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 2009년 10월 14일
1. '탈북자'는 누구인가.
시대의 변화와 탈북의 동기에 따라 탈북자1)에 대한 정의도 부르는 용어도 변천과정을 겪었다.
1세대 탈북자는 분단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대량탈북이 있기 전까지의 탈북자로 과거 귀순용사 등으로 불리며 ‘사선을 넘어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탈북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남북 간 첨예한 대립구도 속에서 체제 우월성을 입증하는 상징에 희소가치까지 더해져 특별대우를 받았다.
2세대 탈북자는 북한의 1990년대 중반 극심한 식량난인 ‘고난의 행군’ 때부터 식량난이 진정되어 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주로 경제적 동기로 탈북한 사람들로, 북한 이외의 지역에 머무는 재외탈북자와 남한으로 입국한 새터민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남한에서 탈북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정부는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하였고, 탈북자들의 국내 정착 교육시설로 1999년 7월 하나원을 설립하였다.
3세대 탈북자는 2000년대 초반에서 현재까지의 탈북자로, 현대판 이산가족인 탈북자가 탈북브로커를 통해 북에 남은 가족과의 결합을 위한 탈북,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과 더 나은 삶을 위한 탈북, 2000년대 초 기획탈북 사건으로 신변위협을 받은 재중지역의 탈북자들이 강제송환의 위험을 피해서 남한으로 온 탈북 등 그 동기가 다양한 그룹이다.
4세대 탈북자는 남한에 정착하여 남한 국적을 취득한 후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서 난민신청을 하여 정착하거나, 탈북 하여 제3국에 있다가 한국을 최종 정착지로 선택하지 않고 다시 미국이나 유럽 등 제3국을 선택하여 망명하는 형태의 탈북자이다.
1, 2, 3, 4세대 탈북 유형은 시기별 빈도의 차이일 뿐 복합적으로 함께 현재진행형이다.
2. 정체성의 문제 -“나는 북한인인가 남한인인가”
남북한이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하였다. 만약에 남북한이 상대팀으로 만나 경기를 한다면 탈북자들은 누굴 응원할까.
“탈북자, ‘21세기 이념의 유목민’, ‘떠돌이’, ‘탈북투사’...” 그들의 언어로 표현된 정체성의 단면이다. 그들은 북에서는 배신자, 남에서는 이방인으로, 분단국가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의 58.4%가 자신을 남한이 아닌 북한 사람으로 여기는 반면 남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6.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설문조사(연합뉴스, 2009. 7. 3. 기사)는 국내정착 탈북자들 사이의 정체성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식량난이라는 비정치적 탈북동기를 가진 탈북자가 대부분인 현실과 ‘조선민족제일주의, 내 고향, 내 조국’을 강조해 온 북한의 사상정책,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 북에 남아있는 가족 등으로 인해 ‘북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더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지나온 ‘조국’을 부정해야 살 수 있는 현실
‘북한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탈북자들이 다수인 현실 속에서도, 탈북자 단체, 북한인권단체를 통해서 북한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고, 이러한 증언들은 남한의 북한에 대한 담론의 근거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증언’을 이용하는 주체와 몸값을 높이려는 탈북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과장되고 거짓된 증언이 북한의 현실 정보처럼 가공되고 중요 정책에 반영되기도 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7인의 탈북자’ 중 한사람인 김운철을 사칭한 박모씨 사건에서 보듯이 국내 한 북한인권단체에 의해 이 가짜 증언이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되어 북한인권 국제사회 이슈화에 영향을 끼쳤고(조선일보, 2001. 7. 16. 기사), 이모씨의 미국 의회에서의 북한 기독교인 생체실험 증언은 탈북자들조차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거짓과 과장된 증언이지만 이 증언은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게 된 계기로 작용하였다.(시민의 신문, 2005. 3. 13. 기사) 이밖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의 미국 정부에 의한 망명 인정으로 이슈가 된 마모씨 사건도 ‘북한인권단체’의 활동가조차 주민등록말소 등이 한국의 현실상 내부적으로 망명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연합뉴스, 2006. 4. 16. 기사)하여 탈북자 증언의 논란은 한층 가열되었다. 또한 대형교회 등에서 탈북자 간증으로 증언되는 인육먹기, 생체실험, 심지어 5.18 민주화운동에서 북한 특수부대가 있었다는 ‘자유북한군연합’의 주장(뉴시스, 2006. 12. 20. 기사), 북한 장애아 생화학 실험 동원 같은 최근 증언(조선닷컴, 2009. 7. 27.기사)등 증언이 선정적이고 한층 강도가 세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검증절차가 없는 가운데 확산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여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일부 탈북자들의 이런 행동들은 전체 탈북자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면서 탈북자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4. 남한에서의 삶
국내 정착한 전체 탈북자 수는 1만6천354명으로 늘었다.(2009년 7월 현재) 탈북자들은 한국 입국, 대성공사 등에서 합동신문을 거친 후 보호결정을 받게 되면 하나원에서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거주지 임대아파트를 배정받고 정착금을 받게 된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생계급여를 받고 의료보호 혜택을 받는다. 초기의 보호위주의 정책에서 최근에는 자립 정책으로 전환하여 취업지원제도를 강화하고 사업주에게는 고용지원금을 주고 있다.
