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일 수 있습니다. 증상이 없더라도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검사받으세요.” 언제부터인가 서울 시내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들리는, 귀에 익어 줄줄 외울 정도로 반복되는 안내방송이다. 원하면 무료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다니, 검사 비용이라는 문턱이 낮아졌다는 말인가 싶어 내심 반갑게 듣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분명 처음에는 검사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 낭비를 막기 위해서 확실한 증상이 있을 때만 검사를 받으라고 했는데, 이제는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어디에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는 무증상 감염자가 빠짐없이 검사를 받을 리 없는데, 서울 시민 모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권하는 건 무엇을 위해서일까. 검사는 분명 방역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만능이거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때로는 권유라는 형식으로, 때로는 강제적으로, 방역을 위해서라며 검사가 강조되는 지금, 현재 방역 정책에서 검사가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를 잘 살펴야 할 때다.
추적 검사에서 대량 전수검사로
코로나19 확산 초기 한국 방역 정책의 핵심은 빠른 추적검사였다. 추적(Tracing), 검사(Testing), 치료(Treatment)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Participation)가 더해져 3T+1P라고 불리기도 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역학조사를 통해 동선을 재구성하고, 접촉자를 찾아내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방식의 소위 K-방역은 일정한 성과를 낳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름을 지내고 겨울을 맞으며 몇 차례의 대규모 집단 감염, 감염 경로를 특정하기 어려운 지역 감염이 이어졌다. 모든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방식의 추적검사는 효용성과 힘을 잃어갔다.
추적이 무력해진 자리에 검사만 남았다. 감염세를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방역 당국은 추적검사 대신 익명-대량검사를 주요한 방역 정책으로 제시했고, 이는 머지않아 특정 집단에 대한 전수검사까지 나아갔다. 목욕탕이나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 강남의 학원 강사, 최근의 이주노동자까지, 직종이나 국적 등 정체성을 겨냥하는 ‘선제적 전수검사’가 방역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미리 진행되었던 법 개정이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검사를 뒷받침했다. 작년 3월 감염병예방법이 개정되며 ‘감염병의심자’를 정의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기존 법에서 감염이 확실하거나 감염 정황이 의심되는 사람들만을 규정하던 데 비해서 훨씬 더 포괄적인 범주의 사람들을 ‘감염병의심자’로 묶어버린 법 개정은 여름 이후 감염 인과나 정황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대량 전수검사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선제적 전수검사’라는 전시행정
모두가 불안하기에 더욱 검사에 매달리게 된다. 검사를 통해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고, 혹시 모를 감염 상태를 조기에 발견할 수도 있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통제하고 억제하기 위해 적절한 검사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개인의 불안을 달래줄 수는 있을지언정 해소해줄 수 없다. 검사를 받은 다음 주, 다음 날, 바로 직후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수검사를 통해서 ‘바이러스 미검출’, 즉 음성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이는 바로 그 시점에서 체내에 바이러스가 없다는 사실만을 증명할 뿐이다.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검사를 받을 게 아닌 이상에야 전수검사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짧은 위안뿐이다.
방역 당국은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대량 전수검사를 반복하며 ‘방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지만, 사실 그 속에는 과학적 근거도 사회적 효용도 없다. 대부분 특별한 감염 정황을 지니지 않거나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아무리 많은 검사를 한들, 투입되는 비용과 노동에 대비해서 얻는 것은 적다는 뜻이다. 선제적 전수조사는 이태원 집단감염 이후 익명검사를 도입하며 자발적 검사를 독려한 것과는 애초에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밀접 접촉에 따른 감염의 위험성이 큰 상황에서 자발성에 기초한 익명 검사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검사와 치료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줬다. 무료 검사를 통해 비용 장벽을 없앤 것도 주요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험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집단이나 정체성을 지목하는 ‘선제적’ 전수검사는 전시행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검사만으로는 방역을 이룰 수 없다
방역을 위한 검사의 핵심은 ‘누구나 필요할 때 검사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다. 방역 당국은 아프면 출근하는 대신에 집에서 휴식하고, 증상이 있으면 빠르게 검사를 받으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조건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검사 숫자를 늘리는 데만 몰두해왔다. 노동자가 권한을 지니지 못한 일터에서 ‘아프면 쉰다’는 말은 속 편한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미등록 이주민이나 성소수자처럼 증상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고 치료받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경기도는 최근 이주노동자 강제 전수조사 행정명령을 통해서 숨어있던 삼백여 명의 확진자를 발견했다며 스스로를 치하하기도 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숨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바꾸지 않는다면 ‘숨은 확진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량 검사 위주로 구성된 방역 정책의 한계이다.
현재 방역 정책은 증상 유무나 접촉 여부와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찾아내겠다는 ‘검사 만능주의’ 기조를 지닌다. 대량 검사를 통해 양성인 사람을 검출하고 격리해내며, 개개인이 음성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상정하고 있을뿐더러, 방역의 한 요소인 검사를 방역의 전부로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기도 하다. 방역을 위해서라면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도록 하는 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이 적절하게 검사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더 많은 검사’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검사’를
방역 당국은 검사 숫자를 늘림으로써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하지만, 특정 집단이나 정체성을 대상으로 한 전수검사의 반복은 방역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방역의 한계로 이해해야 한다. 현재 대량 검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방역 정책이 뛰어넘어야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감염에 취약한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 이를 위한 경제적 지원, 누구든지 필요할 때 검사와 의료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 마련, 병상 확보를 포함한 공공의료 체계 구축까지, 대량 검사에 가려진 과제이자 지금 필요한 정책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먼저 ‘검사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자. 더 많이 검사한다고 해서 더 널리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모두에게 더 많은 검사를 권하는 방역 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검사를 제공하는 방역 정책’이 필요하다.