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사랑방 활동가들이 모여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을 읽었다. 300쪽이 넘는 분량이라 서로 나눠 맡은 부분을 요약해오기로 했다. 분량도 많았지만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룬 일종의 보고서 같은 것이기도 해서 요약한 내용을 같이 살피는 데에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결정문의 구조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절차’에 대해 설명한 후 ‘2.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와 정당해산심판의 사유’를 검토한다. 여기에서 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이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분명히 확인한다. 그러나 이에 이어 ‘3.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다루며 남북한의 대립 상황에서 현실상황에 대해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 후 본격적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해 다루기 시작한다.
‘4.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흐름과 피청구인의 창당 및 분당 과정 등’은 한국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분당, 통합진보당의 창당 등을 여러 자료를 통해 서술했다. 이에 이어 헌법재판소가 문제 삼는 ‘5. 피청구인의 목적과 활동’이 나온다.
<가. 피청구인의 강령상 목적/ 나. 진보적 민주주의의 강령 도입 경위/ 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성향/ 라. 피청구인의 진보적 민주주의/ 마. 북한식 사회주의 및 대남혁명전략과의 비교/ 바. 이석기 등의 내란관련 사건/ 사. 기타 사건/아.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 요약하자면,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성향을 보건대 통합진보당의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는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결정의 문제로 지적되는 '주도세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법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고 입증되지도 않는데, '주도세력'이 있고 '숨은 목적'이 있다고 헌법재판소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김이수 재판관도 반대 의견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이석기 등의 내란관련 사건'은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 RO의 실체가 없고 내란을 음모하지 않았다고 결론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가 서둘러 해산 결정을 한 배경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결론을 위한 본론
헌법재판소는 ‘6. 피청구인의 해산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이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 해산 결정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지를 따진다. “이와 같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된다면 우리 헌법의 중핵을 구성하는 내용들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 등에 비추어 피청구인의 위헌적 문제성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적 수단이 없으며, 정당해산결정으로 초래되는 불이익보다 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월등히 커서” 해산되어야 한다고 결정한다.
이어 ‘7.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를 검토하며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없”지만, “정당해산심판제도의 본질적 효력에 따라, 그리고 정당해산결정의 취지와 목적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다. ‘8. 결론’에서 헌법재판소는 자신이 내린 결정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오히려 이 결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우리의 정치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그러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헌법재판소는 ‘주도세력’의 ‘숨은 목적’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된다면’ 대한민국의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해산으로 몰아갔다. 결론에 이르기 위해 본론에서 수많은 억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배제한 것은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만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에서부터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에 이르기까지”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결정문에서 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번 결정을 '북한'에 대한 추종의 문제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식 사회주의'는 헌법재판소가 이용한 수단일 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토론이 불가능한 대한민국의 조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일방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정의내릴 수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제한했다.
다시, 민주주의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는 놀라운 구절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가난한 자들이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자들이 수적 우세를 내세워 자신들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체제로 통용되어 왔다.” “이처럼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민주주의”를 헌법재판소는 비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는 가난하거나 교육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표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온 사람들이 인권을 외치며 만들어온 역사다. 세금을 낼 수 있는 부유한 자들에게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려는 지배세력에 맞서 싸워온 성과가 지금 겨우 다다른, 그러나 다시 흔들리고 있는 민주주의다. 인종, 성별 등의 정체성을 이유로 권리의 박탈 상태로 내몰렸던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싸워서 만들어온 것이 민주주의다.
어쩌면 대의제나 삼권분립과 같은 형식에 의해 오히려 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되고,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권리를 빼앗기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도 하는 지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더욱 중요한 신호로 읽혀야 한다. 인권을 박탈당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수적 우세’가 점증하는 역설의 ‘정치체제’는 여전히 맞서 싸워야 할 현실이다. 법무부가 기다렸다는 듯 ‘위헌정당 해산 후속조치 철저 이행 등 국가안보 위해세력 척결’, ‘친북사이트, SNS 등을 통한 선전선동, 유언비어 유포 조기 차단’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방침을 ‘종북’의 문제로 이해하는 순간 우리의 민주주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에 대한 이해는 더욱 절실해졌다. 1월 13일 열린 긴급토론회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결정의 의미와 인권운동의 과제>에서도 이와 같은 고민들을 나눌 수 있었다. 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제안들을 행동으로 만들어가야 할 숙제를 놓치지 말고 가야 할 한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