는 이들이 늘어났고, 2월 7일 함께 출발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흑석역에 모여 있었다. 남영동 한진중공업 본사를 지나 48일을 버텨온 단식 농성자들이 있는 청와대 앞에 이르는 길,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했던 정부가 ‘유령’ 취급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해고 없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더해졌다.
청운동사무소 앞 한데 모여 마무리하는 자리,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부당해고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의 기만성을 드러내며 파업 중인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 불법파견이 드러났지만 5년 넘게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 흑자 위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11년 투쟁 끝에 복직했지만 다시 매각 소식이 들려오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저마다의 이유로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투쟁들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언제든 ‘폐기 처분’되고 사람의 자리가 지워지는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며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는 하나의 투쟁이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진숙 복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시대의 복직’이라는 김진숙 복직은 잘못된 과거를 되돌리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성장만을 내세우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추구해도 노동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는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자본의 시대만 있었던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말로 들렸다. 시대의 복직이란 말 안에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세우는, 노동의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꿈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 없이 정년 없”기에 김진숙 님의 복직 투쟁은 계속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났고, 만나게 될 여러 투쟁들이 함께 시대의 복직을 위한 길을 낼 것이다. 그 길을 낸 걸음들을 새겨온 여정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다시 오늘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