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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국가폭력에 맞설 우리의 말들을 찾아

시민의 권력, 연대의 힘

※ 지난 1월 1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용산참사 5주기 추모 국가폭력특별전이 열렸습니다. 용산, 쌍용차, 강정, 밀양의 이야기를 담은 네 편의 영화 상영 사이에 국가폭력에 관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이날 나눈 대화를 축약·정리해 소식지에 전합니다. 국가폭력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녹취 전문은 파일로 첨부하니 대화가 솔깃하신 분들은 녹취 전문을 참고하세요!)


사회 ; 매년 1월이 되면 용산참사를 기억하지만 일상으로 고민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동안 국가폭력은 그만큼의 힘을 키운다. 일상 속에서 국가폭력에 대한 고민들을 더 이어가고 힘을 모아보자는 취지로 오늘 대화를 마련했다. 이야기를 먼저 꺼내주실 네 분에게 “국가폭력은 **이다”로 자기소개를 준비해달라는 숙제를 드렸다.

정정훈 ; 수유너머 N이라는 연구공동체에서 활동, 또는 공부하는 정정훈이다. 국가폭력은 ‘배신의 기술’이다. 사적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겠다며 공권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국가폭력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배신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교묘한 기술들을 사용한다. 국가폭력을 도덕적,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기술들을 사용하며 작동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류은숙 ; 인권운동 하는 류은숙이다. 3을 좋아해서 세 가지로 적어봤다. 국가폭력은 막장드라마, 화병, 자학이다. 막장드라마에서는 인간관계에서 모욕을 퍼붓거나 이상한 짓들을 한다. 그나마 막장드라마는 권선징악이라도 있는데 국가폭력에는 권선징악도 없다. 그래서 화병을 일으킨다. 이게 자학으로 이어지는 것은, 무력한 자신한테 화살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고동민 ;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이다. 국가폭력은 대박이다. 자본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자신이 못된 역할을 맡지 않아도 정부가 알아서 폭력을 자행하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 반면 피해당사자들은 개인이다. 쌍용차 해고자, 밀양의 할매 할배, 강정 주민들, 용산 유족들도 마찬가지다. 국가폭력이 대박인 세상에서,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쪽박일 수밖에 없다. 쪽박을 걷어차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

이계수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계수다. 온건하게 얘기하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가 자본 폭력을 견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자본폭력과 국가폭력이 구분되지 않는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가 보면, 국가폭력은 법의 폭력으로 볼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총파업 혹은 신적 폭력, 그에 대응하는 경찰폭력에 대해 더 얘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 ; 진행을 맡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다. 오늘은 크게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국가폭력이란 무엇인가, 국가폭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새로운 고민은 아니겠지만 조금 다른 시선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망루를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억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연속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국가폭력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숨을 걸어야만 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은, 특별한 이야기들이 아니기도 하다. 우리의 소박한 바람은 어떻게 국가폭력의 구조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일까.

고동민 ; 나에게 국가폭력은 수십 년 살아오면서 믿어왔던 것들의 깨짐이다. 2009년 법이 정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파업을 시작했더니 이명박이 귀족노조가 파업한다고 하고 언론들은 불법파업이라고 낙인찍기 시작했다. 실제로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을 어떻게 국민들이 믿게 되는가가 중요하다. 작년 평택역에서 중고생을 대상으로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답변의 90%가 부정적인 말들이었다고 한다. 2009년 파업 당시 영상을 보면 경찰은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국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때릴 수는 없는 거다. 대한문에서도 경찰은 사람 취급 하지 않고 짐짝 다루듯 했다. 항의하면 당신들이 무슨 시민이냐고 한다. 사람들도 우리를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잔인하게 맞거나 죽어야 국가폭력인 게 아니다. 모두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폭력에 무관심해지고, 나는 시민으로서 일상적으로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사회 ; 노동자는, 철거민은 무엇이다 하는 이야기들은, 내가 원하는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국가폭력은 그런 걸 공적으로 생산 또는 재생산하는 과정인 듯하다.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에서만 존엄을 세울 수 있다면 국가폭력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보인다.