이런 정부의 정착지원 제도에도 다른 체제에 살다온 탈북자가 자본주의 한국사회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을 뿐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온 이들은 부적응과 함께 남한사회의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가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북에서의 삶이 남한에서의 삶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북의 고위층이었던 사람은 남한에서 정보제공의 대가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도 하고 전문직 종사자였던 사람들도 남한에서 노력해서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한사회에서 “높은 학력· 영어 실력= 좋은 직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탈북자의 고용현실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탈북과정에서의 학력공백, 북한과 다른 남한 교육과정으로 남한에서의 학교생활은 적응하기 쉽지 않아 자퇴를 하는 경우가 많고, 낮은 학력, 영어의 벽 등이 취업의 벽으로 이어져 생활고 등으로 인해 부적응의 악순환 구조가 발생한다. 서울 강서·노원·양천구 등에 살고 있는 탈북자 1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응답이 81.5%나 됐다. 당연히 소득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어 자본주의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는 게 쉽지 않다.(한겨레, 2009. 7. 8. 기사)
정서적으로 북한의 가부장제 속에서 살아온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 부부간에 가치관의 대립을 겪으면서 이혼을 하기도 하고, 탈북과정의 상처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이를 치료하지 못하고 남한사회에서의 부적응과 결합하여 자살하기도 한다. 또한 다수의 탈북자는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신이산가족이 되는데, 이들 가족이 다시 결합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하다. 남한의 탈북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가족을 탈북 시키거나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등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고, 이러한 상황은 정착과정의 어려움으로 작용한다.(연합뉴스, 2009. 7. 7. 기사)
5. 다시 떠나는 자들
남한에서의 삶이 탈북 당시 남한에 대해 보고 들었거나 혹은 자신이 꿈꿨던 것과 다른 삶이 이어지고 전문 브로커들과 먼저 망명한 탈북자들의 유혹 속에서 오래 정착한 탈북자들 사이에 남한 정착과정을 숨기고 유럽 등 제3국으로 망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간단한 망명절차 때문에 조선족이 탈북자가 아님에도 탈북자로 위장하여 유럽으로 망명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2)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북한 출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에 난민신청을 한 사례가 2007년 들어서만 245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연합뉴스, 2007. 12. 24.기사)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국내에 정착해 각종 지원 혜택을 누린 뒤 갓 북한을 빠져나온 것으로 위장, 미국· 영국 등에 망명을 신청하는 탈북자에 대해 정착금 감액 및 형사처벌을 추진하기로 했다.(연합뉴스, 2008. 8. 26. 기사)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여 정착하기까지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정글’에 홀로 살아남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또 다른 인권침해 일 수 있다. 이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남한 사회의 포용력은 어느 정도였는지,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없었는지, 탈북자들에 대한 정착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정부와 민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떠했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한 탈북자들도, 제3국에 ‘망명’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사례를 돌아보고, 자신의 제3국 ‘망명’으로 인해 한국에 들어오는 후배 탈북자들이 ‘망명자들의 선택’에 의해 정착제도 상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지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망명자’들이 늘어날수록 남한 국민의 세금이 정착제도를 뒷받침하는 현실 속에서 국민감정을 고려하여 정부정책은 탈북자들에게 불리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 그들이 먼저 온 미래가 되기 위해서
