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2018년은 끝날 때까지 끝이 안 나려나 봅니다

어느 해나 돌아보면 다사다난하기 마련이지만 사랑방의 활동가로서 2018년은 정말 일이 쏟아지는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조직이 재정비를 거치면서 1, 2월을 지나보내고 나니 어느새 남은 상임활동가는 셋뿐이었습니다. 매주 진행하는 상임활동가회의를 셋이 모여서 진행하는 어색한 상황. 한 활동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해는 아프지도 말자.” 약간 무서웠지만 결의를 다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지요. 셋이서 하나씩 활동을 맡고, 돌아가면서 글을 쓰고, 조직업무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2018년은 시작되었습니다.

 

셋이서만 활동한 기간이 길진 않았습니다. 새로운 활동가가 사랑방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죠. 넷이 되고 저희는 이사를 준비했습니다. 이사. 하하. 정말 많은 물건을 버리고, 또 버렸던 기억만 남네요. 누가 지하실 딸린 사무실을 구했는지…. 지하실 안에 있던 물건을 포함하면 옮긴 것보다 버린 게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이사는 이사인지라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다 써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이사를 마치자마자 모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인권단체가 있는지조차 모르던 시절에 모금 사업을 했으니 사랑방으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모금 사업이었는데요. 그걸 10여 년 만에 다시 한 거죠. 그것도 사랑방의 역사상 활동가가 가장 적은 시기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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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아이슬란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5분에 한 번씩 날씨가 변하는데요. 해가 쨍쨍하다가 5분 만에 비가 내리고 또 5분이 지나면 길이 안 보이도록 눈보라가 치고 다시 해가 뜨고 정말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날씨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면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방의 이사와 모금은 마치 아이슬란드 날씨 같았습니다. 짐 정리를 하다가, 회의하다가, 글을 쓰다가, 다시 포장을 하고.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면서도 손은 멈출 수 없던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후원인 여러분과 주변에 사랑방을 아껴주시는 분들의 애정 덕분에 이사도, 모금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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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와 모금을 마치고 나니 상임활동가 넷도 부족하구나 싶을 때 활동가가 한 명 더 늘었습니다. 3인으로 시작한 2018년이 하반기가 되니 어느덧 5인 체제가 되어있습니다. 내부 정비는 어느 정도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 숨 좀 쉬어볼까~? 하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12월은 세계인권선언일이 있고 마침 올해는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인권운동더하기에서 주관하는 세계인권선언 70년 기념 연속토론회, 플래시몹, 포럼 등 다양한 행사 준비를 함께 하고 참여하니 벌써 연말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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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만 빼면 여느 해와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났다면 저는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쏟아진 벼락같은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죠.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날아온 소식인데요. 내용은 방통위로 2300만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도, 금액도 너무 예상치 못해서였을까요. 자칫 편지가 잘못 왔나보다 하고 버릴 뻔했다니까요.

 

꼼꼼하게 읽어보니 2013년도에 진행한 행정소송에서 사랑방이 패소했으니 변호사비용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북한과 관련된 내용을 누군가 게시했고, 이 게시물이 국가보안법 위반이기 때문에 지우라는 국가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방은 불복했습니다. 국가가 자유게시판을 검열하는 것도, 북한과 관련만 있으면 국가보안법으로 옥죄는 것에도 반대하기 때문에 게시판을 지우지 않고 소송을 진행한 것이죠. 하지만 결국 패소했고 게시물은 결국 지워졌죠. 그렇게 사건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패소 비용을 내놓으란 편지가 도착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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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권도 바뀌고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인 줄 알았던 국가보안법은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활동을 좀 잘해보겠다고 모금한 돈도 국가보안법이란 칼을 든 국가기관에 홀라당 빼앗기게 생긴 꼴이었죠. 저희는 이번에도 불복했습니다. 국가보안법도 이제는 사라져야 하고 공익을 위해 제기한 소송에 국가기관이 이런 식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요. 덕분에 1심에서 청구된 금액이 깎여 78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되었습니다.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저희에게 그 돈도 여전히 적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다시 항소해서 2심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같은 판단을 내리더군요. 지금은 3심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과만 기다릴 수 없어 저희는 의견서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금도 다시 시작했고요.

 

3심의 결과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계인권선언 70주년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국가보안법 제정 70년이라는 숫자가 겹쳐 보이더라고요.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라고 하지만 또 그날그날을 지내다 보니 내 자리에서 하고 있는 활동, 그저 우리 조직 열심히 꾸려나가는 문제만 집중하게 되기 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날아든 편지 한 장이 눈앞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것이죠. 내가 서 있는 위치가 결국 인권운동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자리와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자각시키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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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길 하다 여기까지 왔냐고요? 네. 맞습니다. 저희가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모금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 해에 모금사업을 두 번씩 하는 일은 돈을 모으는 입장에서도, 돈을 모아주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도 반칙이지만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네요. 염치없게 꼭 모금에 참여해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하는 마음으로 주변에 인권운동사랑방이 어떤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지 관심 한 번 더 가져주시고 주변에도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활동가의 편지는 이쯤에서 마칩니다. 모두 모두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