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담은 지난 10월 몹시 바빴다. 작년 노동법 강좌로 열었던 담벼락 교실을 올해는 좀 더 다양한 주제와 시도를 하며 나름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10월 1일, 15일, 22일, 31일에 걸쳐 4차례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목요일마다 점심선전전과 저녁선전전 사이 꿀맛 같은 쉬는 시간을 보내며 나름 행복했었는데, 10월에는 선전전 앞뒤로 이것저것 챙기고 정리하느라 슉슉 시간이 지나갔다.
이번 담벼락 교실은 1강-작업장에서의 안전과 건강, 2강-노동시장구조개혁이 미치는 영향, 3강-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4강-임금체불과 산재발생하면 ‘이렇게 해보자’로 기획했다. 작년 토요일마다 실내 공간에서 열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1~3강까지는 거리에서 진행하고, 4강만 실내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실내에서 강의 방식으로 진행할 때 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시간을 내어 직접 찾아올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기에. 그래서 변수도 많고 더 어렵고 난감할 수 있어도 공단 노동자들과 더 접촉지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거리에서 진행하는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동안 선전전이나 문화제 등 월담 일정들은 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서 가뭄이 심각하다는 얘기에 단비 소식을 기다리긴 했지만, 마침 첫 담벼락 교실을 하는 날 비가 왔다. 문화제 때마다 늘 노래공연으로 월담과 함께 했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 푸우씨, 담벼락 교실 강사로 먼 길을 기꺼이 달려와 줬건만 노동안전과 관련하여 준비한 피켓만 겨우 설치하고 비바람 속에서 안쓰럽게도 소식지를 배포하며 선전전을 함께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2강과 3강은 낮에는 점심식사를 위해 공단 노동자들이 많이 찾는 식당 부근에서, 저녁에는 퇴근하거나 야근으로 출근하느라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안산역 광장에서 진행했다.
2강의 내용은 공익광고부터 각종 매체를 통한 물량공세로 정부가 밀고 있는 노동시장구조개혁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정부가 그럴싸한 말을 붙이면서 좋게 포장한 각종 정책들이 ‘쉬운 해고’ ‘낮은 임금’ ‘평생 비정규직’ ‘더욱 심각한 위계와 차별’이라는 것을 강사로 나선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김혜진 씨가 꼼꼼히 짚으며 이야기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개혁’이란다. 노사정 합의했다면서 이제 관련법 개정만 하면 된다는 식인데 정부가 걸고 있는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는 우선 일하는 사람들, 앞으로 일해서 먹고살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게 중요했다. 바쁘게 오가는 걸음들 속에서 작더라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함께 말하고자 하는 분들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을’들의 국민투표에 함께 참여해주셨다.
3강은 지금 월담에서 심층면접조사를 진행 중인 ‘공단 내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다뤘다. 관련 기획과 준비는 사랑방에서 했다. 지난 상반기 전국공단노동환경실태조사 결과 공단 노동자의 절반 가까운 수가 회사에서 인권침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인권침해 유형으로 화장실 이용을 통제하거나 CCTV 설치를 통해 감시하고 폭언이나 폭력 등을 행하기도 한다는 사례들이 있었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우리 회사는 어떤지 스티커 설문과 함께 없어져야 할 항목들에 풍선을 달아 ‘송곳’으로 터뜨리도록 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송곳’에서는 자발적으로 퇴사하게끔 하려고 직원들을 괴롭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회사의 사정에 따라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괴롭힘, 인권침해들이 나타난다. 인권침해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구조적 차원의 문제임을 심층면접조사 등의 활동을 통해 이야기해나갈 계획이다)
4강은 문화제 때 함께 진행하는 노동상담부스를 계속 함께해온 최은실 노무사가 임금체불과 산재발생 상황에 대한 대응 실전편으로 준비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인 양 춥기도 하고, 사전에 참여 의사를 밝힌 분들이 사정이 생겨 못 온다고 연락이 오면서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오셨다! 지난여름 선전전을 하다가 만났던 분이었다. 월담 소식지를 유심히 보았던,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함께 할 수 있어도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던 분이었는데, 평일은 일이 늦게 끝나 참여를 못 하다가 주말 저녁에 진행하는 거라 기쁜 마음으로 오셨다고 했다. 임금, 산재 관련 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 뒤 직접 임금체불 상황에서, 산재발생 상황에서 어떤 절차들을 거치고 필요한 서식을 어떻게 작성하면 되는지 모둠을 만들어 직접 해보았다. 이 자리를 통해 만나게 될 사람들과 같이 나눠 먹고 싶어서 챙겨왔다는 감말랭이를 감사하게, 맛있게 먹으면서 소박한 뒤풀이를 끝으로 담벼락 교실을 마쳤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월담은 작년과 올해 여러 시도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가고 있다. 식당을, 역 앞을 오가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홀로만 정지화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밥을 빨리 먹고 조금이라도 쉬는 게 남는 것이고, 서둘러 퇴근해 몸을 누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것이며, 야근하러 가는 길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한 피로감을 갖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당연할 것 같다. 이렇게 고단한 노동의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그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싶게 할지 고민스럽다.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월담이 하는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을 놓지 말아야겠다.
* 담벼락 교실을 비롯해 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의 구체적이고도 소소하면서도 알찬 활동소식은 아래 블로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