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UN에서는 고문을 ‘공무원이나 그 밖의 공무 수행자가 직접 행하거나, 교사, 동의, 묵인한 아래, 어떤 개인이나 제 3자에게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연루 혐의가 있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협박, 강요할 목적으로, 또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고문으로부터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우리는 UN에서 정의한 고문의 목적에 더하는, 고문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고문은 한 개인의 인격과 정체성을 파괴하고, 그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에 가장 중요한 목적이 놓입니다. 많은 고문 생존자들은 신체적 고문보다는, 자신의 인간됨과 삶의 의미를 그리고 타인과의 연결성을 파괴당한 순간이 가장 잔혹했음을 증언합니다.
고문 생존자에게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을 야기하는 경험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잔혹할 듯한 신체적 고통이 가장 주된 요인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신체적인 가혹 행위와 물리적 폭력은 가장 극단적인 고통을 야기하는 고문의 속성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고문 생존자의 고통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 고문보다 더 오랜 고통을 남기는 가해는 인간으로서의 한 개인의 존엄을 손상시키고, 한 개인을 그의 신념과 삶의 의미로부터, 그리고 타인과 세상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시키는 파괴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잔혹한, 비인도적, 굴욕적인 대우와 처벌을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 행위 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생명체로서 우리 인간은 신체적 죽음을 가장 무섭게 생각하지만, 고문 생존자들은 ‘자기의 죽음’이라는 상징적인 죽음이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사람에게 신체의 죽음보다 영혼의 죽음이 더 치명적인 듯 합니다. 자기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서는 가해자가 경계하는 실천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가해자가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밥먹기, 잠자기, 배변 활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마음대로 속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씻을 수 없어서 위생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소음, 어둠, 빛,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한다는 것, 자신의 몸을 타인이 마음대로 침해하는 등 물리적 존재로서의 자기에 직면하는 데에서 느껴지는 비참함. 계속되는 정신적 소모에서 비롯된 굴복과 그 굴복에 대한 자기 비난, 쓸모없고 위험하므로 없어져야 할 존재라는 계속되는 언어적 가해와 그로 인한 모멸감,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마치 가해자가 된 듯한 죄책감과 수치심. 그 안에서 많은 생존자들은 차라리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 없게 통제하는 환경에서 오히려 더 깊은 절망감을 체험했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비-신체적 고문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신체적 고문이 남기는 깊은 고통에 대해 인식하고, 이것을 감시할 필요성이 높습니다. 이는 위험성에 대한 인식 없이 가장 흔히 남용되는 ‘고문’이기 때문입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성에 대한 침해는 그것이 물리적 외상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용되고 있지만, 소음, 빛, 추위 혹은 더위 등 극심한 감각에 사람을 방치하고 통제하는 것,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멸시와 증오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고문입니다. 또 무엇이 행해졌습니까? 수사 과정에서 일어나는 협박과 무시, 정보나 시간을 제공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 일상에 침투하여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과 죄책감을 조장하는 것, 낙인과 오해를 조장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수치심을 주는 것은 고문입니다. 또 무엇이 행해졌습니까?
또 무엇이 행해졌습니까? 이제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고문 장면이 나오면 째려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에서 고문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같이 찾고 문제 제기해 봅시다. 고문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고통스럽고 참혹한 행위입니다.
덧붙임
최현정 님은 '트라우마 센터 사람마음'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