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서의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이 두물머리에서 이루고자 했던 바는, 도시인들에게 관광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준설을 하고 보를 세워 강을 못 살게 하면서 큰돈의 흐름을 만드는 동안 도시-소비-유권자들에게 '이렇게 좋은 4대강 사업'이라고 홍보하고 체험시킬 구체적인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4대강 사업구간 중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두물머리는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두물머리의 아름다움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였다. 그러나 두물머리는 이미 유기농업을 통한 수질보호와 건강한 먹거리의 제공이라는 좋은 순환의 한 고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3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는 역사도 가지고 있었고,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를 개최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대의가 충돌한다. 4대강 사업 미화를 위한 관광지의 개발이냐, 유기농업을 통한 수질보호와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이냐. 누가 보아도 게임이 되지 않는 매치업에, 정부 스스로도 궁색하게 말을 계속해서 바꿔 나갔다. 공사가 시급하다며 농부들을 내쫓고자 했던 법원에서도 공사설계도는 아직 미확정이라며 매번 새롭게 제출되었고, 이렇게 아름다운 두물머리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되'돌려드리겠다고 홍보하는 조감도도 시기별로 새롭게 공개되었다. 자전거도로 공사가 시급하다면서 법원에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놓고, 유기농지를 짓밟는 자전거도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두물머리에는 자전거도로 만드는 계획은 없다면서 발뺌을 하였다. 농부들이 저항해온 4년 동안, 애초에 두물머리에 만든다던 자전거도로나 음악당 같은 위락시설, 그리고 두물머리를 절반으로 절단해 인공수로를 만든다는 계획 등이 모두 취소되었다. 저항의 결과는 즉각적이었고 성과는 축적되어 왔다. 그리고 결국 정부는 마지막 합의를 통해 관리용도로와 산책로를 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합의의 성과는 매우 가시적이다. 두물머리의 저항은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MB정부가 밀어붙인 4대강 사업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계획을 좌초시키고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그릇을 만들어냈다. 지역의 특성과 삶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계획되어 내려오던 개발사업의 진행방식에 제동을 건 셈이다. 두물머리가 싸우는 사이, 전국의 지자체에서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 조례 등을 통해 주민이 직접 디자인하고 주도하는 새로운 사업방식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계획은 다 세워놓고 형식적인 공청회나 설명회로 지역 거버넌스를 퉁치던 시대는 종식되어야 한다. 두물머리가 그 흐름에 하나의 파장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합의안에 말해지지 않은 농사
국토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부분은 하천부지에서 친환경 유기농업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하천법에는 분명히 하천부지를 경작목적으로 임대할 경우 친환경농업을 적극 장려하도록(제8조) 명시되어 있는데, 국토부는 계속해서 하천부지 농사는 불법이라며 두물머리 농부들을 공격해왔다. 또, 같은 논리로 4대강 사업을 통해 전국 12,673개 농가를 철거ㆍ이전시킨 바 있다. 그 자리에는 친수구역특별법 등을 통해 강변막개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두물머리 합의안에 농사가 공식적으로 말해질 경우, 이미 철거ㆍ이전시킨 농가들의 뒤끝을 감당할 수 없기에, 또 4대강 사업으로 구멍 난 재정을 강변막개발로 채워야 되는 현실도 되돌릴 수 없는 4대강 개발의 구조이기에, 국토부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농'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결국 되돌려질 문제이다. 강변에는 가장 고운 흙들이 쌓이고 농사짓기에 제일 좋은 땅이 된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문명은 강에서 시작한 것이고, 서울도 한강에 있는 것이 아닌가. 국토부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토건마피아들이 뒷받침하더라도 이러한 인류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4대강의 황량한 공원들은 벌써 관리불가 상태로 접어들고 있고, 친수구역 사업은 수익성 문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4대강 수질의 문제도 녹조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이 4대강 복원과 재자연화를 약속하고 있고, 하천법은 강변에서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도록 시설재배까지 다시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두물머리와 정부의 합의안은 '농사'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대신,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을 구성하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괜찮은 퍼머컬쳐 유기농장인 호주의 세레스와 영국의 라이톤을 모델로 참고한다고 명시하였다. 참고해야 할 모델들이 유기농업에 기반한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으니, 앞으로의 협의과정에서 흥미진진한 설전들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두물머리 농부들의 실력이 한 수 위다. 벌써 호주 세레스의 교육국장인 에릭 보톰리Eric Bottomley가 9월 중순 두물머리를 방문하여 간담회를 진행한다고 한다.
대의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농부들의 삶
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쫓겨나게 된 두물머리 농부들의 삶에 연대해 왔지만, 정작 농부들의 입장은 자신들의 삶보다는 '유기농'이라는 대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처음부터 두물머리라는 공유지에 납득할만한 사업이 진행된다면 떠날 수도 있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발원지에 당연히 유기농장이 남아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유기농이 수질을 오염시킨다고 유기농 자체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농부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두물머리 싸움은 유기농이라는 운동과 철학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정부와의 합의에도 농부들이 잘 이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도 농부들도 먼저 떠나간 일곱 농가에 준하는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지원의 핵심은 농부들이 자신들이 경작할 새로운 농지를 구입하는 비용을 저리의 대출로 지원해주고, 3년 뒤부터 원금과 이자를 17년에 걸쳐 갚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원책을 현실에 적용해보면 농사를 이어나가기가 막막한 수준이다. 두물머리 부근의 농지는 평당 수십만 원을 넘어서고, 농사를 짓기 위한 최소한의 땅을 구입한다고 해도, 3년 뒤부터는 1년에 약 2,000만 원씩 17년 동안 갚아나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매년 2,000만 원의 순수익을 남겨 빚을 갚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참고로, 정부가 이전에 따른 영농손실이라고 보상해주는 수익은 1년에 평당 2,400원이다. 또 농사로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죽도록 일하는 것이 농부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도 아닐 것이다. 농부들은 당장 두물머리에서 떠나가지만, 어디에서 농사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막막한 상황이다.
이것이 비단 두물머리 농부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농사를 업으로 삶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구조이고,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는 땅값은 (농사짓는 것보다 기다렸다가 파는 것이 더 이익이 되기 때문에) 땅 있는 농부들의 경작의욕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농부들의 진입도 차단하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빚쟁이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농사를 짓기 위해서도 빚쟁이가 되어야 한다. 이 농사 불가능의 구조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서는 두물머리 농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운 넘치는 것은, 두물머리가 싸워온 4년 동안 많은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이 평생에 걸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또 가장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농부들과 두물머리의 친구들. 그동안 두물머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왔던 싸움과 사건들의 잔잔한 파장들은 우리 삶에 고스란히 남았고, 그 파장의 잉여로서 새로운 유기농장과 그를 둘러싼 불온한 관계들이 예고된다.
900여일 넘게 두물머리를 지켜며 4대강 막개발을 막아낸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가 9월 3일(월) 3시 구백서른번째 미사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마지막 미사. 기도하고 안아주는 자리에 함께해요.
덧붙임
김모야 님은 두물머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