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무실로 향하던 중, 오르막길 한켠 전봇대에 높다란 사다리를 기대놓고 올라 혼자 작업하는 인터넷 설치․수리 노동자를 보았다. 위태로워 보여서 눈을 떼기 어려웠던 그때, ‘아래에서 사다리를 잡아줄 동료가 한 명만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만 되어도 위태로움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확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은 이렇게 작은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일하다 사람이 죽는 것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포털 뉴스 목록에서 각종 산재사고 소식을 하루에만 수차례 접할 때도 있다.
지난 8월 29일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의 사망사고 소식을 접했다. 2013년 성수역에서 비슷한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고 나서 재발방지를 위해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던 상태였다. 2인 1조로 지하철 운행이 종료된 심야시간에 작업한다는 기본수칙은 그저 매뉴얼일 뿐이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서울메트로는 하청업체에, 하청업체는 사망한 노동자 개인에 책임 떠밀기를 하는 형국이다.
공장에서 뛰어내린 노동자의 생명이 위급한 상태에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구급차를 부르지 않는 회사, 이것은 그저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아니었다. 지난 7월 29일 청주 (주)에버코스에서 지게차에 노동자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회사는 동료 노동자의 신고로 출동한 구급차를 돌려보냈고 가까운 종합병원이 아닌 거리가 더 멀고 피해 노동자에게 필요한 응급조치를 취할 수 없는 사측 지정병원으로 보냈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음에도 제때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여 피해 노동자는 죽었다. 산재를 은폐하려는 의도로 인해 산재사고는 '살인사건'이 되었다.
2014년 한 해동안 13명의 하청노동자가 일하다 죽은 현대중공업, 세계 1위 조선업회사는 노동자들에겐 '죽음의 조선소'였다. 산재사고 발생시 산재보험으로 처리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보는 이익과 손해가 얼마이고, 어떤 것인지 기업은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원청과 하청업체, 지정병원이 맺은 유착 속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된 산재사고는 노동자 개인의 과실 때문인 것으로 뒤바뀌었다. 산재 은폐 시도가 부지기수에 이르는 상황인데도 현대중공업은 산재 처리를 줄였다는 실적을 인정 받아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산재보험료를 약 1000억 원 할인받았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이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가족을 잃는 슬픔을 누군가 또다시 겪지 않길 바라면서 세월호 가족들은 진상규명과 함께 안전사회 건설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탐욕에 규제완화로 장단을 맞춰줬던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다시 기업의 이윤 창출 기회로 만들어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던 정부는 주요방향으로 안전산업의 육성․발전을 내놓았다. 올 상반기 메르스 사태에서 무능함을 또 한번 증명한 정부는 위생수칙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을 대처법이라고 내놓고, 안전은 개개인이 주의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라며 국민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그런데 이런 정부의 태도는 단지 무능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닌 정부와 기업은 무한이윤추구를 최상의 가치로 두고 위험사회를 지속시키려고 한다. 이런 적극적 의지 속에서 안전은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위험사회에서 가속되는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안전을 내세운 상품을 구매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고와 사건들을 통해 확인했듯, 정부와 기업은 위험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서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을 것을 강요 당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위험을 매개로 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때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전환될 수 있다.
지난 주, 세월호 참사 500일을 앞두고 4.16연대 ‘안전사회위원회’의 출범식이 있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위험을 방치하면서 사고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도 처벌받지 않는 기업에 분명한 책임과 의무를 묻기 위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활동을 주요하게 해나갈 예정이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바람은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비춰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위험을 감수하며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일하다 누군가 죽는 일에 무감각해진 신경을 우린 어떻게 깨울 것인지 질문하고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고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며, 또한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고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