지난 10년간 남북관계는 경제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남북한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서로 적대적 의식을 가졌던 남북한 국민사이의 의식변화가 남북관계 개선 성과중 하나이다. 또 하나 탈북자의 등장은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남한 국민에게 현재 변화해 가는 북한을 간접적으로 나마 알게 하는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는 악화되었고 남북한이 힘들게 쌓아왔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다시 불신과 적대관계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는 탈북자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탈북자의 37.3%는 남북관계 악화가 자신들에 대한 남한 주민들의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연합뉴스 09.7.3.기사)
탈북자는 남한에 먼저 온 미래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래가 되기 위해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탈북자 자신의 변화이다. 탈북자들은 반북이데올로기를 앞장서서 생산해왔는데, 그들이 북한에서 살아왔던 삶과 힘들었던 탈북과정을 이해하더라도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반북 위주의 담론을 형성하고 있어서, 한반도 평화과정과 통일을 대비하는 균형적인 담론형성이 필요해 보인다. 탈북자단체도 북한의 붕괴를 주장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보다 이제 남한 사회의 정착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통해 탈북자의 정착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또한 대북지원에 있어 ‘퍼주기’ 담론으로 같은 민족인 북한인민을 외면하지 말고 대북지원에 있어서 전향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남한의 보수세력은 더 이상 탈북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의 보수세력과 북한인권단체는 탈북자를 증언대에 세우면서 북한을 악마화 하고 탈북자를 대상화시켰고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과장되고 거짓된 증언을 유도하여 이용해왔다. 탈북자를 도구화, 객체화 시키는 이런 행위들은 중단해야 한다.
남한사회는 탈북자들이 탈북과정의 고통과 남한정착의 어려움 속에서 겪은 자아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심리치료와 인권감수성 교육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탈북자 정착제도의 정책적 방향을 의존에서 자립으로의 변화시켜 남한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럴 때만이 남과 북을 동시에 살아온 그들이 남북한의 조정자이자 먼저 온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탈북자’를 지칭하는 용어는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자유이주민, 북출신이주민 등 다양하지만 보편성과 대중성을 획득하여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탈북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 용어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배제하였다. 그리고 국내 거주하는 탈북자를 중심으로 사용하였다.
2) 최근 영국에서 한국 정부에 지문정보를 요청하여 한국에 정착했다가 영국으로 ‘망명’한 탈북자를 강제추방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족은 한국 국민이었다는 증거인 지문정보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탈북자들보다 손쉽게 ‘망명’할 수 있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탈북의 동기에 따라 탈북자1)에 대한 정의도 부르는 용어도 변천과정을 겪었다.
1세대 탈북자는 분단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대량탈북이 있기 전까지의 탈북자로 과거 귀순용사 등으로 불리며 ‘사선을 넘어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탈북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남북 간 첨예한 대립구도 속에서 체제 우월성을 입증하는 상징에 희소가치까지 더해져 특별대우를 받았다.
2세대 탈북자는 북한의 1990년대 중반 극심한 식량난인 ‘고난의 행군’ 때부터 식량난이 진정되어 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주로 경제적 동기로 탈북한 사람들로, 북한 이외의 지역에 머무는 재외탈북자와 남한으로 입국한 새터민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남한에서 탈북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정부는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하였고, 탈북자들의 국내 정착 교육시설로 1999년 7월 하나원을 설립하였다.
3세대 탈북자는 2000년대 초반에서 현재까지의 탈북자로, 현대판 이산가족인 탈북자가 탈북브로커를 통해 북에 남은 가족과의 결합을 위한 탈북,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과 더 나은 삶을 위한 탈북, 2000년대 초 기획탈북 사건으로 신변위협을 받은 재중지역의 탈북자들이 강제송환의 위험을 피해서 남한으로 온 탈북 등 그 동기가 다양한 그룹이다.
4세대 탈북자는 남한에 정착하여 남한 국적을 취득한 후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서 난민신청을 하여 정착하거나, 탈북 하여 제3국에 있다가 한국을 최종 정착지로 선택하지 않고 다시 미국이나 유럽 등 제3국을 선택하여 망명하는 형태의 탈북자이다.
1, 2, 3, 4세대 탈북 유형은 시기별 빈도의 차이일 뿐 복합적으로 함께 현재진행형이다.
2. 정체성의 문제 -“나는 북한인인가 남한인인가”
남북한이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하였다. 만약에 남북한이 상대팀으로 만나 경기를 한다면 탈북자들은 누굴 응원할까.
