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책언니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오랜만에 강화도로 가는 빨간 버스를 타고, 창 밖 풍경을 구경하자니 그날따라 맑은 하늘 덕분에 설레는 기분마저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 공간에 도착! 쩡열이 미리 와계신 참가자의 엄마 분께 애들이 도착하거든 초대장이 든 봉투를 나눠주십사 부탁드리는 동안, 나는 수업할 방문 앞에 코팅된 A4용지를 붙였다. 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마음 읽어주는 언니의 비밀 찻집'. 우리의 새로운 간판이다. 부엌에서 주전자를 찾아 차를 끓여놓기가 무섭게 애들이 속속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초대장을 손에 든 여자애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말로 비밀 찻집을 처음 찾아들어온 손님들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이다.
“안녕, 얘들아~! 우리 이제 책언니 잠시 휴업하고, 마음 읽어주는 언니로 직종 바꿨어~” 쩡열의 유쾌한 소개에 여자애들이 비실비실 웃으면서 자리에 앉는다. 쩡열은 카페 주인, 나는 이 카페에 붙어사는 귀신 겸 종업원인 냥 코스프레를 했더니, 애들도 자연스럽게 제법 손님 흉내를 낸다. 사실 나는 애들이 들어오면 놀래켜 주겠답시고 기다란 커튼 뒤에 숨어있었다. 여자애들이 너는 왜 거기서 나오냐고 하기에 여기 붙어사는 귀신이라고 말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책언니 4년차, 이제는 헛소리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가 주방에서 찻잔을 쟁반에 담아 서빙 하듯 들고 오니, 두 사람이 그걸 놓치지 않고 너는 귀신인데 물건을 어떻게 만지냐고 태클을 걸어온다. 예리한 아이들 같으니라고. 내가 흠칫한 사이 편의점에 군것질 하러 가느라 감감무소식이던 남자애들까지 속속 도서관에 도착했다. 비밀찻집이 금세 손님들로 가득 찼다.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었다.
전업을 결심하게 된 사연
그렇다. 우리는 더 이상 책언니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를 마음 읽어주는 언니라 불러다오! 전업을 결심하게 된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4학년 책언니 재개를 앞두고 쩡열과 둘이 회의를 했다. 이제 4학년에 접어든 이 친구들과 계속 그림책으로 수업을 하는 것은 이제 아닌 것 같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둘 다 느끼고 있었다. 애들은 나날이 커가고 변하고 있는데, 책언니 수업은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은 기분…. 책언니가 어떤 면에서 분명히 막혀있는 듯, 정체되어있음을 느끼는데 이걸 덮어두고 이미 정착된 안전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사실은 예전부터 찜찜했던 것 같다.
아무리 관계를 강조한다고 해도 우리가 수업을 표방하는 이상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고,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애들 각자가 가진 상황이나 감정들을 잘 챙겨보지 못 하고 지나치게 되기가 쉽다. 애들이 가끔씩 우리 손목을 이끌고 외진 데로 가서 ‘내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고 말해줬던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치 않다. 우리가 하는 ‘수업’이라는 형식 자체가 일정한 거리를 만든다. 시시콜콜한 수다보다 먼저 이뤄져야 할 정해진 얘깃거리가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암암리에 알고 있기 때문에 애들도 아무 얘기나 막 꺼내지는 않는다. 게임하게 우리 핸드폰을 달라고 하면 했지. 아니, 그냥 우리랑 쫌 더 깊은 대화를 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는 걸지도. 그건 갓 초등학교 저학년을 넘어온 나이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가 보였던 태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앞으로도 이전과 같은 책언니 수업을 비슷하게 해나간다고 해보자. 5학년, 6학년, 중1…. 주변 여건이 허락되어 만남이 계속된다면 쌓인 세월만큼의 정이 생기고 관계가 두터워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관계라는 게 가만히 손 놓고 시간의 힘에만 기댄다고 알아서 튼튼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애들이 우리랑 만나는 동안 혹시나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힘든 일이 있었고 주위에 쉽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생겼다고 할 때, 이를 털어놓고 의지할 사람으로 책언니들을 찾을까? 선뜻 우리를 찾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어쩐지 쉽게 ‘yes’를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꼭 친밀하고 깊은 관계가 되는 게 필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동안 책언니에서 강좌를 통해 나누고자 했던 메시지들은 말보다는 태도와 관계를 통해서 직접 겪어보아야 익힐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렇게 살아봤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들이 있다. 나이의 위계를 넘어 친구 되기, ‘같이 살아간다’는 삶의 지향, 우리를 끊임없이 배타적이고 경쟁적인 몸으로 만들어내는 사회적 힘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 일상적으로 서로 나눌 수 있는 얘기에 일정한 선과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는 애들이 가진 방어막을 넘어 이와 같은 고민들에 마음이 움직이도록 설득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직접 그렇게 살아봐야 익힐 수 있는 것
우리가 아무리 좋은 그림책을 들고 가서 수업을 한다고 해도 설득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차별이나 약자 혐오와 같은 것들. 그동안 수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비슷한 주제를 꽤 다뤘던 편인데, 매번 아무리 걸러내려 해도 도덕 교과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해 책언니에 한두 명씩 새로운 친구들이 오는데, 그 중 한 명은 애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친구였다. 아는 척 하기 좋아하고, 울보인데다 맘에 안 들면 선생님한테 이르기 일쑤라면서 애들이 같이 놀기 싫어했다. 작년 2학기 책언니 수업 동안 다른 애들이랑 그 애가 싸우는 일들이 많았고, 싸움을 중재하다가 수업 2시간을 고스란히 쓴 적도 몇 번 있다. 결국에는 다음 학기에서 그 친구가 빠지게 되었다. 책언니라는 공간 안에서라도 다른 애들이 이 친구를 받아들일 만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어야 했는데, 이걸 못 해낸 게 마음 한 켠에 계속 걸렸다.
물론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반 왕따와 같이 놀기 싫다하는 애들의 솔직하고도 견고한 배타성은 도덕으로는 잘 안 움직인다. 애들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보여주는 것들이 죄다 그런 식이라서 그렇다. 잘난 것과 못난 것을 가르고 후자를 혐오하는 감각은 이 세계에서 너무나 지배적이다. 교육이 이러한 감각에 대항하기에는 이성을 추구하는 교육 자체가 이미 덜 똑똑하고 더 서툰 아이들에게 배타적이다. 애들은 주변 어른들이 자신들한테 하던 감각대로, 자신이 친구들 사이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애써온 방식대로, 일상의 흔한 관성으로 앞으로도 더 약하고 못난 애들을 ‘우리’ 바깥으로 밀어낼 것이다. 이게 학교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기본 값이다.그렇다면 변수가 되어줄만한 바깥의 공간과 관계성이 필요하다. 이런 ‘바깥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동안 부딪혔던 벽을 깨보고 싶었던 마음에 ‘마음 읽어주는 언니의 비밀찻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16주 동안 나, 공감, 관계 같은 주제들에 아예 집중해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끈끈하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들을 최대한 만들어보려 한다. 책언니들이랑도 더 많은 걸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이 모임 안에 있는 애들끼리도 서로의 마음을 더 잘 들어주는 친구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엠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