류은숙 ; 국가폭력은 국가가 제 할 일을 못하니까 딴 짓하는 거다. 그런데 이때 모든 시민들이 걸려들지는 않는다. 국가가 찍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는 이유를 건다. 사회를 파괴하는 세력이라거나 성적 소수자라거나. 나이가 어리다거나 너무 많다거나 사상이 불순하다거나 경제발전에 기여하지 않는다거나. 소위 정상 시민과 분리시킨 후 온갖 음해를 하고, 때리고 밟고 가두고 돈 뜯어간다. 그게 인권적으로 무슨 의미냐 묻는다면, 모든 인권이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하고 싶다. 그 앞에서 쇠귀에 경 읽기다. 그리고 하나 덧붙인다면 국가는 폭력을 외주화한다. 그래서 용역깡패들이 나타난다. 사적 폭력이 아니다. 고동민 님이 막대기 하나만 잡아도 살인무기라고 할 텐데 그들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준다. 한통속이니까.

사회 ; 배제되는 어떤 시민들, 시민이라는 이름을 얻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국가폭력에서 늘 확인된다. 그런데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다고 한다. 법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데 그 법의 작동은 언제나 누군가를 지목한다.

이계수 ; 자유주의적 틀에서 법을 보면, 국가폭력을 법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폭력은 힘인데, 그냥 힘이 아니라 승인된 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은 자본주의적 틀 속에서 사람들이 승인한 힘이다. 중구청이 대한문 앞 분향소를 철거하는 힘은 중구청 땅이라는 데서 생긴다. 사적소유가 본질이다. 국가가 소유하건 개인이 소유하건 다른 사람의 개입을 전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 세상에는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세상 만물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참여해서 만들 수 있고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소유 규범은 그걸 깨뜨린다. 형식적인 소유권을 가진 자가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자본 폭력, 국가 폭력이다. 공장도 도시개발도 그렇다. 그렇다면, 주민들의 권력으로 독점의 폭력을 견제해야 한다. 승인된 힘의 본질인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대한 비판 없이는 폭력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강제퇴거금지법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도 누가 소유권을 가졌느냐에 상관없이 거주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힘의 분량을 같이 나누고 새로운 권리관계, 사회관계, 생활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폭력, 국가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사회 ; 국가는 흔히 자본이나 사적 주체와는 다른 공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이 운영되는 원리나 법은 사적 소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국가와 자본의 경계가 모호하다. 국가폭력이 사회적 문제라면 우리는 ‘사회’의 무엇을 봐야 하나.

정정훈 ;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사회는 변화하고 움직일 수 있고 흐를 수 있다. 그 변화와 흐름이 하나의 질서로 통합되지 않는 것이므로, 민주주의는 계속 변화할 수 있는 갈등의 장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란 갈등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정해진 질서 안에 모든 걸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국가가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은 법이다. 국가는 마음대로 휘두르기보다는 정당화한다. 법질서를 강조한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법이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사법부에 의해 갈등이 종결되기보다는 행정부에 의해서 갈등이 예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찰이 거리에서 누구는 보내고 누구는 막을 때 그들은 시위의 가능성을 결정해버린다. 법에 의해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는 명목으로 법이 포괄하지 않는 것까지 자행한다. 그리고 국가폭력이 작동하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는 저항의 비가시화다. 사람들을 삭제해버리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싸우는 모습이 사라져버린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존재가 지워지는 효과가 있다. 쫓겨난 사람들, 추방당한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연대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사회 ; 서로 다른 조건에서 살아갈 때 갈등은 필연적일 텐데 그것이 일방적으로 종결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위기다. 또 그게 보이지 않으면 의미 없는 갈등이 되어버린다. 반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갈등은 의미 없지만 매일 보이므로 의미 있는 갈등이 되어버린다. 첫 번째 주제와 관련해 청중들의 의견을 듣겠다.

청중 : 몸으로 시위대와 맞서는 경찰을 보면 그들은 내면적인 갈등이 없을지, 그걸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지, 현장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보신 적 있는지. 아마 고동민 님이 대답을 잘해주실 듯하다.

고동민 ; 대한문 앞에서 작년 4월부터 경찰들이 화단을 24시간 동안 지키고 있다. 안전행정부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대한문, 국회 순으로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다. 왜 이렇게 많은 경찰이 화단을 지키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경찰관도 있다. 경찰도 집에 못 가고 24시간 대기하며 근무를 해야 하니까 상관이 아니라 우리한테 불만을 가진다. 그런 의문을 가진 경찰관이 어떤 지침이나 명령을 받고 눈빛이 확 바뀔 때,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으니까 무섭다. 최성영(당시 남대문서 경비과장)은 시민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제한하는 정형화된 인물인데, 그런 사람들은 무섭지 않다.

