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자원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2012년 사회권팀에서(이제 어느덧 해가 넘어갔지만 ㅠ)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는 민수입니다. ^^ 오랜만에 자원활동가의 편지를 쓰게 됐는데, 이번에는 저의 ‘일’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요.
저는 1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부터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데, 뭔가 전공과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최대한 조금만(!) 일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이 일을 하게 되었지요.^^ 원래 제가 생각하고 있던 조건은 한 달에 80시간 정도 일하면서 50만 원 정도를 버는 거였고, 실제로 제가 하게 된 일은 한 달에 50~60시간 정도를 일하면서 40~48만 원 정도(월급이 아니라 시급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그 달에 얼마나 일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를 버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일상(자립생활)을 돕는’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딱히 정해진 업무라는 게 없습니다. (물론 세면, 식사보조, 옷 갈아입기 등 모든 활동에서 도움이 필요한 최중증의 경우를 제외하고요) 저는 주로 장애인이 외출할 때 이동을 돕는 역할을 했지만, 우리의 일상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햇빛이 있을 때는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갑자기 비가 오거나 기분이 안 내키면 산책을 안 나갈 수도 있고. 또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러 가야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활동보조인이 언제나 필요하지는 않지만(장애인도 당연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막상 필요할 때 없으면 곤란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에 일할 때는, ‘이분한테는 내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데, 내가 돈을 벌려다 보니 이분을 피곤하게 하는구나. ㅠ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을 자주 만난 지가 오래 되었던 데다가 체력도 많이 약해서, 처음에는 1주일에 3일 만나는 것도 버거워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월급쟁이도 아닌 ‘시급쟁이’였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못 채우면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돈도 벌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저는 뭔가 해야 하는 ‘업무’가 주어지면 기뻤지요. ‘업무’를 처리하고 나서는, 내가 뭔가 이분에게 필요한 ‘일’을 했다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크고 작은 일상을 공유하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덧 ‘내가 이분과 가장 자주 많이 만나며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구나.’(나 자신에게도 또한 그러했고요)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업무’보다는 ‘관계’가 더 중요하게 된 것이지요. ‘활동보조인’이자 ‘친구’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는 이 ‘일’이 도무지 일 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어요. ‘활동보조인’으로 (하기 싫어도?) 요리를 하면 ‘일’이지만, 친구로서 친구에게 해주고 싶어서 요리를 해주면 그건 일이 아니잖아요. 물론 정해진 업무 시간을 준수한다든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분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다든지, 하는 기준선은 지키고 있지만요.
활동보조 ‘일’은 일로 느껴지지가 않고, 교회 일이나, 사회권팀 녹취록을 푸는 일은 (장장 21시간이 필요하니까!) 오히려 일로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ㅎㅎ 제대로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저는 ‘좋은’ 활동보조인이 아닌가 봅니다. 아니면, 우리에게는 혹시 ‘일 같지 않은 일’을 할 권리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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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