“탈북자, ‘21세기 이념의 유목민’, ‘떠돌이’, ‘탈북투사’...” 그들의 언어로 표현된 정체성의 단면이다. 그들은 북에서는 배신자, 남에서는 이방인으로, 분단국가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의 58.4%가 자신을 남한이 아닌 북한 사람으로 여기는 반면 남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6.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설문조사(연합뉴스, 2009. 7. 3. 기사)는 국내정착 탈북자들 사이의 정체성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식량난이라는 비정치적 탈북동기를 가진 탈북자가 대부분인 현실과 ‘조선민족제일주의, 내 고향, 내 조국’을 강조해 온 북한의 사상정책,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 북에 남아있는 가족 등으로 인해 ‘북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더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지나온 ‘조국’을 부정해야 살 수 있는 현실
‘북한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탈북자들이 다수인 현실 속에서도, 탈북자 단체, 북한인권단체를 통해서 북한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고, 이러한 증언들은 남한의 북한에 대한 담론의 근거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증언’을 이용하는 주체와 몸값을 높이려는 탈북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과장되고 거짓된 증언이 북한의 현실 정보처럼 가공되고 중요 정책에 반영되기도 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7인의 탈북자’ 중 한사람인 김운철을 사칭한 박모씨 사건에서 보듯이 국내 한 북한인권단체에 의해 이 가짜 증언이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되어 북한인권 국제사회 이슈화에 영향을 끼쳤고(조선일보, 2001. 7. 16. 기사), 이모씨의 미국 의회에서의 북한 기독교인 생체실험 증언은 탈북자들조차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거짓과 과장된 증언이지만 이 증언은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게 된 계기로 작용하였다.(시민의 신문, 2005. 3. 13. 기사) 이밖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의 미국 정부에 의한 망명 인정으로 이슈가 된 마모씨 사건도 ‘북한인권단체’의 활동가조차 주민등록말소 등이 한국의 현실상 내부적으로 망명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연합뉴스, 2006. 4. 16. 기사)하여 탈북자 증언의 논란은 한층 가열되었다. 또한 대형교회 등에서 탈북자 간증으로 증언되는 인육먹기, 생체실험, 심지어 5.18 민주화운동에서 북한 특수부대가 있었다는 ‘자유북한군연합’의 주장(뉴시스, 2006. 12. 20. 기사), 북한 장애아 생화학 실험 동원 같은 최근 증언(조선닷컴, 2009. 7. 27.기사)등 증언이 선정적이고 한층 강도가 세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검증절차가 없는 가운데 확산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여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일부 탈북자들의 이런 행동들은 전체 탈북자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면서 탈북자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4. 남한에서의 삶
국내 정착한 전체 탈북자 수는 1만6천354명으로 늘었다.(2009년 7월 현재) 탈북자들은 한국 입국, 대성공사 등에서 합동신문을 거친 후 보호결정을 받게 되면 하나원에서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거주지 임대아파트를 배정받고 정착금을 받게 된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생계급여를 받고 의료보호 혜택을 받는다. 초기의 보호위주의 정책에서 최근에는 자립 정책으로 전환하여 취업지원제도를 강화하고 사업주에게는 고용지원금을 주고 있다.
이런 정부의 정착지원 제도에도 다른 체제에 살다온 탈북자가 자본주의 한국사회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을 뿐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온 이들은 부적응과 함께 남한사회의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가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북에서의 삶이 남한에서의 삶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북의 고위층이었던 사람은 남한에서 정보제공의 대가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도 하고 전문직 종사자였던 사람들도 남한에서 노력해서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한사회에서 “높은 학력· 영어 실력= 좋은 직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탈북자의 고용현실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탈북과정에서의 학력공백, 북한과 다른 남한 교육과정으로 남한에서의 학교생활은 적응하기 쉽지 않아 자퇴를 하는 경우가 많고, 낮은 학력, 영어의 벽 등이 취업의 벽으로 이어져 생활고 등으로 인해 부적응의 악순환 구조가 발생한다. 서울 강서·노원·양천구 등에 살고 있는 탈북자 1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응답이 81.5%나 됐다. 당연히 소득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어 자본주의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는 게 쉽지 않다.(한겨레, 2009. 7. 8. 기사)
정서적으로 북한의 가부장제 속에서 살아온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 부부간에 가치관의 대립을 겪으면서 이혼을 하기도 하고, 탈북과정의 상처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이를 치료하지 못하고 남한사회에서의 부적응과 결합하여 자살하기도 한다. 또한 다수의 탈북자는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신이산가족이 되는데, 이들 가족이 다시 결합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하다. 남한의 탈북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가족을 탈북 시키거나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등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고, 이러한 상황은 정착과정의 어려움으로 작용한다.(연합뉴스, 2009. 7. 7. 기사)
