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 해의 끝자락은 언제든 아쉬움으로 채울 수밖에 없나 봐요. 12월 접어들면서 정말 숨이 가뿐 지경인데, 문득 내가 왜 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고민 때가 아니야, 얼른 일을 끝내야지’ 속으로 마음의 끈을 잡아당겨도 답답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철학을 공부하는 친구를 떠올립니다. 제가 질문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올해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전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전공과목과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틈틈이 번역작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 때는 종교 동아리에 가입을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잠깐 종교 학생운동과 학술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살면서 이런 때 내가 철학공부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세요? 철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이 아직도 심한 편입니다. 사실 그런 편견 밑바탕에는 철학에 대한 일종의 신비감이 깔려 있습니다. '명리학'이나 '운명철학'이라는 말을 쓸 때처럼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비법으로 철학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전 오히려 우리의 사고와 언어를 명료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철학의 의의를 찾습니다. 그걸 통해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 역시 철학의 장점이죠. 최근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인 대중들의 엄청난 관심은 단순한 지적 허영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묻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전 이게 바로 철학적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해요. ◇ 인권과 철학이 만나면 어떤 ‘화학반응’이 생겨날까요? 우선 인권개념에 대한 명료화와 정당화를 통해 철학과 인권이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인권운동이 보편적 인권개념을 전제한다면, 그런 주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물을 수 있겠고 그에 대한 다양한 근거들이 제시될 수 있겠죠. 전 그런 논의 과정에서 철학이 인권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안적 인권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인권운동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이 시민권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시민권 없는 사람들의 인권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아감벤의 작업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 인권운동사랑방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서준식 선생님, 인권영화제, 박래군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서준식 선생님은 예전에 책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무수한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삶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권운동사랑방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영화제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다큐들이 소재 면에서나 작품성 면에서 훌륭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 대로 영화제에 참석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래군 선생님은 용산참사 이후에 대책위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제 기억에 남은 것 같습니다.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 중에 관심 있거나 함께 하는 싶은 분야가 있다면? 저는 인권운동의 이론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 중에서도 정신질환자나 장애인의 인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분야에 대한 이론적 작업 같은 것이 있으면 함께 하고 싶습니다. 또 번역작업을 하기 때문에 혹시 외국자료(불어나 영어)가 있으면 번역을 맡겨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 중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제대로 참여도 못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계속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지금처럼 인권운동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현상유지 자체가 힘드니까요.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전해주세요. 사랑방 활동가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비정규직을 불성실의 대가로 간주하고 동성애자를 죄인 취급하며 군 면제자를 군기피자와 동일시하면서 싸잡아 욕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러분은 인권의 보루이자 희망입니다.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활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2011년 한 해도 끝자락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들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