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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고객이 매우 만족할 때까지'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잘 쓰고 있던 전기 매트가 고장 났다. 잠결에 조절기를 밀쳐 떨어뜨렸는데 그로 인한 충격인지 아무리 눌러대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울 것이라는 예보에 전화기부터 찾아들었다. AS 센터에 전화했더니 조절기 내부 기기 문제인 것 같은데, 겨울을 앞두고 각종 수리 문의가 밀려 들어와 시일이 꽤 걸릴 거라고 했다. 마음이 급해져 바로 그날 택배로 보냈다. 

갖고 있는 제품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찾게 되는 A/S 센터. 당장 구해야 할 답은 이런 거였다. 수리가 가능한지, 비용은 얼마인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언제 방문이 가능한지.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10월의 마지막 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그달 초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인 10조를 돌파했다고 했다. 그 덕에 이건희 회장은 세계 100대 부자 명단에 다시 진입했다고 한다. 초일류기업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해온 삼성의 이면이, A/S 기사로 불리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연일 이야기되고 있다.


고사시켜라

지난여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삼성전자서비스 40개 협력업체에 속한 많은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의 시작, 그러나 창립총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발을 묶어두려고 사측에서 파격적인 수당 지급을 내걸며 주말근무를 권장하고 협박한다는 소식이 잇달아 전해졌다. 각종 방해공작을 뚫고 모인 많은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함께 외친 구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 43년 전 평화시장에서와 똑같은 외침.

9월 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과로사 소식이 전해졌다. 몸의 이상 증세를 호소해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동료들 모두 이미 꽉 들어찬 스케줄에 허덕이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아픈 것도 미뤄야 했다.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입원할 계획이었던 그는 주검이 되어 병원을 찾았다. 기본급 없이 건당 수수료로 급여가 정해지는 조건, 성수기에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연이어 12시간 이상을 일했고, 그렇게 받은 월급에서 주유비, 식대, 통신비 등을 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비수기에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 빚을 내서 살아야 했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위태롭게 일하면서도 그런 티조차 내서는 안 된다. 고객‘님’들에게 ‘매우 만족’ 평가를 받지 못하면, 행여 컴플레인이라도 들어오면 반성문을 써야 하거나 일감을 못 받거나 온갖 욕을 듣거나 그렇게 시달리다 못해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멍 난 장독처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불안하고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조건, 그 조건을 바꾸기 위해 모였고 뭉쳤다. “노조설립 상황이 발생되면 빠른 시간 내에 모든 부문의 역량을 집중해 와해시켜라, 만약 와해되지 않으면 고사시켜라”, 얼마 전 공개된 삼성의 노조파괴 전략문서는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모이고 뭉친 이들을 고사시키는 온갖 저열한 수를 명하고 있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삼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문서는 노동자들에게 일감을 주지 않아 생존 자체가 흔들리고, 표적감사의 대상이 되어 온갖 괴롭힘을 당하고, 욕설과 폭언을 들으며 드는 모멸감을 무조건 감내해야 하는 현실로 이어졌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의 의미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세계에서 구입하고 이용하는 제품들을 떠올려보자. 우선 쉽게 떠올리게 되는 전자제품처럼 구입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제품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에 대한 사후 관리 서비스를 얼마나 잘 제공하는지는 당장 제품 판매량으로 연결되고 기업 이미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A/S의 과정에서 면대면으로 맺게 되는 관계는 기술과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해야 하는 노동자와 이를 이용하는 고객‘님’이다.

고객‘님’의 평가를 핑계 삼아 모든 악조건을 노동자에게 감내하라 강요하고,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것의 실체는 위장도급, 불법파견 등으로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더 많이 더 쉽게 이윤을 뽑으려는 자본의 속성을 고객‘님’ 위치에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살아가기 위해 우린 누군가에게 늘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언제나 일방향도 아니고, 하나로 단순하게 위치 지워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더 좋은 세상을 기술과 제품, 서비스와 사람이 함께 만들어간다”고 말하는 삼성, 그 삼성이 꿈꾸고 만들려 하는 세상을 생각하면 두렵다. 그 두려움이 매우 만족하고 싶은 고객‘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밥 때 밥 먹는 것, 쉴 때 쉬는 것, 당연하다 여긴 그조차도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티브로드 노동자들, 2013년 10월 31일 전태일을 떠올리며 죽음을 택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그들을 통해 다시 질문해본다. ‘가입고객 1위’, ‘고객만족 1위’를 내세우는 기업들 그 이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디 있는지. 삼성이 아닌 우리가 꿈꾸고 만들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