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돌아온 사랑방은 외형적으로는 거의 변함이 없다. 4층이 주사무실이었다가 3층으로 한층 내려온 것 외에 <인권하루소식> 기자들은 여전히 밤늦게 기사 쓰느라고 고생이고, 이러저러한 전화가 끊이지 않고 밥 해 먹는 것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보다 술 먹는 빈도가 줄었다는 정도일까.
그러나, 사랑방의 일은 아직은 쉽지만은 않다. 인권운동연구소에서 1년 3개월여, 의문사위원회에서 국가공무원으로 8개월여를 돌아 다시 찾은 사랑방은 여전히 일이 많다. 더욱이 내게 맡겨진 기획사업반은 고정 상시사업만도 세 가지이고, 인권 현안 대응까지 도맡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에는 곽노현 교수의 국가인권위 위원직 사퇴 국면을 맞아 이에 대한 대응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렇지만, 몸은 바쁜데 일이 손에 착착 달라붙지는 않는 것이 예전과는 다르다. 이른바 감이 많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사실 환경도 아직은 낯설다. 의문사위원회에서 널찍한 사무실에 푹신한 의자에, 좋은 컴퓨터에 왠만한 잡다한 일은 직원을 시켜먹을 수 있던 상황과는 사뭇 다른(그때도 그렇게 밑에 사람들을 팍팍 부려먹지는 못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인권단체의 한 가운데에 있다. 무엇 하나 풍족한 것은 없고, 일만 잔뜩이다.
사실 사람들은 왜 의문사위원회를 그만 두냐며 말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유가족들이나 일부 사람들은 3월 의문사위원회 활동이 재개되면 돌아와야 한다고 강변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랑방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한편에서 안락한 4급 공무원 생활이 주는 활동가의 정체성 침식이 두려웠던 것인지 한 인권운동가의 마음만은 편하다. 못사는 집안이지만, 그래도 친정에 돌아온 시집간 딸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한다.
연구소에서 공부했던 것은 무엇 하나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때 대학 시험 공부할 때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공부했던 것 같은데도 그때 공부한 것을 운동 속에서 살려서 적용해야겠는데 서준식 소장이 연구원을 잘못 골라 아까운 세월 헛 투자를 한 것이나 아닌지 회의가 스스로 일어난다.
시간대가 가까워서일까 의문사위원회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권운동가로서는 꽤나 근사한 경험을 한 것이다. 비록 조사권한이라는 것이 미약하기 이를 데 없어 참고인들 불러다 진술받고,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과 비교하면서 퍼즐게임처럼 조각조각 흩어진 진실의 편린들을 맞추는 일이었지만, 나름대로 국가권력의 한 가운데서 일어났던 범죄 행위를 파헤쳐 경험을 한 것이다. 이 경험을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연구소에서 논문 면제받은 것을 대신해서 정리해야 한다는 자료실 은아 씨의 은근한 압력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매일매일 낮잠 자는 시간 외에 정신없이 돌아치는 나날 속에서는 손댈 엄두조차 못낸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인권운동가를 힘들게 하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과정에서부터 갈라진 인권운동 진영이다. 연대사업으로 풀어야 할 일들은 태산같고 인권단체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요구는 높아지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과 활력이나 신명이 없는 활동가들을 보노라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 오늘도 '위기의 국가인권위원회,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단체들을 모아 긴급토론을 벌였고, 국가인권위 대응기구 결성을 위한 회의도 하였지만, 몇몇 단체들의 첨예한 갈등만 확인한 채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서야 했다. 분열의 현장을 목도하고도 어떻게 봉합조차 못해본 무기력, 사랑방에 돌아와 처음 조직한 사업은 복귀가 단순히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한다. 그래도 그것마저 껴안고 가야할 못난 인권운동의 현실인 것을 어쩌랴.
아직은 '복귀 중'인 인권운동가로서 올 한해 넘어야 할 산이 몇 개일지 몰라도 누군가 들려준 말, "사랑방은 내공이 있대요." 하던 말을 기억한다. 10년 인권운동사랑방의 역사 속에 나의 발자취도 한 페이지는 기록될 수 있다는 것, 아직도 남이 걷지 못한 진보적 인권운동의 길을 개척해가는 사랑방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올해도 웃으며 활동하고 싶다.
다시 돌아온 나를 지켜볼 많은 이들에게 실망주지 않는 활동가로 올해 연말쯤이면 당당히 '복귀 끝' 신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