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내 인생의 미용실”을 아그대다그대 이야기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용실에 자주 다녔다.
중학교 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던 때를 빼면,
거의 어머니를 따라가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던 것 같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우리 학번끼리 엠티를 갔었다.
정말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마시고,
(친구들 사이에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에피소드가 많은 엠티였다. ㅜ.ㅜ)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계속 토를 하면서 거의 쓰러지다시피 집에 왔는데!
호시탐탐 아들래미 머리에 색을 들여줄 기회를 노리셨던 우리 어머니!
얼굴 하얗게 되어 계속 토하는 그 아들을 데리고 미용실에 가셔서
결국 보라색으로 염색을 시키셨고!
난 또 술에 헥헥거리는 것이 좀 죄송해서
그냥 따를 뿐이고!
머리에 파마롤 가득 말아올린 채로
화장실에 뛰어가서 토하고 온 게 서너 번일 뿐이고!
ㅋㅋ
결국 머리색깔은 보라색이 잘 안 나와서
붉은 머리를 해서 다녔다능~
(아해)
야메 미용실을 알랑가~
우리 동네는 가난한 동네라 사업허가를 받은 미용실만이 아닌
개인 집의 한 귀퉁이-
예를 들면 광같은 곳을 미용실로 운영해
미용실의 반값으로 머리를 해주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나도 대학까지 거기를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싼값에 머리를 자르고 볶고 했던 기억들...
물론 할머니들이 많이 왔다.
정감이 흐르던 그곳은 지금은 없어졌겠지~
(바람소리)
시내에서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아홉시 반에 그 곳을 지나갔다.
시내라지만
많이 개발되지는 않아
단층짜리 작은 가게들이 조막만하게 들어서있던 거리였다.
막차를 기다리다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그냥 늦게까지 불이 켜진 미용실로
들어갔다.
"너는 머리가 커서 짧은 머리가 안 어울릴 꺼야"(ㅜ,ㅜ)라는 친구들의 친절한 조언 덕분에 짧은 머리는 엄두를 내보지 못한 고3 여학생은
그렇게 처음으로 컷트라는 걸 해봤다.
어땠냐고? 완전 예뻤는 걸~~~
ㅋ 지금은 짧은 머리가
너무 익숙하고 좋다.
(미류)
울 중학교 공식 헤어스따일은
'스포츠머리'였다.
머리 감고 말리는 데만
한 시간씩 쓰며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가질 시기에 스포츠머리라니!
게다가 시내에서 스포츠머리를 강요한 학교는 울 학교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 이후 머리 길이를 둘러싼 투쟁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기를 수 있을까.
어차피 지금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걸.ㅋ
한창 머리 길이에 대해 민감하던 때,
그날도 여전히 엄마 친구분이 하시는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그런데 결국! 아끼고 아끼던 머리카락이 뭉텅 잘려나간게 아닌가!!! 이전까지는 까치머리였다면, 이젠 완전 스포츠머리..
ㅠㅠ 결국 집에 와서 울었다.
힝~
그때
두발자유 청소년운동이 있었다면...
(돌진)
난 미용실이 싫다.
"어떻게 해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손질 따로 안 해도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다.
머리카락을 갖고 해본 시도가 두 번 정도 있는 것 같다.
파란 머리에 대한 환상으로
처음 블루블랙 염색을 했던 적이 있다.
일주일 정도
머리를 감으면 파란 물이 줄/줄/줄/
수건도 파랗게 물들고...
그 이후
염색을 다시는 안한다.
그리고
늘 도령 머리나 무사 머리를 고수해오다가
20대에 파마는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
시도를 했다.
난 내가 우아해 보일 줄 알았다. (-_-::)
그러나 결과는
헤/라/클/레/스/
그래서 질끈 묶고 다녔더니
파마가 풀렸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미용실은
내가 가능한 피하고 싶은 곳인데,
머리카락은
자꾸만
빠르게 자란다.
그게 속상하다.
(민선)
단골집이 있다.
3-4명이 앉아서
머리를 깎을 수 있는 공간에
찾는 사람도 별로 없고
간간히 라디오 잡음소리가 울리는 한적한 공간.
그곳에 가서
머리 자르는 사람이나 머리 자르러 가는 사람이나
별 말은 없다.
4년이나 지났으니
자리에 앉으면
대략 알아서 잘라주고
나는 머리 수그리고 자고 있으면 된다.
눈치 볼 일도 없고
조는 시간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그래서 그곳에 간다.
편안한 시간이 그리울 때면.
(소금인형)
'덥수룩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는
그저 잘라 주시는 대로 살아왔는데,
요즘은
좀 더 이리 저리 주문을 넣어보려 하고 있다.
아
근데
쉽지 않아~
내가 원하는 머리 모양이
뭔지도 잘 모르겠거든
(유성)
바다에서 죽은 형의 사건 해결 때문에 들른
제주도의 한 미용실에서
처음
염색을 했지요.
당시 기분 상
왠지 파격적이고 싶어
와인 색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그 뒤 한 동안 학교에서
'사깡(사범대 깡통 식당) 붉은 머리'로 소문이 났다는...^^;;
당시
그런 머리로 염색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어서
교수님에게도 불려가고
(물론 다들 웃고 넘어갔지만)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듯^^
(초코파이)
약 47년 전쯤,
청주에서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지금까지 미용실을 운영해 온 엄마 손에
머리를 자르는 사람은
이제 아빠 뿐이다.
엄마는 서운해하는지 시원해 하는지
티도 내지 않고
달라진 가족의 머리를 평가하곤 한다.
파마약냄새,
잘려나간 각양각색의 머리카락,
시시각각 변하는 파마스타일,
더 좋아시는 염색약의 종류들.
어릴적 나에게
엄마 미용실은 놀이터였고,
실험실이었고,
사람을 관찰하는 곳이었다.
다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엄마의 단골손님들.
이제는 환갑이 넘은 원장이
혼자 하는 미용실이지만.
동네 아줌마들이,
노인들의 쉼터로 더 유명하다.
개발과 철거로
정릉, 성남, 의정부 등
여기저기로 뿔뿔히 흩어진 엄마 단골손님과
친구들은
때를 정해
'가위손 미용실'로 함께 먹을 음식을 싸들고 모여든다.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나는 나의 성장과정을 증언해주는 아줌마들의
즐거운 기억들을 듣는다.
(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