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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인권오름 편집, ‘비교체험 극과 극’이 될까?

난 ‘편집장’이라고 불리는 게 싫다. 사랑방에서는 활동가들끼리 수평적인 구조를 통해서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대표’도 없고 ‘사무국장’도 없다. 그냥 위계적이지 않은 상임활동가(‘상근’ 활동가가 아닌!)와 돋움/자원활동가가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랑방에 ‘장’이라고 한다면 오직 ‘인권운동연구소 소장’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인권운동연구소가 분리·독립한 후로는 더 이상 사랑방에 인권운동연구소 소장 자리는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편집‘장’이라니!
올 6월 사랑방 총회 시 하반기 업무 재배치 논의를 하면서 하반기 인권오름 편집을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정도 이미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순번을 따져봤을 때 이번에는 내 차례인 것 같았으니까. 인권하루소식 마지막 편집 담당자였던 강성준 활동가는 업무 재배치를 얼마 앞두고 담당 막바지가 되었을 땐 무척이나 초췌하고 어두워진 얼굴로 내 앞에 다가와 “다음 차례는 바로 당신”이라고 ‘경고’하곤 했다. 위로인지 조소인지 모를 약간의 미소를 흘린 채. 그래서인지 올 초 인권하루소식을 종간하고 인권오름을 창간하며 초대 편집인을 배경내 활동가가 담당하게 되었을 땐 약간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물론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이 훨씬 더 컸지만.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는 예상대로 단호했고 6개월이라는 시간은 짧기만 했다.(인권교육실 독립을 위한 구상에 푹 빠져있는 그녀는 초대 인권오름 편집을 담당하는 대신 6개월 동안만 하겠다는 강력한 공약(!)을 내걸었었다!) 6개월 후 어느 새 새로운 인권오름 편집 담당을 논의하게 되었고 난 이번에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안타깝게도’ 이번만은 행운의 여신이 나의 편에 서주지 않았다. 하반기 인권오름 편집 담당. 상반기 내내 나 혼자 너무 ‘널널’했던 탓일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낙찰. 다만, 나는 보았다. ‘고생이 심하겠군’하는 약간은 안쓰러운 듯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약간은 걱정스러운 듯한 그들의 눈빛.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편집을 맡고 보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 차례는 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상반기 내내 인권오름 편집으로 고생하던 배경내 활동가를 보면서 “난 당신처럼 살진 않겠다”고 절규해왔다. ‘쉽게 쉽게 가자’는 말을 신조로 삼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항상 위안을 삼으며 “배경내 활동가와 나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권오름 편집 비교체험 극과 극’을 볼 수 있게 해주리라”고 공언해왔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그마저도 자신이 없다.
벌써부터 편집을 할 땐 ‘과연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걸까’ ‘나 혼자 이런 판단을 해도 되는 건가’와 같은 온갖 생각들이 머리 속을 헤집는다. 인권오름의 꼭지와 기사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쟁점 수다]에서는 정말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인권운동의 쟁점들을 논쟁적으로 다루어봐야지...[삶_세상]에서는 우리 시대 민중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면 좋겠다...[벼리]를 통해 인권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볼 수는 없을까...그때 그때 정세적으로 드러나는 논쟁적인 인권 소식들도 소홀히 하면 안될테고...인권운동사랑방의 입장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며 정세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논평]도 과감하게 써야될텐데...[인권교육 날다]는...[외침]은...주간 인권오름엔 일주일에 적을 때는 6개, 많을 때엔 10개 정도의 기사가 나가지만 내겐 항상 모자란 듯 하고 아쉽기만 할 뿐이다. 상반기엔 배경내 활동가에게 “기사 수가 뭐 그리 중요하냐”며 “쉽게 쉽게 하라(그러니까 오늘은 술 한 잔 하고...^^;)”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이젠 그야말로 ‘너나 잘 하세요’가 됐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인권오름 편집’이 될 수 있을까가 고민되기도 한다. 인권오름 편집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 정도는 밤샐 각오를 하고 있어야 편집을 할 수 있다. 그나마 인권하루소식에 비하면 나아진 상황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쉬운 상황만은 아니다. 인권하루소식과는 달리 인권오름은 인권오름 편집과 다른 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 가령 나의 경우에는 기존의 북인권대응팀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인권오름 편집을 맡고 있다. 다른 활동을 하면서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 정도 밤을 새야 하는 일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지속가능한 인권오름 편집’을 위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고민되는 운영 과제다. 어떻게 하면 밤을 새지 않고 편집을 할 수 있을까...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인권오름 기사 작성에 대해 큰 부담을 갖지 않고 활동 속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녹여낼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기사 작성자와 편집인이 더 잘 소통할 수 있을까...풀어가야할 숙제는 많기만 하다.
상반기 6개월 동안 총무를 담당해왔다. 총무를 그만 두고 인권오름 편집인(편집 담당, 편집자...뭐라 불러도 좋다. ‘편집장’만 아니라면!)을 새로이 맡게 된 지금, 총무를 담당한 6개월의 시간은 짧게만 느껴진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새로 배우며 뭔가 해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인권오름 편집도 그렇지 않을까. 일단 내게 맡겨진 시간은 6개월. 6개월 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만하다 싶을 때 일을 그만 두게 된다면 또다시 아쉬움이 남겠지. 그래서 좀더 오래 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은 다른 법! 그건 그 때 가봐야 알 일이다.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