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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거리는 사랑방] 당사자 - 돋움 - 활동가

<편집인 주> 20주년을 맞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다시 변혁을 꿈꾸는 인권운동의 질문을 담아 책자를 발간했다. <인권오름>은 그 중 '도란거리다' 장에 실린 글의 일부를 몇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일상, 관계, 활동 속에서 어제의 고백이기도 하고 내일의 다짐이기도 한 사랑방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인권오름> 독자들에게도 든든한 기운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당사자였다. 인권 문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문제들을 난 항상 가까이에서 겪고 살았다. 따지고 보면 당사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게 구호의 성격으로 곧잘 쓰이는 말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나는, 겪고 살았다고 썼듯이 1차원적인 당사자에 가깝다. 한 번씩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인권’이란 말과 만났을 때 그것에 동참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게 한 어떤 감수성을. 그냥 스쳐 가지 못하게 한 어떤 힘을.

가족, 성, 노동, 사랑 등 인권으로 호명할 수 있는 몇몇 대상들을 거칠게 구분해본다. 당사자로서의 경험이 있단 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당사자라는 말을 생각했을 때 그걸 슬픔이나 아픔이라는 감정만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 아니듯이, 그래선 안 되듯이) 나는 시절마다 다른 정체성으로 인권 문제 안에 있었다. 잘 훈련돼 온 감수성이나 어느 날의 득달같은 깨달음으로 인권을 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경험으로 가능하였던 이해심, 그래 그러니까 그 마음, 이 있었기에 인권을 스치듯 지나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알 것 같아, 라는 마음이 붙들리는 것들. 그래서 싫어지는,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말해버리는 편견, 여리고 약한 것들에 가해지는 폭력, 옆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무심함이나 이기심.

특별히 견디기 힘든 적은 없었다. 이게 당사자로서 겪은 내 경험의 정도이자 한계이기도 할 것이다. 생존이 흔들릴 만큼 위협받진 않는다는 것. 그리고 불행하지 않게 인권 문제의 당사자로 살았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사회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를 무조건 피해자화해선 안 된다는 것과 별개로, 견딜 수 없을 만큼 내몰진 않은 채 착취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에 관한 얘기다.)

다행인 건 스스로를 당사자라고 호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였던 건 ‘인권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권 활동은 내가 당사자를 넘어서 보는 데까지 도움을 주었다. 적어도 내가 겪었고 또 겪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었다. 그건 곧 삶에 대한 태도와도 관계가 있어서, 그랬기에 나는 남과 비교해서 우울해하거나 그걸 왜곡된 방식으로 벗어나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이 좋은지도 알겠다. 활동가라면 그 정도의 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혼자였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집회 참가를 사랑방을 통해 처음 접했고 그 현장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현장 노동자들의 단단한 팔뚝이 무서웠다. 찜찜한 불안을 견디며,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에 분노를 느끼는 나에게 집중했고 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을 키웠다. 일면 아버지라는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저 ‘인권’이 아니었다. 여성주의가 있는 인권이었다. 사랑방에는 이걸 지향하려는 마음과 노력이 있었다. 여성주의를 염두에 두는 남성 활동가들의 존재 자체가 내겐 특별했다. 마냥 좋은 것들을 익히고 따라 했다. 일면 어머니라는 여성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들이 곧 나라는 노동자, 나라는 여성을 의식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사랑방 반성폭력위원회 위원을 하면서는 당사자가 아닌 다른 위치에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볼 기회를 가졌다. 덕분에, 관련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나의 위치에 머물러 나 자신을 쉽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단락을 쓰면서도 내내 가족 환원주의를 밀어내려 노력한다. 이런 예민함도 사랑방에서 굴러다니다가 배인 생각의 습관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 자신으로 침잠해 들어가며 무겁고 진지해지기만 하기보다, 사랑방 활동은 무엇보다 재밌었다. 어울려 집회 현장을 누비는 일, 하나의 사안에 대해 예민하게 반박하는 토론을 지켜보는 일,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서 언어와 생각을 다듬어보는 일, 현장에서 다른 당사자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는 일, 내 능력을 그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는 데 미약하게나마 보태보는 일. 이 모든 경험은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는 재미가 있었고, 나라는 사람 자체를 더 나아지게 한다는 보람을 느끼게 하였다.

사실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호명하는 건 아직도 많이 망설여진다. 자원 봉사가 아닌 자원 활동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는 사랑방에 끌렸고 그런 정신이 좋아 햇수로만 8년 가까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당사자라는 말을 제대로 익혔고 권리라는 말을 단단하게 체험했으며 그 권리라는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고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활동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고 활동가라고 칭하기 쑥스럽다고 말하는 건 좀 무책임한 거라는 생각도 든다. 활동하는 물리적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죄책감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인권과 멀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노동자로 살아야 할 조건에 있는 내가 인권 활동을 여전히 옆에 두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고 행운이다. 아니 평생 노동자로 살아야 할 조건이라는 말은 좀 엄살이고 거짓말 같다. 인권 활동 역시 활동이자 노동이니까. 그리고 나는 인권 활동가로서의 삶에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다. 고쳐 말하면 인권을 전업으로 삼지 않고 내 일을 하면서도 늘 그것을 염두에 둘 수 있고 살다가 한 번씩 내 감수성이나 실천이 얼마나 무디어졌는지 혹은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가면서 닥칠 문제들을 더욱 잘 처리하게 된 것은 아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더 능숙해진 것도 아니다. 무엇이 문제였고 그런 것에 대항할 수 있는 내 나름의 언어를 가졌다고 해도, 비슷한 문제들 앞에서 난 여전히 걸려 넘어지고 싸우지 못하며 고백하지 못한다. 아는 것과 현실의 괴리, 그 사이의 팽팽한 긴장의 선이 나를 지탱하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일이 그리 만만치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는 게 쉽다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것 같다.

당사자와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잘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겪을 당사자의 운명과 내가 기꺼이 선택해야 할 당사자의 생을 잘 견디며,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활동가로서 배운 걸 실천하려는 의식을 잃지 않고. 어쨌거나 잘 살고 싶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면서. 그 나아지게 하는 기준들을 놓치지 않고 옆에 두면서.
덧붙임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