청중 : 올해 고3이 되는 학생이고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다. 2차 희망버스 갔을 때 국가폭력을 처음 느꼈다. 절망감이 컸다. 밀양을 가게 되면서 다시 경찰을 만나고 두려움이 생긴다. 이걸 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되니까 두려움을 넘어서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또 하나는 법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나 국가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몰랐다. 밀양에서 불법채증하고 마스크를 쓴 경찰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법을 모르면 다 정당한 줄 알게 된다. 화를 내야 하는 부분에서 화를 못 내게 된다.

사회 : 자연스럽게 두 번째 주제로 이어진다. 국가폭력에 맞선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물어봐주셨다. 국가폭력에 우리들 스스로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고동민 : 국가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고 해서 내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방법이다. 국가폭력을 경찰로만 보면 안 된다. 뒤에 검찰, 사법부, 정치권, 자본이 있다. 그리고 경찰에 맞설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폭력은 공포다. 2009년 파업 당시 동료들이 잔인하게 맞으면서 진압당하는 걸 보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파업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다음날 파업을 접었지만 싸움까지 그만뒀으면 쌍용차 문제는 안 알려졌을 것이다. 용산참사가 발생하고 유가족이 싸우지 않았으면, 김석기는 공항공사 사장보다 훨씬 더 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맞서지 못한다면 잊지 않으면 된다. 그 싸움은 경찰 앞에 누가 나서냐의 문제가 아니다. 옆에서 손을 잡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함께 싸우고 있다는 걸 대한문에서 알게 됐다.

이계수 : 경찰과 부딪칠 때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고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걸 잘 모르기 때문에 법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 경찰에게 법을 지키라고 하거나 법원에 가서 따질 수 있지만 상황은 이미 끝나있다. 판례가 어떻든 경찰이 법 집행자로서 ‘이게 법’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법전에 나오는 법은 통용되지 않는다. 상황은 경찰이 지배한다. 현장을 지배하는 경찰의 폭력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법과 법으로 부딪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으로는 국가폭력을 넘어설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의 평등을 얘기하는데 그것의 집행은 매우 전략적인 선택성을 가진다.

정정훈 : 국가폭력에 맞서는 것은 연대와 가시화일 것이다. 그런데 비가시화는 물리적으로 안 보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폭력의 희생자에 대한 낙인도 있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폭력도 봐야 한다. 저들은 경찰과 군대뿐만 아니라 방송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힘 대 힘으로 어떻게 싸울까 고민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투쟁 자체가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비상사태였는데 그게 일상이 됐다. 그런데 그렇게 추방당한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들이 있다. 공감해나가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한 때다.

류은숙 : 2008년 촛불 때 경찰이 시민에게 존댓말 썼고 보호하려고 했다. 촛불이 조금 사그라지기 시작하니까 달라졌다. 경찰은 생리적으로 어떤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지 잘 안다. 그러니 우리가 권력이 되는 수밖에 없다. 시민의 권력은 일상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진짜 권력이 어디 있는지 보여줄 힘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폭력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와 관련해서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체념, 체화, 체통. 첫 번째는 체념하지 말자. 사는 게 원래 그렇다거나 운명이라는 말로 현실을 포기하지 말자. 두 번째, 체화하지 말자. 저들은 물리적으로 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언론으로 우리 생각을 휘저어놓는다. 너 같은 인생이 정치에 신경 쓸 틈이 있니?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억울하면 성공해라 등. 우리한테 침투시키려는 이데올로기를 체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립된 사람은 체념하고 체화할 수밖에 없다. 함께 만나서 서로 지적해주고 격려해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그렇게 체통을 지키는 시민이 되자. 무관심을 거부하는 것이 시민이다. 동료 시민에게 벌어지는 일을 내 일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거리감이 국가폭력에 연루되는 길이다. 사람이 몇 명 죽어도, 노동자가 몇 천 명 쫓겨나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구나 하면서 폭력은 더욱 강해진다. 시민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무관심과 싸워야 한다.

사회 : 네 분이 좋은 말씀 들려주셨다. SKYN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얼마나 끈끈하게 연대하는지 잘 아실 듯하다. 당연해보이기도 할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로. 그러나 모두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장사를 하거나,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밭에서 작물을 키우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던 분들이다.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용산참사 5주기를 맞은 우리 앞에 진상규명 과제가 있다. 이것이 용산을 그저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참사에 맞서는 싸움이 될 수 있도록 오늘 대화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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