5. 다시 떠나는 자들
남한에서의 삶이 탈북 당시 남한에 대해 보고 들었거나 혹은 자신이 꿈꿨던 것과 다른 삶이 이어지고 전문 브로커들과 먼저 망명한 탈북자들의 유혹 속에서 오래 정착한 탈북자들 사이에 남한 정착과정을 숨기고 유럽 등 제3국으로 망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간단한 망명절차 때문에 조선족이 탈북자가 아님에도 탈북자로 위장하여 유럽으로 망명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2)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북한 출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에 난민신청을 한 사례가 2007년 들어서만 245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연합뉴스, 2007. 12. 24.기사)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국내에 정착해 각종 지원 혜택을 누린 뒤 갓 북한을 빠져나온 것으로 위장, 미국· 영국 등에 망명을 신청하는 탈북자에 대해 정착금 감액 및 형사처벌을 추진하기로 했다.(연합뉴스, 2008. 8. 26. 기사)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여 정착하기까지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정글’에 홀로 살아남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또 다른 인권침해 일 수 있다. 이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남한 사회의 포용력은 어느 정도였는지,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없었는지, 탈북자들에 대한 정착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정부와 민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떠했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한 탈북자들도, 제3국에 ‘망명’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사례를 돌아보고, 자신의 제3국 ‘망명’으로 인해 한국에 들어오는 후배 탈북자들이 ‘망명자들의 선택’에 의해 정착제도 상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지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망명자’들이 늘어날수록 남한 국민의 세금이 정착제도를 뒷받침하는 현실 속에서 국민감정을 고려하여 정부정책은 탈북자들에게 불리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 그들이 먼저 온 미래가 되기 위해서
지난 10년간 남북관계는 경제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남북한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서로 적대적 의식을 가졌던 남북한 국민사이의 의식변화가 남북관계 개선 성과중 하나이다. 또 하나 탈북자의 등장은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남한 국민에게 현재 변화해 가는 북한을 간접적으로 나마 알게 하는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는 악화되었고 남북한이 힘들게 쌓아왔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다시 불신과 적대관계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는 탈북자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탈북자의 37.3%는 남북관계 악화가 자신들에 대한 남한 주민들의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연합뉴스 09.7.3.기사)
탈북자는 남한에 먼저 온 미래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래가 되기 위해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탈북자 자신의 변화이다. 탈북자들은 반북이데올로기를 앞장서서 생산해왔는데, 그들이 북한에서 살아왔던 삶과 힘들었던 탈북과정을 이해하더라도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반북 위주의 담론을 형성하고 있어서, 한반도 평화과정과 통일을 대비하는 균형적인 담론형성이 필요해 보인다. 탈북자단체도 북한의 붕괴를 주장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보다 이제 남한 사회의 정착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통해 탈북자의 정착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또한 대북지원에 있어 ‘퍼주기’ 담론으로 같은 민족인 북한인민을 외면하지 말고 대북지원에 있어서 전향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남한의 보수세력은 더 이상 탈북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의 보수세력과 북한인권단체는 탈북자를 증언대에 세우면서 북한을 악마화 하고 탈북자를 대상화시켰고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과장되고 거짓된 증언을 유도하여 이용해왔다. 탈북자를 도구화, 객체화 시키는 이런 행위들은 중단해야 한다.
남한사회는 탈북자들이 탈북과정의 고통과 남한정착의 어려움 속에서 겪은 자아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심리치료와 인권감수성 교육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탈북자 정착제도의 정책적 방향을 의존에서 자립으로의 변화시켜 남한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럴 때만이 남과 북을 동시에 살아온 그들이 남북한의 조정자이자 먼저 온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탈북자’를 지칭하는 용어는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자유이주민, 북출신이주민 등 다양하지만 보편성과 대중성을 획득하여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탈북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 용어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배제하였다. 그리고 국내 거주하는 탈북자를 중심으로 사용하였다.
2) 최근 영국에서 한국 정부에 지문정보를 요청하여 한국에 정착했다가 영국으로 ‘망명’한 탈북자를 강제추방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족은 한국 국민이었다는 증거인 지문정보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탈북자들보다 손쉽게 ‘망명’할 수 있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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